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알바렐라에서는 억울한 일이 있어도 사장님과 손님, 때로는 같은 알바생에게 굽힐 수밖에 없는 알바생의 설움을 조명해 왔다. 이번 알바렐라에서는 ‘그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집에서 알아듣기 힘든 중국어 사투리와 지급을 제때 해주지 않는 방송국 작가와 씨름을 벌이는 박렐라 씨(23)가 주인공이다.

Q. 중국어 번역 알바를 하고 계시다는데 어떤 일인지 소개 좀 해주세요. 

방송사나 제작사가 만든 영상에서 중국어가 나오는 부분을 한국어로 번역해서 보내는 알바예요. 아는 언니가 방송국 라디오 작가인데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중국어를 번역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2012년 4월부터 시작하게 됐어요. 
 
Q. 주로 어떤 내용을 번역하시는 거예요?

장르가 되게 다양해요. 연예 프로그램도 있고 국정원에서 구금한 간첩 관련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도 있고 독립운동 관련 다큐멘터리, 역사나 종교 관련 다큐멘터리 등등. 예를 들면 독립운동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중국 서안 지역에 사시는 할아버지의 인터뷰 내용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거죠.
 
Q. 영상 길이는 어느 정도예요? 그리고 작업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연예 프로그램의 코너 같은 경우는 30분 내외정도고요, 이건 제가 하기 나름인데 한 번은 2시에 작가한테 의뢰 들어온 걸 제가 3시 반에 완성해서 보낸 적도 있어요. 그랬더니 작가가 엄청 좋아하면서 “두둑하게 주겠다.”고 하더니 원래 10분에 35000원인 걸, 정말 10분에 5만원씩 쳐서 지급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불교나 역사 관련 다큐멘터리 같은 경우는 내용이 지루하고 재미없다 보니까 중간 중간 끊어서 보게 되고 의욕이 안 나서인지 3일 정도 걸린 적도 있어요.
  
Q. 그러면 제일 작업하기 힘들었던 영상은 뭐예요?
 
‘먹거리 X파일’ 같은 몰카 류의 영상이요. 한 번은 중국 전통 술인 백주에 대한 영상이었는데 카메라가 계속 흔들리면서 바스락 바스락 잡음도 많이 나서 인터뷰이의 말이 잘 안 들리더라고요. 사투리도 많이 쓰셔서 그것도 힘들었고요. 아무래도 전 표준어만 아니까 사투리를 많이 쓰시는 분들의 말은 알아듣기 어렵죠. 그래서 10번 넘게 돌려 보면서 받아 적고 그랬어요. 그리고 뭣보다 보면서 ‘술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들어서 참느라 힘들었어요.(웃음)
 
Q. 번역하다가 그렇게 알아듣기 힘들거나 어려운 부분 있으면 어떻게 하시나요?
 
제가 중국에서 8년 살아서 어려운 단어가 그렇게 많진 않아요. 그래도 갔다 온 지 오래 되다 보니까 불교 관련 다큐멘터리에서 일상에서 쓰지 않는 단어들이 나오면 번역하기 어렵더라고요. 그리고 뉴스 보면 지명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건 알아듣기 힘드니까 사전 찾아보거나 아니면 중국 포털 사이트에 그 단어를 검색해 봐요. 그러면 그 단어에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오니까 그 내용을 숙지하고 다시 영상을 보면 알아들을 수 있어요. 근데 서안 지역 사투리 같은 건 어렵더라고요. 한 번은 작가가 저한테 광동어도 번역할 수 있냐고 물어봐서 단호하게 못 한다고 거절했어요.






 
Q. 그래도 다른 알바보다 시급이 셀 거 같은데요.
 
맞아요. 방송사마다 다르긴 한데 최소 10분당 35000원 정도 하고, sbs 같은 경우는 유도리가 있어서 영상 안에 포함된 중국어 영상 길이가 아니라 전체 영상 길이를 기준으로 지급하기도 해요. 새벽까지 힘들게 일했다고 하면 수고비처럼 더 주기도 하고요. 이게 제가 보낸 영상이 방송되고 나서 지급되는 거라서 지급 날짜도 일정치 않아요.
 
Q. 그러면 지급 날짜가 유동적이라 생긴 문제도 있나요?
 
네, 지금 생각해도 화나는 일인데요. 아무래도 맡기는 곳이 큰 방송국이고 지급 문제에 대답해주는 작가도 제작 라인의 막내다 보니 정산이 언제 되는지 제대로 몰라서 정산 되는 날을 잘못 말해주거나 정산 과정에서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KBS 다큐멘터리 프로에서 실수로 동명이인에게 입금을 한 경우가 있었어요. 하필이면 추석 연휴가 걸려 있어서 업무가 더 느리게 진행된 거예요. 원래 9월 초에 받았어야 할 돈을 9월 말에 준다고 하다가, 개천절 전에, 그게 다시 미뤄져서 결국 10월 5일 쯤에 받았어요. 돈을 잘못 줬으면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려도 화가 풀릴까 말까한데 전화 받는 행정처 직원이 이거는 작가 잘못이고, 이건 결제를 못 받아서 그렇고, 이런 저런 식으로 변명하면서 뭐가 화가 나느냐, 우리가 돈을 아예 안 준다는 것도 아니지 않느냐,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길래 화가 나서 월급 한 달 늦게 받아도 그런 소리 나오겠냐고 뭐가 그렇게 뻔뻔하냐고 대판 싸운 적이 있었어요.
 
Q. 박렐라 씨가 번역한 방송도 보세요?
 
아뇨. 자취생이라 집에 TV가 없어서 못 보죠. 그래도 제가 번역한 게 대충 편집돼서 나갈 거란 건 알아요. 카메라가 들어오면 무작정 욕하는 사람 있는데 전 그거 그대로 번역하거든요.(웃음) 그래서 ‘이 부분은 편집돼서 나오겠구나’ 정도 생각만 해요.
 
Q. 지금까지 말씀하신 거 들어보면 일반 알바생과 사장님의 갑을 관계랑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네, 그렇죠. 제가 이거 하기 전에 치킨 집 알바를 했었는데 그 땐 제가 무조건 사장님한테도, 손님한테도 고개 숙이고 굽혀야 했어요. 그런데 이 알바는 대부분 의뢰하는 쪽이 부탁하는 입장이다 보니 예의 있는 편이예요. 저랑 나이가 적어도 10살 이상 차이나는 경우가 많은데도 공손하게 “박렐라 씨, 저희는 어디 방송국이고 어디 프로다”로 말을 시작하니까 제가 먼저 굽히지 않아도 되고 상대방이 굽히는 거잖아요. 또 치킨 집 알바는 대체 인력이 어디에나 많지만 이 알바는 대체인력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니까요.
 
Q. 이 알바 계속 하실 거예요?
 
그럼요. 소처럼 일할 거예요. 제 친구가 저한테 ‘연뮤덕’ 이라고 놀려요. 연극이랑 뮤지컬 덕후라고요.(웃음) 계속 벌어서 좋아하는 연극이랑 뮤지컬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