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학과의 이해로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구조조정에 반대해야만 하는 이유, 즉 구조조정 반대의 ‘보편적인 근거'를 쥐어주는 것이 필요했으나 투쟁이 진행될수록 학교의 논리를 넘어서지 못하는 난점에 부딛쳤다(중앙대).”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효과적으로 저항하기 위해선 정부와 대학 당국 모두에 항의하는 것이 필요하고 각 학교의 여건에 따라 그 촛점이 달라질 수 있어야 한다(국민대).”



1월 18일(토) 서강대학교에서 ‘전국대학구조조정공대위 구조조정 워크숍'이 열렸다. 전국 대학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가 주최한 이번 행사는 현재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에 대해 이해하고 각 대학에서 학과통폐합이나 정부 재정지원대학 선정에 맞서 항의한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마련됐다. 

1부 강연에선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 임재홍 교수가 ‘박근혜 정부에서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의 내용과 향후 대응 방향'이라는 주제로, 임순광 한국 비정규교수노조 전 위원장이 ‘신자유주의와 대학-오늘날의 대학이 안녕하지 못한 이유'라는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이어진 2부 토론에선 중앙대, 국민대, 경기대 대표들이 각자 학교에서 발생한 학과구조조정과 정부 재정지원대학 선정 이후 투쟁한 경험을 공유했다. 

토론 패널로 나온 권혁민 국민대 교육권 대책위 간사는 개별 학교의 사정에 맞는 의제설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2년 9월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명단에 이름을 올린 국민대는 곧 일부 진보적인 동아리와 활동적인 학생을 중심으로 성명서를 발표했다. 처음 성명서는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비판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정부 비판만을 일면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운동에 한계로 작용했다"고 말한다.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 선정에 따른 학생들의 불만은 문대성 의원의 논문표절, 교육여건에 대한 소극적인 투자 등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기존의 문제들과 연결되어있었기 때문이다. 

투쟁 방향을 설정한 이후 진보적 동아리와 활동가들은 ‘비상총회 개최'를 1차적인 목표로 설정한다. 9월 10일 총학생회 주도로 집회가 열렸으나 학교와의 투쟁에 미온적인 총학생회와 학생회 간부들의 모호한 태도는 학생들의 불만을 누그러트리기보다 더 불붙게 만들었다. 권 간사는 총회의 성사 자체만을 목표로 두는 것이 아니라 “총회가 이후 행동을 건설하기 위한 ‘가교'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상총회 개최 소식에 학생대중의 호응은 대단했다. 마침내 10월 25일 열린 비상총회에선 1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해 저마다 학교측에 갖고있던 불만을 쏟아냈다. 

이후 중앙대 구조조정 공동대책위원회에서 나온 패널은 학과구조조정에 맞서는 과정에서 낭만적이고 개별학과에 머무른 구호가 외연을 확장하지 못했던 점을 아쉬움으로 지적했다. 두산재단에 인수된 중앙대는 2010년부터 여러차례 학과구조조정을 둘러싼 갈등을 겪었다. 2010년 갑작스런 구조조정안 발표에 학내여론은 들끓었으나 재단측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반대분위기는 곧 사그라들었다. 취업에 유리한 방향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라는 학교측의 논리에 많은 학생들이 수긍했고 ‘기초학문 사수'나 ‘인문학 보호'같은 ‘대학기업화'에 대한 반대 구호는 공대와 경영계열 학생을 중심으로 학교발전을 위해 기초학문이 필요한가라는 반론에 맞딱트려야 했다. 학과구조조정 과정에서 개별 전공이 하나의 가치로 연대하지 못하고 ‘우리 과 살아남기'정도로 그친 점도 투쟁의 난점으로 지적됐다. 특정 학과의 이해관계에 갇히지 않고 모든 학생이 구조조정에 반대해야 할 보편적인 의제설정을 하지 못하고 각 학과별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에 찬성하거나, 극렬히 반대하거나, 눈치만 보는 상황이 계속된 가운데 하나하나 폐과가 진행됐다.

2013년에 다시 촉발된 중앙대 구조조정 반대 투쟁에선 2010년의 경험을 되살려 개별 학과를 뛰어넘는 연대체를 설정하고 의제를 확보함으로서 다소간의 성과를 거두는데 성공했다. 2010년 당시 ‘인문학 수호'라든가 ‘일방적인 구조조정 반대'와 같은 형식논리적이고 학과별로 파편화되었던 목소리를 ‘대학기업화 반대'라는 일관된 목소리로 모으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 비록 대학측의 구조조정 그 자체를 막기는 힘들었으나 구조조정 문제에 대한 기존의 관점, 즉 인문학(기초학문) 수호라는 낭만과 학교발전이라는 현실 혹은 우리 학과 살리기 대 학교 발전이라는 대립구도를 뛰어넘어 이 문제 뒤에 ‘대학의 기업화'라는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 연대의 범위를 학교 밖으로도 확장시킬 수 있었다. 

한편 토론회에 앞서 열린 1부 강연에선 전국교수노조 부위원장 임재홍 교수와 임순광 한국 비정규교수노조 전 위원장이 차례대로 발언했다. 임재홍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의 근간에는 정원감축정책이 있음을 지적하며 일방적인 정원감축 정책이 몰고올 수 있는 부작용을 진단했다. 정부의 목표대로 입학정원이 28%이상 감소하면 이는 곧 교수와 직원들의 고용의 질의 악화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미 2013년 1학기 전임교수 신규 임용에서 절반 가까운 50.8%가 비정년 트랙으로 뽑힌 사실로 현실화 되고있다고 지적한다. 대학측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비정규 직원 채용을 늘리고 교수에겐 과도한 강의시수를 떠넘기면서 결과적으로 대학교육이 황폐화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임 교수는 고등교육의 교육여건을 개선하는 고등교육 개혁이 필요함을 주장했다.

임순광 한국 비정규교수노조 전 위원장은 자본에게 포섭된 대학을 재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로 ‘평등 대학'을 제시했다. 기회의 평등, 내용의 평등, 방식의 평등, 관계의 평등, 결과의 평등이 이뤄진 대학을 만들기 위해 대학별 산별노조 건설을 지향하고 공동투쟁체를 만들어 교육형명 의제를 퍼뜨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임 전 위원장은 또 대학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한 당면 과제로서 대학평가지표 폐지를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