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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살기 좋은 내 마을 우리 힘으로 만드세.”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은 이 노래를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모두가 이 노래를 들어보지는 못했지만, 대부분 노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주지하고 있다. 노래는 바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새마을운동을 상징한다. 70년대 경제적으로 궁핍했던 사회를 돌파하려던 국가주도의 ‘근대화운동’이 바로 새마을운동이었다. 그런데 수십 년 전에나 울렸던 철지난 이 노래가 43년이나 흘러 다시금 불리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은 새마을운동의 복귀를 의미했다. 박근혜 대통령인수위원회에서 이미 새마을운동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의견이 있었다. 다른 공약은 백지화되는 마당에 새마을운동만은 대우가 달랐다. 농림수산부에 이어,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창조경제를 실현하겠다고 호언했다. 거기다 안전행정부는 새마을운동을 전 세계로 보급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도 제2의 새마을운동 추진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지난20일 2013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 참석한 박 대통령은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이 ‘현대사를 바꿔놓은 정신혁명’이라며 추켜세웠고, 현재 추진 중인 새마을운동을 ‘범국민운동’으로 승화해야 한다고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새마을운동을 ‘정신혁명’이라 극찬하고 ‘범국민운동’으로 확대하겠다는 발언은 의미심장하다.  새마을운동은 눈에 보이는 '성공' 뒤에 어두운 면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박진도 충남대 교수와 한도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새마을운동이 문제점을 이미 1999년에 흥미롭게 지적한 바 있다. 연구에 따르면, 농촌지역이 새마을운동을 통해 눈에 보이는 ‘근대화’를 이루는 동안, 지역주민들의 자율성은 배제되었고 지역의 구조적인 문제는 외면되었다. '근면, 자조, 협동'이라는 새마을운동의 덕목은 국가라는 권력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주민들의 저항은 철저히 봉쇄되거나 분쇄되었다고 말한다.
 
보고서는 여러 사례 중 행정마을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행정마을은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기존의 취락을 모두 철거하고, 고속도로를 향해 재건축하라는 지시를 국가로부터 '하달'받는다. 문제는 재건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민에 향하는 정부의 태도다. 군청은 국가로부터 지시받은 사항이니 번복은 없다고 선을 그었고, 주민들에게 재건축할 능력이 없으면 마을을 떠나라고 종용했다. 불응할시, "불도저를 동원해 강제로 철거"하겠다는 협박까지 서슴지 않는다.  주민들은 그럼에도 생사를 걸고 투쟁을 진행했다. 결과는 처참했다. 행정마을의 주민들은 결국 국가의 ‘폭력적 탄압’에 투쟁은 좌절되고, 주민들의 이농이 강행되었다.

제2의 새마을운동이 추진되고 있는 현실은 위의 연구가 말하는 70년대의 새마을운동의 실태와 다르지 않다. 과거에는 새마을운동이 '도로를 향해 기존의 가옥을 전면철거하고 재건축'하는 가옥개편을 말했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수십 년 터전을 하루아침에 떠나라는 한전의 송전탑 계획을 의미한다. 과거의 국가는 저항하는 주민을 향해 “군청에서 불도저를 동원해서 강제로 밀어버린다”고 협박했다면, 지금은 불도저 대신 굴착기가 자리를 대신하는 도구의 차이가 있다. 주민들의 자율성과 의견 수렴의 과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고, 농촌사회의 구조적 문제에는 한결같이 무관심하다.

4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는 두 정부의 태도는 하나로 온전히 포개진다. 지역주민을 타자화하거나 대상화하려는 새마을운동의 결과는, 과거에 비추어가며 눈에 보이듯 선명하게 그려볼 수 있다. 40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새마을운동이 경제적 성장이라는 지표상의 가시적인 성과에 그쳤듯, 박근혜 대통령의 새마을운동 역시 눈에 보이는 몇몇 행사를 조직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주민을 무시하는 정부가 추진하는 새마을운동이란 자기모순이다. 이를 ‘범국민운동’으로 확대하겠다는 대통령의 포부는 얄팍해 보인다. 지금의 새마을운동은 그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