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동안 고민했다. 만약 앞으로 내가 살아갈 날이 300일밖에 남지 않았다면 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간단할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은 상상이었다.

일단 처음으로 든 생각은 내 인생에 기억이 남을 만한 여행을 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여행은 나의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행이 주는 달콤함만큼 그에 상응하는 막대한 경비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난 이 여행경비를 어디서 구해야 하나? 300일 후면 죽을 텐데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는 없는 일이지 않은가. 그래서 돈을 당장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일단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을 완성시켜서 당장 출판사로 들고 간다. 지금 쓰고 있는 소설은 겨우 발단 도입부만 썼을 뿐이지만 내게 300일이 남게 된다면 작심하고 써 내려갈 것이다. 그들로부터 내 필력을 인정받은 다음 내가 구상하고 있는 여행에 대해 말을 한다. 300일 후의 출판 약속을 받아 낸 다음, 그들의 보조금으로 인생 최고의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출처 : http://cafe.daum.net/BLEACH-Family/Mr0J/3?docid=1Hw9c|Mr0J|3|20090603143856



200일 동안의 여행 일정에 대해서는 딱히 생각해 보지는 않았다. 계획 있는 여행은 진짜 여행이 아니다. 풍랑에 휩쓸리기도 하고 그 풍랑을 뚫고 나가는 것이 자유여행이 주는 묘미 아닐까. 그래도 200일동안 꼭 가야 하는 장소는 있다. 첫째, 이탈리아의 두오모 성당에 꼭 가야 한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 쥰세이와 아오이가 만난 명소는 꼭 갈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는 그토록 사랑했던 10년 후 다시 만나는 애틋한 사랑을 그린 멜로영화이다. 이탈리아의 두오모 성당은 남녀가 재회하는 공간으로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냉정과 열정 사이’ 는 CD와 DVD를 소장하고 있을 정도로 내가 격하게 아끼는 영화이다. 둘째, 아프리카의 푸르른 초원에 꼭 가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사자와 호랑이들이 동물원이 아닌 초원에서 뛰노는 모습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셋째, 소매치기가 많다는 인도에 가야 한다. 인도여행은 옛날부터 꼭 하겠다고 벼르던 것이었으니까 죽기 전에 꼭 해야 한다. ‘세계일주’라는 거창한 여행을 하면 좋겠지만 이 세 곳만 간다고 하더라도 난 충분히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출처 : http://www.wisia.com/item/145661

 

200일 동안의 자유여행을 마친 나는 나머지 100일은 세상에 남을 만한 작품 집필에 들어갈 것이다. 나는 100일 후면 죽겠지만, 내 작품은 내 이름으로 이 세상에 멸망하지 않는 한 존재할 테니 말이다. 나는 200일 동안 내 생애 최고의 경험을 했기에 나머지 100일 동안은 내 경험을 녹여낸 글을 쓸 것이다. 머리를 쥐어 짜내서라도 실험적인 작품을 만들어 낼 것이다. 물론 작품을 집필하는 동안은 잠수를 탈 것이다. 주변인들에게는 여행 중이라고 알리고 나서 100일 동안 습작의 고통을 감내하며 작품을 탄생시킬 것이다. 편집장과는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결국 내가 죽는 날 출판을 한다는 확답을 받아낸다. 전제조건은 편집장이 내 작품에 완전 감동해야 한다. 편집장으로부터 이 작품은 분명히 대박 날 것이라는 소리를 듣고 이 작품의 수익배분에 대해 논의한다. 수익이 생기면 50%는 가족 앞으로 나머지 50%는 불우이웃이나 난민을 돕는 데에 쓸 것이다.


                               ▲ 시한부 인생을 그린 드라마 '90일 사랑할 시간'
               (출처 : http://cafe.daum.net/withTG/5Kh/1938?docid=CTyr|5Kh|1938|20070102092457 )


가족을 비롯한 주변 지인들에게는 내가 죽는다는 것을 철저히 숨긴 채,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올 법한 대사를 날릴 것이다. 내가 언제 죽을 것이라고 말하고 찌질하게 죽기는 싫으니까 말이다. 언제 어디로 유학을 떠난다고 위장을 하고 뒷수습은 편집장에게 맡긴 채 난 생을 마감할 것이다. 전제조건은 편집장이 아주 믿을 만한 ‘내 사람’이어야 한다. 편집장은 불과 300일 전에 처음 본 사람이지만 사후의 일을 책임질 막중한 임무를 띤 사람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와 친해져야 한다. 300일 동안 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고 잘 해 줄 것이다. 난 300일 후에 죽을 것이니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주위의 사람들에게 잘 해야 하지 않을까? 설령 그들이 나중에 내 죽음을 안다고 하더라도 ‘그 때 그 사람은 참 좋았다.’ 는 인상을 남기고 싶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내 300일은 끝이 난다. 나의 300일은 생각보다 구체적이지 않고 무모하지도 않다. 한편으로는 비현실적인 면도 있다. 당신에게 앞으로 살아갈 날이 300일만 남지 않았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겠는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얻은 결론은 300일 그 이상을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지금 내 삶에 충실해야겠다는 것이다. 300일 그 이상의 삶을 만드는 것은 내 손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