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로 꽤나 재미를 보자 다른 신문사도 줄지어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고함20도 염치없이 이 축제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을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강의실에선 우리가 평가받는 입장이지만 이젠 우리가 A부터 F학점으로 대학을 평가할 계획이다. 비록 고함20에게 A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학보사가 대서특필 한다든가 F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훌리건’이 평가항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은 없겠지만, 고함20의 대학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일침이 되길 기대한다.

연간 등록금 1000만 원 시대는 미술이나 음악, 연극영화 등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을 특히 힘들게 했다. 대부분의 대학이 실습을 명목으로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의 등록금을 예술계열에 더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술계열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납부하는 등록금만큼의 교육 혜택을 누리고 있을까. 고함20 대학평가 스물세 번째 주제는 ‘예술계열의 실습환경’이다.

C+ 국민대학교 : 난방과 온수가 되지 않는 실기실

과제가 많은 예술계열 학생들은 자연히 학교 실습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야작’이라고 불리는 야간작업을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때문에 적절한 냉‧난방과 자유로운 온수의 이용은 학생들에게 절실하다.

하지만 국민대 조형대학 실기실은 온수의 사용은커녕 냉‧난방도 자유롭게 할 수 없는 구조다. 중앙집중식 난방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학생들은 난로와 선풍기 등을 개인적으로 구매해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학생들은 실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먼지와 유해물질을 제거할 수 있는 환풍기와 집진장치(먼지 등을 한 곳으로 모으는 장치) 등을 설치해줄 것을 학교에 요구하고 있다.

C 서울여자대학교 : 가마비와 재료비는 학생 부담

국민대와 마찬가지로 서울여대 실기실 역시 적절한 난방과 온수가 제공되지 않고 있다.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은 컴퓨터를 사용할 일이 많지만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20대의 컴퓨터를 나눠 쓰고 있는 실정이다. 미술대학에 할당된 공간 자체가 좁다 보니 학생들이 만든 작품을 수납할 공간마저 부족하다.

학생들이 토로하는 또 다른 문제는 실습 과정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비용을 학생 개인이 부담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술대학 내 공예학과 학생들은 재료비는 물론이고 가마비(도자기 등을 굽는 비용)도 직접 내고 있다. 타과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여대 학보의 보도에 따르면 산업디자인과의 경우 작품 하나를 만들 때 최소 10만원의 비용이 들지만, 학교에선 3만 원짜리 교내 화방쿠폰을 제공할 뿐이라고 한다.

 

비가 새는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실기실의 모습. ⓒ KBS 취재파일K 화면 갈무리.

 

D 홍익대학교 : ‘미대의 외침’을 들어주세요

미술대학으로 유명한 홍익대지만 사정은 마찬가지다. 홍익대 미술대학 학생들은 올해 3월 학생회를 중심으로 ‘미대의 외침’이라는 단체를 꾸려 교육권을 주장하는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이들이 주장하는 것은 미술대학의 공간문제 해소와 실습환경의 안전성 보장이다.

현재 미술대학 건물은 학생들의 야작 여부와 관계없이 오후 11시부터 오전 5시까지 폐쇄되고 있다. 그 시간동안 발생하는 사고는 고스란히 학생이 책임져야 한다. 학생들은 야작 시에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야작계’를 작성한다. 집진장치와 같은 기본적인 시설 역시 미비하다.

홍익대 당국은 현재의 미술대학 건물을 철거하고 16층 규모의 새 건물을 수립할 계획이다. 하지만 신축 건물이 더 나은 실습환경을 보장하리라는 기대를 하기는 힘들다. 학교 측이 신축 건물의 공간 배치에 대해 학생들과 논의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이 임대사업 등 수익을 내기 위한 용도로 활용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건물이 온전히 미술대학 학생들을 위한 공간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D- 가천대학교 : 페달이 부러진 음대 피아노

가천대 예술대학은 미술과 음악을 막론하고 실습환경이 열악하다. 미술 전공 학생들이 사용하는 실습실은 비를 막기 위한 천막을 학생들이 직접 제작하는 상황이고, 음악 전공 학생들을 위한 피아노는 페달이 부러지거나 선이 끊어져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쥐가 의자를 파먹은 피아노도 있다고 한다.

졸업 작품 등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도 부족하다. 현재 전시 공간으로 이용되는 아트홀은 예술대학 내 미술디자인학부와 건축학과 등 여러 개의 학과가 함께 사용하기에는 턱없이 좁다. 가천대 총학생회는 환경 개선을 위해 학생총회 등을 진행하고 학교에 요구안을 전달한 바 있다.

F 수원대학교 : 쌓인 적립금, 비새는 실기실

수원대 미술대학은 실습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의 집약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간이 부족해 실습 때 만든 조각 작품을 쓰레기더미 옆에 두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나마 있는 건물은 비가 새서 한국화와 서양화 전공 학생들은 비가 오면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토로한다. 학생들의 불만이 빗발쳤지만 학교는 비닐로 창문을 막는 조치를 취할 뿐이었다.

인문대학 내 연극영화학부 역시 상황은 마찬가지다. 연습을 위한 공간이 제대로 없어 학생들은 일반 강의실에서 임시로 연극 연습을 한다. 영화 전공 학생들은 사비를 털어 부족한 기자재를 대여하고 있다.

실습환경이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수원대 측은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두고만 있다. KBS의 보도에 따르면 수원대는 교비 15억 원을 미술품을 구입하는데 사용했다. 이 미술품은 교육용으로 전시되기는커녕 총장이 운영하는 리조트에 장식용으로 걸려 있다. 학생들의 교육권을 철저히 외면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