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지를 거부하는 교사, 학생들의 자율성·창의성을 높이려는 교사, 신문반 등 학생들과 대화가 잘 되는 특별활동을 만들어 이끄는 교사. 우수 교사를 뽑을 때 활용하면 적절할 법한 기준들이다. 그러나 80년대 말에는 문제 교사를 식별하는 기준으로 쓰였다. 우스갯소리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어이없는 일이다. 촌지를 거부하는 교사가 문제 교사로 분류된 배경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의 전신인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펼쳤던 촌지 안 받기 운동이 존재한다. 전교조 설립을 준비 중이던 전교협을 노태우 정권이 탄압하는 과정에서, ‘촌지를 거부하는 교사’가 ‘문제 교사’가 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던 것이다.

1989년에 창립한 전교조는 10년간 법외노조였다가 1999년이 돼서야 겨우 합법노조로 인정받는다. 14년간 합법노조였던 전교조는 내일이면 다시 법외노조 신세가 될 전망이다. 고용노동부는 해직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규약을 고치라고 전교조에 요구했었다. 만약 오늘(10월 23일)까지 규약을 시정하지 않으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규정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말이 뒤따랐다. 사실상의 협박이었다. 하지만 전교조는 전국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규약 시정 요구를 거부하기로 결정했다. 고용노동부는 규약 시정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통보하겠다는 뜻을 고수했다. 전교조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기 직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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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노동부의 규약 시정 요구는 명백한 전교조 탄압이다. 전교조와 마찬가지로 다른 노동조합에서도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전교조만 콕 집어낸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10월 22일 현병철 위원장 명의의 성명서를 통해 고용노동부의 규약 시정 요구에 우려를 표명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조합원 자격 때문에 노동조합 자격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여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다. 국제노동기구(ILO)도 해직자의 노동조합 가입을 제한해선 안 된다며 긴급개입을 했다. ILO는 지난 3월에도 노동조합의 직책을 해직자는 맡지 못하도록 하는 노동조합법의 개정을 요구했었다.

전교조 탄압을 정권 차원의 일이라고 보는 건 무리가 아니다. 고용노동부의 규약 시정 요구는 2010년부터 이어졌긴 했지만, 법외노조 통보라는 강수를 둔 적은 없다. 또한, 박근혜 대통령이 여러 번에 걸쳐 드러냈던 전교조에 대한 왜곡된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2005년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사립학교법 개정안에 반대하며 ‘전교조에게 못 맡긴다’는 문구를 어깨에 둘렀다. 작년 대선 때 마지막 TV 토론에서는 “이념 교육으로 학교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전교조와 유대를 강화하는 것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까?”라는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말로 문재인 후보를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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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의 법외노조화는 촌지를 거부하는 교사를 문제 교사로 분류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고 황당하며 부당한 처사다. 정권 차원의 전교조 낙인찍기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일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2013년에도 여전히 전교조 낙인찍기를 반복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전교조 낙인찍기를 그만둬야 한다. 고용노동부의 전교조 법외노조화 협박이 공갈 협박이었다는 소식을 오늘 늦게라도 듣게 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