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은 이명박 정권이 출범한 이후로 첫 정권 심판에 직면한 해였다. 그해 6월, 대한민국은 ‘광우병 파동’으로 들끓었다. 한미 FTA 수입을 반대하며 촛불을 든 이들과 광우병 파동이 선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바빴다. 2008년의 6월은 온 사회가 그러한 이분법 속에 매몰된 것 같은 날들의 연속이었다.
당시 우리 학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는 점차 한미 FTA에 반대하는 전교조 선생님들과 비전교조 선생님들로 나뉘어 갔다. 그 속에서 가장 민감한 시기인 고등학교 3학년이던 나는 어떤 정의감에서인지 광우병 파동의 심각성에 동조하는 친구들 몇을 모아 주변 친구들을 설득하기에 나섰다.
당시 대부분의 또래 친구들은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나 정치 이야기를 어른들의 세계인 듯 여기곤 했다. 어른들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면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방에 들어가곤 했던 것이다.
절친하지는 않았던 어떤 친구 또한, 나의 지루한 설명에 어린 우리가 관심 가질 일이 아니라며 나를 한심하게 쳐다봤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나의 말을 무시하던 그 친구는 조용히 다가와 나에게 한 마디 건넸다. ‘00아. 이 문제 심각한 것 같아. 우리 뭐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루아침에 바뀐 친구의 태도에 의아해했지만 누군가의 동조에 신이 났던 나는 몇 번 가보지도 않았던 서울시청에 가기 위해 친구와 함께 나서게 된다.
처음 가본 시위 현장은 혼란의 연속이었다. 처음 본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주고받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긴장된 학교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겐 낯설고 조금은 두려운 광경이었다. 게다가 점차 어두워지는 날씨에 겁을 먹은 나는 친구에게 집에 가자고 말한다. 그곳에서 내내 들떠 보이던 친구는 좀 더 있다가 가겠다며 기어코 나를 먼저 보내고야 만다. 그렇게 친구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왔고 그 친구는 그 이후로도 야자를 빼먹고 시위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 일이 있는 직후인 어느 날, 그날도 어김없이 야자를 빼기 위해 선생님에게 거짓말을 하고 시위현장에 나선 친구는 그곳에서 담임선생님과 마주치게 된다. 평소 '호랑이 선생님'으로 정평이 나 있던 분으로, 같은 반 친구들이 조금이라도 야자를 빼먹을라치면 야자 시간 내내 그 친구만 감시하곤 했었다. 그런 선생님이었기에 잔뜩 '쫄아 있던' 친구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번쩍 뜬다. 선생님은 친구를 혼내는 대신 ‘잘했다’고 다독여줬다. 다음 날이 되어서도 그 일에 대해선 모른 체한 것은 물론이다.
다음 날 들뜬 모습으로 다가온 친구로부터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는 그때 처음 선생님이 전교조 소속 교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제가 바로 전교조 교사들이 모여 현장에 나갔던 날이었던 것이었다. 당시 나는 어떤 정의감에서인지 시위갔을 때 받았던 FTA 반대 스티커를 책상에 붙여놨는데, 지나갈 때마다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비웃음 섞인 야단과 질타를 받곤 했다. 그때에도 담임선생님은 나를 혼내지도, 떼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이분법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있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알았던 나는 차라리 선생님이 우리에게 ‘뚜렷한 거짓’에 대해서 말해주길 바랐었다. 정치 이야기를 꺼내려 하면 손사래 치며 누가 옳고 그름을 말하길 거부하시던 선생님이 때론 의아하기도 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그런 일관성 있는 모습은 자신의 생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으며, 또 학생들에게 이분법적인 시각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마음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5년이 지났다. 그 사이 전교조는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다가, 법원에 의해 해당 통보가 집행정지 되면서 다시 법외노조에서 벗어났다. 전교조와 관련된 일련의 과정들은 5년 전 나의 고교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서로 옳고 그름만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분법적인 시각에 매몰된 사람들이 만연했던 때.
전교조 교사를 향한 날 선 비판들은 그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하지 않은 채 편향된 시각을 주입할 것이라는 오해에서 비롯된다. 지난날 나의 담임선생님을 떠올리며 모든 선생님을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으로 판단할 수 없듯이, 전교조에 소속된 교사들 또한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으로 구분할 수 없음을 생각했다. 이번 사태를 보며 그 시절 담임선생님이 떠오른 이유다. 선생님은 정말 ‘아무 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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