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할 때 쉬운가요, 말로 할 때 수월한가요?

제 경우는 전자입니다. 생각의 저 구석에 있는 녀석 까지 샅샅이 찾아내어 구석구석 빠짐없이 설명하려하다 보면 말은 두서없어
지고,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려했는지 잊어버리게 됩니다. 같은 생각을 글로 담아내는 것은 마음에 드는 단어를 선별해서 요리 조리 궁리하다 적절한 곳에 넣어 문장을 완성하는 일이지요. 마침표를 찍기 전에 얼마든지 더 생각해 볼 수 있으니 글이 더욱 수월하게 느껴집니다. 그런 이유로 고함20에서 기자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말보다 글이 수월할 뿐 글쓰기가 결코 수월하지는 않더군요.

기사아이템 없는 기자에게 닥친 마감의 고통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를 떠들어보겠노라고 시작한 일입니다. 두 눈과 두 개의 귀를 활짝 열고 살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도 넘치는 사건·사고 속에서 마땅한 기사 아이템을 찾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 마음을 건드리는, ‘글빨’에 기름을 부을 수 있는 아이템은 많지 않으니까요. 더군다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순식간에 섬광처럼 사라지고, 아이디어를 글로 구체화 하지 못한 후에 남는 것은 마감 날을 맞는 불안한 마음과 빈 화면에 애처로이 깜빡이는 커서뿐입니다. 내가 정말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던가에 대하여 천만번 쯤 생각하고 나면 마감에 충실한 기자로서의 사명감이 다행히도 되살아나 손가락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저질 기사를 반성합니다.

 편집부가 따로 없는 고함20에서는 발행 전 다른 기자들과 함께 첨삭을 합니다. 어찌어찌하여 빈 화면을 채우고 가져간 저질 기사를 다음 날 회의 때 첨삭을 하노라면 빨간 펜으로 난도질된 기사 위에 한숨이 소복이 쌓입니다. 그리고 시작되는 비교. 다른 기자들이 써낸 칼날 같은 기사에 숨이 턱 막히고 나는 언제 저런 글을 써보나 생각하게 되죠. ‘ㅁ’기자의 어떤 주제에도 흔들림 없는 날카로운 문장력에 좌절하고 ‘ㅍ’기자가 요목조목 분석한 비판에는 치밀한 논리가 있습니다. 또 다른 ‘ㅍ’기자가 풀어내는 문장은 소설 같은 흡입력과 참신한 표현이 도처에 산재하여 언제나 저를 반성하게 하죠. 그리고는 기사가 프린트 된 종이 저 구석에 “난 왜...ㅠㅠ” 라고 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좋은 글에 대한 타는 목마름

 신문, 잡지, 책, 또 블로그에 포스팅 된 글과 미니 홈피에 올라 있는 일기들까지. 글들이 넘쳐 나지요. 그런 것을 보면 글쓰기란 어쩌면 배출 본능의 또 다른 창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넘쳐나는 글 속에서 좋은 글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생산된 글에 약간의 손질만 거쳐 재생산하는 요즘의 추세는 창조적 작업에서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말 좋은 글은 더욱 빛을 발하게 되더군요. 고전문학의 맛에 빠지면 조금은 촌스럽거나 편협한 당시의 사조도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스테디셀러로 수년간 꾸준한 사랑을 받거나 장기간에 걸쳐 연재되는 작품들은 대중성에 작품성도 놓치지 않은 명품 글로 인정받습니다. 이런 글을 읽고 나면 나의 지식과 감성의 세계가 무한히 확장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이 느낌을 내가 쓰는 글을 통해 다른 이에게 주고 싶은 것이 글을 쓰는 이로서의 욕심입니다. 혹시나 내 글의 독자들이 좋은 글에 대한 갈증에 허덕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염려는 저를 나아가게 하는 가장 훌륭한 채찍이 되지요. 욕심껏 늘지 않는 글에 대한 자양분이 되기도 하구요.



전문가적인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리포트 제출을 위해 혹은 업무처리를 위한 이메일을 작성 등등의 이유로 우리는 많은 날들을 ‘글쓰기’와 마주합니다. 어떤 이에게는 글로 표현한다는 것만큼 곤혹스러운 일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이에게는 글을 쓰는 것이 자기표현의 해방구이자 소통의 즐거움을 위한 놀이공간일지도 모르지요.

글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조금 응석을 부려보았습니다. 투정도 글로 풀어내는 것을 보니 저는 백지를 소통과 놀이의 공간으로 활용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글쓰기의 어려움과 즐거움, 당신은 어느 쪽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