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 오전 11시.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총학생회 페이스북에 학생회비 사용 내역과 함께 해명 요청 글이 올라왔다.

45대 총학생회에서 학생회비를 당시 총학생회장 조모상에 대한 유류비와 통행료, 그리고 43대부총학생회장 부친상 조의금으로 사용한 내역이었다. 현재 페이스북의 좋아요 수는 5000건을 넘어섰고, 수많은 학생들이 총학에 해명을 요구하고 있다. 
 
 

2013년 총학생회비 부조금 사용내역 ⓒ경희대 45대 총학생회 페이스북

학생회비는 등록금 납부시 함께 부과되는 금액이다. 총학생회는 한 학기동안 이 예산으로 학교의 각종 행사나 동아리 지원, 학생복지 등에 사용한다. 학우들을 위한 '공적인'일에 사용되어야 함은 당연하다. 이전 부총의 조의금이나 상가집까지 이동하는 비용을 학생회비에서 지출했다는 사실이 학생들의 공분을 산 것이다.

내 피같은 학생회비를...!!



오후 4시경 45대 총학생회장 김나래씨의 해명글이 올라왔다. 주요 골자는 다음과 같다.
 
1.총학생회 예산은 확대운영위원회를 통해 인준받은 후 사용해야 한다.
2.조의금은 처음부터 이 예산에 책정되어 있었고 인준받은 내역이다.
3.활동비는 총학생회의 공식 업무에서 드는 비용을 지원한다. 
4.총학생회장 본인의 조모상이 울산에서 있었고 총학생회 집행부원들이 총학생회 활동으로 조문을 오면서 유류비와 교통비를 활동비로 사용한 것이다.
5.총학생회장의 조모상은 개인적인 일이 아닌, 공식적인 일이며 공식적 업무 공백이다. 따라서 활동비 지출로 판단했다.

라는 해명과 함께 예산 편성과 심의, 조의금에 대한 운용 기준과 판단기준을 덧붙였다. 또한 학우들의 질책에 대해서는 받아들이고 잘못된 판단에 대한 사과와 개선의지도 함께 적었다. 

세목에 포함된 조의금은 당연한것인가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총학생회 홈페이지에서 이러한 내용에 대한 예결산 내역을 찾아 볼 수 있었다. 2013년도 2월에 올라온 45대 총학생회 자치회비 1년 세출예산안을 살펴보면 7관 71항 771목 조의금 세목으로 200,000원이 인준되어 있음이 확인된다. 
 
 

2012년도 자치회비 예산안 ⓒ경희대 총학생회


 
총학생회에서 조의금 명목으로 인준된 예산을 조의금과 유류비, 통행료로 사용했다는 주장은 사실이다. 문제는 예산 책정이처음부터 잘못됐다는 점이다. 2012년도에 올라온 44대 총학생회 자치회비 예산안에서도 조의금 세목으로 300,000원이 책정됐었다.이전의 총학생회의 예산안은 나와있지 않지만 예산을 책정시 항목 기준이 전년도 예산안을 참고해서 만들어지는 점을 감안하면 조의금이란 세목의 예산 책정이 이전부터 있어 왔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2013년도 자치회비 예산안 ⓒ경희대 총학생회


 
김나래씨의 글에 조의금과 유류비를 공적 비용이라 판단한 근거가 나와있다. 

"이 비용에 적용되는 대상은 전년을 포함하여 총학생회 업무를 진행한 해당 학생중 유사시 재학생 신분이었던 사람으로 정합니다. 또한 총학생회장의 조모상은 대학본부에서 장례화환을 보내고, 조문비를 보내기 때문에 공식적인 일이며 공식적 업무 공백이라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확대운영위원회에서 총학생회 업무를 진행했거나 하고 있는 학생에게 조의금과 유류비를 지원하는 것을 공적 비용으로 인준해 온 것이다. 
 
총학생회장과 임원들의 활동비는 '학생들을 위한 활동'이라는 명분으로 지원된다. 김씨는 이에 대해 "공적 용무로 필요한 이동비, 총학생회장이기 때문에 많은 학우들을 만나면서 비용이 많이 든다. 이에 어느정도 자치회비 활동비를 책정함으로써 돈이 없어도 총학생회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에 한 네티즌은 "활동에 비용이 드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학우들을 만나 커피, 밥, 술을 지출을 학생회비에서 충당한다는 식의 답변은 총학생회의 학생회비에 대한 인식을 대변하는것 같다."며 비용이 총학생회의 MT나 뒷풀이 비용, 술자리에 쓰이는 것이 당연하다는 태도에 불쾌함을 표했다.
  
여기에 총학생회 구성원의 '조의금'이라는 지극히 사적으로 보이는 세목을 예산에 넣은 총학의 판단근거가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는 힘들어 보인다. 네티즌들은 "학생회가 움직인다는 이유만으로 학생회비가 이용되어야 하나.","교칙을 지켰다는 문제가 아니라 도덕적 옳고 그름의 문제로 봐야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악법도 법이다?

'이전에도 그래왔으니'라는 핑계로 옳지 않은 구습을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도 비난의 대상이다. 예산을 인준하는 확대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장단을 포함해서 전공/학과 학생회장과 동아리 회장 등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학생들의 투표를 통해 당선되는 '선출직'이다. 선거를 통해 그들의 판단력에 공신력을 얹어 주는 것이다. 그들은 학생회의 전통이더라도 부당한 항목은 개선해야 할 의무가 있다. 타 대학 예산안에서 '조의금'이란 세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잘못된 학칙을 방관한것도 의무불이행이다.

엄밀히 따져보면 경희대 총학생회 사건은 '횡령'이라기 보다는 잘못된 예산 책정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학생회비 사용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지고, "학생회비 내면 바보"라는 말은 더욱 힘을 얻게 됐다. 학생들을 위해 제대로 사용된 학생회비마저 의심의 눈초리를 면치 못하게 됐다.
 
3월 11일자 헤럴드 경제 기사에 따르면 각 대학의 총학생회비 납부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저조한 납부율로 각 대학 총학생회 대부분이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학생회비는 대학이라는 작은 사회에서 걷히는 세금이다. 국가 운영에 세금이 꼭 필요하듯, 학생회비는 학생들의 윤택한 학교 생활을 위해서 꼭 필요한 돈이다.  하지만 세금 내역이 투명하지 못하거나 이를 운용하는 집단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다면 그 누구도 세금을 내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후 6시 경희대 현 총학생회는 오는 18일로 예정되어 있는 올해 세출예산 인준위를 공명하게 열겠다며 이번 일에 대한 유감을 표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문제라고 치부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일이지만 우리 탓은 아니라는 태도를 보인다면 학생들의 실망만 커진다. 

스페인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는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반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이 전대의 과오를 잊은 총학생회에게도 미래는 없다. 보여주기 식의 수습이 아닌 학생회비를 운용하는 원칙과 태도에 대한 본질적인 접근과 제도의 재정비만이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