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이하 백양로 프로젝트)를 두고 논란이 불거진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백양로 프로젝트는 연세대 정문에서부터 시작되는 백양로의 지하에 차량통행로와 주차장을, 지상에는 녹지와 광장을 조성하는 학교 당국의 사업이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2012년 총장 후보 시절부터 백양로 프로젝트를 사업 공약으로 내세웠다. 교수들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백양로가 마구잡이로 파헤치는 모습을 방관할 수 없다며 반발했고, 학교 당국에서는 오랫동안의 계획을 수포로 되돌릴 수 없다며 예정대로 공사를 시작했다. 한낱 학내 문제로 지나치기에는 외부 언론들의 관심이 뜨거웠다. 공사장 한가운데에서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벌이는 교수들은 분명 예사롭지 않았다. 새벽에 교수들의 천막을 기습 철거해버린 학교 당국의 행동은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들 간의 치열한 공방 사이에 연대 학생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쩌다 언급이 되더라도 교수들의 이야기에 살짝 끼워놓은 수준이었다. 그들은 침묵했던 걸까, 아니면 외면당했던 걸까. 

그러던 중 최근 학생들로 구성된 백양로 TF팀이 꾸려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중 대부분이 오래 전부터 백양로 문제 해결에 나서왔다는 이야기도 함께. 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그들‘만’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공사가 한창인 백양로를 배경으로 한 교내 카페에서 백양로 활동가들을 만났다.



 

ⓒ반음아래, 고함20

 


Q. 백양로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한건희 :  평소에 학내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참여하려는 편이다. 2011년 학내 청소노동자 파업 때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한 적도 있었고. 지금은 학내 문과대 교지 <문우>에서 활동하고 있는데, 이번에 백양로 문제에 관한 글을 쓰게 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백양로 TF가 만들어지면서 그를 계기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게 되었다.  

김성민 : 원래 이런 학내 문제,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다. 학교에서 알아서 잘 하겠지, 내가 관심을 가져봤자 변하는 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년에 조한혜정 교수님의 ‘지구촌 시대의 문화인류학’이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달라졌다. 조한 교수님이 공사장 안에 천막을 치시고 그 안에서 철야농성하시는 걸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게 어려운 일인데, 다른 한편으로는 교수님도 저렇게 하는데 내가 아무것도 안 하면 안 되겠다는 부채의식이 생겼다. 그러다가 교수님이 나에게 함께 하자면서 제의를 하셨고, 그렇게 ‘백양로 난장2’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같은 뜻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하니까 활동이 쉬워지더라. 

박슬기 : 처음에는 우리 서로 다 모르는 사이였다.(웃음) 나 같은 경우는 졸업반인데, 그동안 학내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의사표명을 한 적이 없다. 무관심했다. 그러다 지난 학기에 학교에 와 보니 백양로 나무들을 베고 있고 분위기가 이상하더라. 내가 좋아했던 학내 공간이었는데 상실감이 들었다. 그래서 친구랑 같이 그곳의 플라타너스 나무에 헌화를 하고 작은 메모를 남길 수 있는 작은 행사를 마련했다. 그러다보니까 자연스럽게 천막 농성을 하는 교수님들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런데 밤은 못 새겠더라.(웃음) 그러다 공사장에서 문화인류학과 친구들이 운영하는 ‘백양 다방’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운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백양로를 지켜주세요'홈페이지




백양로에서 ‘놀면서’ 싸웠다

Q. 백양 다방의 취지는 무엇이었나.

슬기 : 공간의 점유. 백양로 주변이 폐허였는데 그곳이 죽은 공간으로 남지 않도록, 아직도 사람들이 있고 왔다 갔다 한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간이었다. 

재밌었다. 학교 안에 내 맘대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으니까. 언제나 가면 누군가 있고, 차도 마시고 쉴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곳이었다. 밖에서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외롭지 않고, 함께라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에 진지한 마음가짐으로만 임했다면 활동을 이렇게 오래 못 했을 거다. 재밌었기 때문에 도중에 힘이 빠지지 않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다.  

정현희 : 나는 활동가라기보다는 그때그때 관심 있는 문제가 있으면 함께 행동하는 정도다. 백양로 문제의 경우에는, 작년 2학기 개강을 했는데 나무가 없어져가는 모습을 보면서 화가 났다. 내가 햇빛 알러지가 있어서 밖에 있을 때는 나무 그늘 아래로 햇빛을 피해 다니는데 그늘이 없어져 가는 거다.(웃음) 또 공사 소음 때문에 시끄럽고, 짜증났다. 내 일상을 침범한 거지. 그러면서 ‘백양로를 부탁해’에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백양로를 부탁해 포스터) 공사장 펜스에 벽화를 그리고, 공사장 안에서 영화제를 열고, 퍼포먼스도 하고. 그러다가 ‘백양로 프로젝트 협의체’가 구성되면서 '백양로를 부탁해'의 활동이 뜸해진 뒤에는 백양 다방으로 갈아타게 되었다. 다방에 처음 갔을 때가 마침 성민이 생일이었는데, 만나자마자 다 같이 스프 끓여 먹고, 군고구마 구워먹고, 땅따먹기하면서 놀았다.(웃음)

그러다가 11월 13일에 교수님들 천막이 기습 철거되면서 다방도 같이 철거됐는데, 그 일을 계기로 전투적으로 변했다. 공청회 홍보도 하고, 기자회견 준비도 하고, 대자보도 붙였다.

ⓒ'백양다방'페이스북 페이지


무기력을 학습한 학생들이 안타깝다

Q. 그동안의 활동들이 올드하지 않고 발랄했다는 느낌이 든다. 

슬기 : 외부의 시각은 다른 것 같다. 과격하지 않아도 반대의사를 표명한다는 것 자체로 운동권이라고 생각한다. 정작 난 내가 운동권과는 종자가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는데.(웃음) 운동권 학생들을 비하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운동권들을 보면서 이질감을 느꼈는데 막상 내가 그런 시선을 받으니까 나도 그동안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 실제로 활동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 같다.


Q. 많은 학생들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건가.

슬기 :  그렇다. 거기에는 학교 측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전교생을 상대로 보내는 단체메일을 통해 '교수들과 학생들이 천막을 치고 방해를 하고 있다, 그 때문에 하루에 1억 얼마의 손해가 난다'는 식으로 이야기해왔다. 마치 방해공작단 같다. 

현희 :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행사를 준비하고 대자보를 붙여도 일상이 바쁜 학생들은 신경쓸 겨를이 없다. 그런데 학교의 단체 메일은 수동적으로 받아 볼 수밖에 없으니까. 학생들과 그나마 제대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학교에서 점유하고 있는 셈이다.  

성민 : 시대의 문제인 것 같다.(웃음) 이제는 개인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인센티브의 양상이 변화하고 있다. 스펙이 되어야, 자소서에 한 줄 써넣을 수 있어야 참여를 한다. 처음 백양로 문화제를 할 때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감독님을 초대해서 대화의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20명도 안 왔다. 근본적인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슬기 : ‘저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식의 분위기도 있다. '문제의 흐름을 뒤집을 수는 없다, 그동안 학교 측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던 일련의 사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게 뻔하다'는 반응들. 

현희 : 예를 들어 지난 2012년에 학교 측에서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앞으로 신입생들을 일정 기간동안 송도 국제 캠퍼스로 이전시켜 수업을 받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세워서 학생 측과 갈등이 있었다. 그때 당시 총학의 주도로 2000명 정도의 학생들이 모여서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그런데도 결국에는 학교 측의 의지가 관철됐다. 그렇게 많은 수의 학생이 모였는데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거지. 그 뒤로 연대 구성원들 사이에서 무기력이 학습된 것 같다. 우리가 모여봤자, 목소리를 내봤자 뭐가 변하겠어, 하는 식으로.  

ⓒ반음아래, 고함20



학생들의 목소리를 한데 모을 수 있는 통로가 필요하다 


건희 : <문우>에 관련 기사를 쓰면서 생각해 본 건데, 다른 한편으로는 백양로가 본격적으로 착공되기 전에 미리 총학과 중운위가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을 타이밍을 놓친 측면도 있다. 백양로 공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총학에서는 학교 측과 정보를 공유하고 협의를 해 오기는 했다. 총학 측의 제안 중 가벼운 것은 학교 측에서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당시 총학과 중운위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교생에게 백양로 문제에 대해 알려야 명분은 없다고 여겼던 거지. 좀 아쉽다.   

그때 몇몇 단과대나 과에서는 자체적으로 소속 학생들과 논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서 백양로 프로젝트를 좋게 보는 학생들은 많지 않았다.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학생들이 그전부터 있었던 거다. 그런 의사들을 효과적으로 수렴할 수 있는 통로를 총학과 중운위에서 제때 마련하지 못했던 것 같다. 좀 아쉽다. 

성민 : 우리가 백양로 관련 소식을 전하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학생들 개개인이 연락을 한 적도 많았다. 돕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런데 농성 천막으로 와서 도와달라는 대답 말고는 딱히 할 말이 없더라. 학내 성원들의 힘을 집결시킬 수 있는 장치가 없으니까. 

건희 : 어떻게 학생들의 의견을 모으고 집중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앞으로 계속해서 고민해야 할 성격의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비슷한 일들이 일어날 거다. 이제까지 겪은 경험들을 바탕으로 더 나은 대안을 고심하고 공유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