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는 종교가 없습니다. 세뇌로 얼룩진 울타리를 깨고 나와 세상을 둘러보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을 더 감동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9월 서울대학교에 등장하며 화제가 된 ‘전도퇴치카드’의 첫 구절이다. 전도퇴치카드를 만든 서울대 무신론 동아리 Freethinkers SNU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여러 언론사에서 Freethinkers SNU 양호민 회장을 인터뷰했고, 한국에는 처음 생긴 대학 무신론 동아리 Freethinkers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하지만 대학 무신론 동아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어 보인다. Freethinkers SNU보다 먼저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대학 무신론 동아리 Freethinkers KAIST는 최근 난관에 봉착했다. Freethinkers KAIST는 11월 29일에 열린 카이스트 동아리대표자회의에서 신규 등록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다. 통과 기준인 2/3 이상의 찬성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려움에 빠진 Freethinkers KAIST의 창립자이자 전 회장인 송시후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Freethinkers KAIST ⓒfacebook.com/pages/Freethinkers-KAIST/255580377855896


동아리 신규 등록 심사 당시의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혹시 종교분과 동아리 대표자들의 반대표가 많았던 건가요?

반대표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대략 찬성 45표, 반대 8표, 기권 27표가 나왔죠. 무기명투표였기 때문에 어느 동아리에서 기권했는지 확인할 수는 없습니다. 그 자리에 있었던 기억으로는 음악분과 동아리 대표자들이 주로 앉은 곳에서 기권표가 많았습니다. 오히려 종교분과 동아리 대표자들은 찬성표를 던져줬죠. 이전부터 Freethinkers와 종교분과 동아리의 사이가 나쁘지 않았어요. 양측이 충돌하는 영역에 대해 협의를 하여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종교분과 동아리 대표자들은 Freethinkers의 종교에 대한 학문적 접근을 받아들이셨습니다.

신규 등록 심사 때 Freethinkers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내용을 발표하셨고, 발표할 때 다른 동아리 대표자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무신론의 다양한 범위를 간략히 소개했고, Freethinkers가 추구하는 무신론을 설명했습니다. 이어서 Freethinkers가 이전에 해왔던 활동들을 발표했습니다. 발표할 때 분위기는 괜찮았어요. 다들 웃으면서 발표를 들어주셨고, 질문과 답변도 명확하게 오갔고요. 질문이 지나치게 적어서 약간 불안했었는데, 그게 기권표로 표출되더라고요.

무신론의 범위가 넓은지는 몰랐네요. 그렇다면 Freethinkers가 추구하는 무신론은 무엇인가요?

반신론적, 전투적 무신론만 알고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죠. 무신론자라 하면, 인터넷에서 종교를 욕하며 키보드 배틀을 펼치는 사람을 상상하시곤 합니다. 그렇지만 무신론의 범위는 굉장히 넓습니다. 몇 가지 공통적인 가치관을 제외하면 무신론자들끼리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많아요. 그중에서 자연주의적 세계관, 자유사상, 세속주의적 가치관을 Freethinkers에서는 무신론의 가치관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Freethinkers는 동아리연합회에 소속된 가등록 동아리입니다. 동아리연합회의 회칙에 따르면 다른 동아리의 권리를 침해해선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아리연합회에 소속된 다른 종교 동아리의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려 조심해왔습니다.


Freethinkers의 핵심 가치


신규 등록 심사에서 Freethinkers이 해왔던 활동도 발표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요. Freethinkers가 어떤 활동을 해왔는지 다시 한 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주로 하는 활동은 세미나입니다. 무신론을 주제로 회원들이 발표 자료를 준비해오면, 이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토론을 벌이기도 하죠. 복잡했던 영국의 종교개혁시기, 창조론/진화론 논쟁과 연관되는 과학과 비과학의 경계 문제 등을 주제로 다뤘습니다. 이외에도 팟캐스트 방송, 영화상영회 등 무신론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다만 아직은 무신론의 학술적인 분위기를 재밌게 풀어내진 못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무신론과 관련된 재밌는 콘텐츠를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카이스트는 이공계 특성화 대학입니다. 대학 무신론 동아리가 카이스트에서 처음 생긴 게 단지 우연 같지는 않은데요. 다른 곳에 비해 카이스트에서 무신론에 대한 지지가 높은 편인가요?

창조론/진화론 논쟁에서 진화론 지지가 더 높은 건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무신론에 대한 지지가 높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무신론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무신론에 대한 이해 수준은 다른 대학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혹시 무신론 동아리를 하면서, 종교를 가진 주변 분들과 마찰이 생겼던 적은 없나요?

딱히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무신론 동아리를 시작한 후에 몇몇 종교인 친구들이 저에 대한 인식을 달리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대체로 종교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물론 ‘나 무신론자야’라는 말이 ‘나 교회 다녀’, ‘나 성당 다녀’와 다른 어감을 주는 건 분명합니다. 이런 편견이 생기는 게 썩 좋은 일은 아니죠. 교회나 성당을 다니는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는 게 몹시 부정적인 일인 것처럼요. 무신론자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자 ‘나 무신론자야’라는 말을 더더욱 하려고 합니다.


전도퇴치카드 ⓒfacebook.com/freethinkerssnu


지난 9월에 Freethinkers SNU에서 전도퇴치카드를 만들어 화제가 됐었는데요. Freethinkers KAIST에서는 전도퇴치카드를 만들지 않았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카이스트는 종교단체의 불법 전도가 상당히 온화한 편이에요. 불법전도에 대한 대응책도 마련되어있고요. 그래서 전도로부터 자유로울 자유가 저희의 우선순위에선 상대적으로 뒤에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는 불법 전도의 정도가 정말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Freethinkers KAIST와 Freethinkers SNU가 무신론 동아리 연합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두 동아리는 교류를 어떻게 하고 있나요?

공동 웹페이지와 페이스북 그룹을 이용해서 꾸준히 소통하고 있어요. 방학 때마다 정기적인 모임도 열고 있고요. 2012년에 가진 첫 교류에서 Freethinkers라는 이름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로 했고, Freethinkers 전국 대학교 동아리 연합을 만들자는 취지를 갖고 있습니다.

Freethinkers 연합 세미나 ⓒfacebook.com/freethinkerssnu


Freethinkers 전국 대학교 동아리 연합에 서울대, 카이스트 말고 다른 대학에서도 참여하고 있나요? 그리고 전국 동아리 연합에서는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최근에 고려대학교에서 Freethinkers KU가 출범했습니다. 우선은 무신론 동아리의 전국 연합을 확장하고, 내부적으로는 무신론 공부를 계속하여 실력을 다지려고 합니다. 전국적으로 몇 개의 무신론 단체가 모여서 매우 큰 프로젝트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아직은 비공개라 말씀드릴 순 없지만,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러던 와중에 Freethinkers KAIST가 동아리 등록에 실패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카이스트 커뮤니티에서는 무신론 동아리와 종교 동아리가 공존할 수 있는지 논의도 오갔는데요.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대학 사회에서 한 번쯤은 발생했어야 할 논의라고 봅니다. 저희는 무신론 동아리와 종교 동아리의 공존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제는 저희가 스스로 가지고 있던 활동의 제약을 느슨하게 바꾸려 합니다. 여태까지 종교 동아리와 서로 배려했다면, 앞으로는 직접적인 충돌을 자제하는 방향으로요. 전도 활동이 동아리 활동으로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하는지 논란을 제기할 수도 있겠죠. 종교 동아리를 공격하는 행보를 예고하는 것은 아닙니다. Freethinkers에서 옳다고 여기는 일이라 해도 예전에는 종교 동아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Freethinkers KAIST의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동아리 등록을 다시 시도하실 건가요? 아니면 다른 길을 찾아보실 건가요?

동아리 등록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요. 동아리 등록을 미련 없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동아리 신규 등록 심사를 통해, 지금의 동아리연합회 체제에서는 무신론 동아리가 세워질 수 없다는 것이 명확히 드러났다고 생각합니다. 동아리연합회 소속이었기에 존재했던 제약에서 벗어나면서, Freethinkers의 철학에 따라 활발하고 자유롭게 활동해보려 합니다. 하지만 그 제약들이 한편으로는 Freethinkers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기에 아쉽기도 하네요. 새로운 길이 Freethinkers에게 득이 될지 해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반드시 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나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