낮은 투표율 이유로 20대가 질타를 받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출구조사 결과에서 세대별 투표율이 나오는 순간 20대는 정치에 무관심한, 한심한 존재로 전락한다. 작년 총선에서 예상과는 다르게 새누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차지하는 결과가 나오자, 야권 지지층은 패배의 원인을 20대에게 돌리기도 했다. 총선 다음날 트위터에는 “20대 투표율이 27%고, 20대 여성 투표율은 8%에 불과”하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았다.

총선과 대선이 치러진 작년에는 1년 내내 “투표합시다”라는 구호가 끊이질 않았다. 선거관리위원회는 물론이고 유명 연예인들까지 나서서 “소중한 투표권을 꼭 행사하라”는 부드러운 말투의 강요를 계속했다. 투표 인증샷을 SNS에 올리면 순식간에 개념인으로 등극하는 진풍경도 펼쳐졌다.

제3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수상자 이영유 씨


하지만 이영유(26)씨는 “전반적인 상호 소외의 상황에서 투표율이 높은 것이야말로 정말 걱정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주의를 선거제도와 동일시해왔던 오랜 전통을 다시 숙고해보아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러한 주장을 한 편으로 엮은 글 ‘2013년 대한민국, 우리가 선거하지 않은 이유’로 이영유 씨는 출판사 창비에서 주최한 제3회 사회인문학평론상을 수상했다.

10월 8일 인문까페 창비에서는 제3회 사회인문학평론상 시상식 겸 수상작 토론회가 열렸다. 먼저 김항 연세대 국학연구원 HK 교수가 심사경위를 발표했다. 김항 교수는 “수상자인 이영유 씨의 글이 내장한 선 굵은 주제와 일관된 논리가 월등히 돋보였다”며 “낮은 투표율 문제를 투표할 권리의 공공적 재구성이라는 관점으로 사유해보자는 제안이 신선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이영유 씨는 수상소감을 전하며 “수상작에서 민주주의, 선거, 정치란 대화하는 것을 조건으로 해서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수상작에서는 대화에 대해 많이 쓰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자칫하면 대화의 규범을 완강하게 정립하는 위험에 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가 규범적으로 되면, 합리적으로 말하는 사람만이 대화하게 될지도 모른다”며 이유를 덧붙였다.

뒤이어 ‘우리시대의 선거, 정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수상작에 대한 토론회가 진행됐다. 토론회의 사회는 김항 교수가 맡았다. 패널로는 수상자 이영유 씨와 함께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와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가 참여했다.


이영유 씨는 수상작을 쓰게 된 경위를 얘기하며, 투표를 안 하는 20대를 비난하는 세태에 대한 반항심이 어느 정도 있었다고 밝혔다. 투표하지 않는 것도 일종의 대화 방식이고, 이에 대한 비평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는 “대화가 부족한데 투표율이 높다면 도덕적 강박 때문이므로 위험하다”며 수상작의 주장에 공감을 표했다. 그러면서도 “20대가 자신들만의 언어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기존의 언어를 뛰어넘어야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가 가능하다”고 첨언했다. 또한 “모든 사람이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과연 그 모든 게 민주주의의 심화인가”라고 운을 떼며 “새누리당은 종북 척결을, 민주당은 민주세력의 승리를 민주주의의 심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민주주의와 선거의 관계에 대한 설명, 선거의 의미에 대한 논증이 부족하다며 수상작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어서 “지금의 선거 제도는 유권자를 권리의 주체에서, 카운팅 넘버로 전락시킨다”고 말했다. “결과를 계산하며 투표를 하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지닌 가치가 선거 결과에선 나타나지 않는다. 비례대표 확대가 가치의 선거결과화에 가깝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토론회에 참관한 독자들의 질문과 패널들의 답변이 오간 뒤 “앞으로는 어떤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한 이영유 씨의 답변으로 토론회는 마무리됐다. 이영유 씨는 “말하지 않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듣는 일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또한 지금은 “로봇이 말을 할 수 있는 조건을 사고 실험을 통해 탐구하면서, 말의 조건이 어떻게 정해져있는지를 알아보는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