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로 꽤나 재미를 보자 다른 신문사도 줄지어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고함20도 염치없이 이 축제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을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강의실에선 우리가 평가받는 입장이지만 이젠 우리가 A부터 F학점으로 대학을 평가할 계획이다. 비록 고함20에게 A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학보사가 대서특필 한다든가 F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훌리건’이 평가항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은 없겠지만, 고함20의 대학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일침이 되길 기대한다. 

고함20 대학 평가 스무 번째 주제는 바로 재수강이다. 재수강 제도는 대학생들이 학점의 취약함을 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그러나 또한 학점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는 주범이자 척결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현재 정부지정재정제한대학평가 ‘학점관리’ 항목이 평가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고, 학점 세탁 관행을 없애기 위해 대학교육협회가 각 학교에 해결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그 후, 대학에서는 학점 인플레이션을 개선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았다. 학생들과의 합의 없이 일방적으로 재수강 기준을 조정하기도 했다. 기존 재수강 제도의 편협함도 여전히 존재했다. 대학들의 재수강 제도에 대해 낱낱이 살펴보자.

서울대 / B: 재수강 시 받을 수 있는 학점 제한

2014년 3월, 서울대는 학점 인플레이션이 난무하는 대학가에 경종을 울리기 위하여, 재수강 시에 받을 수 있는 최대 학점을 A로 제한하기로 했다. 저학년 때 학업을 소홀히 한 뒤 졸업을 앞두고 재수강으로 학점을 높이려는 관행에 경종을 울리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학칙상 재수강이 C+부터 가능하므로, 많은 학생이 학점을 높이기 위해서 교수님께 학점을 ‘내려달라고’ 부탁한 후에 재수강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학칙 개정을 통해서 학점을 높이기 위한 맹목적인 재수강에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의견은 분분하다. 재수강 페널티에 대해서 부정적인 의견이 대다수이지만, “A 대 학점을 아예 안 주는 것도 아니니까 큰 무리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학생들 역시 있었다. 게다가 서울대는 지난 2005년 재수강 시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재수강 제도 변경을 시작한 이후, 학생들의 큰 반발 없이 변경을 진행한 터라 B를 드린다.

전남대 / C : 재수강 학점 제한 제도 

전남대는 재수강 학점에 정해진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2013년 여름 학기부터 전남대는 일방적으로 학칙을 개정했다. B 이상을 받은 학생들은 재수강을 할 수 없으며, 재수강 시 취득할 수 있는 학점을 최대 A로 개정한 것이다. 정부재정지원제한 대학 100점 만점에서 ‘학점 관리’ 항목이 4.4점으로, 큰 영향을 작용하고 있고, 전남대는 전국 4년제 국공립대 중에서도 이 항목의 점수가 최하위권이었기 때문에 시류에 따라 빠른 대응을 취한 것이다. 

ⓒ뉴시스 2013년 12월 11일 전남대 학생들이 대학본부를 규탄하고 있다

 

갑작스러운 학칙 개정으로 학생들은 당황스러웠다. 전남대 총학생회는 아무런 사전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학칙을 개정하는 것은 학생들에 대한 횡포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러한 갑작스러운 규정 시행은 용납할 수 없고, 1년간의 유예기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전남대는 제도 변경이 이미 2013년 여름 학기부터 적용되었기 때문에, 기준에 따라 강의를 이수한 학생들에게 형평성 문제가 있다며 유예기간은 없다는 의사를 밝혔다. 재수강 제도를 둔 대학 측과 학생들의 갈등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중요한 학점이 걸린 만큼, 서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세대 / D : 기회는 단 3번뿐

연세대 정갑영 총장은 2012년 교육 콘퍼런스에서 “학생들이 반발이 심할지라도 현 재수강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발언한 적 있다. 그리고 그 해, 대학 측은 학점 세탁을 막기 위해 재수강 제도를 전면 폐지하겠다고까지 발언했다. 당시 총학생회는 거세게 반발했다. 재수강 제도와 관련된 논의들을 철회해달라고 1만인 서명을 시행하기도 했다. 결국, 재수강 제도 폐지는 막았지만, 당해 13학번 신입생들부터 재수강이 단 3번 가능한 것으로 학칙이 변경되었다.

재수강 제도를 3회로 지정해놓았지만, 대학 측의 조사에 따르면 학생들의 평균 재수강 횟수는 5.3회로 큰 차이가 없는 횟수이다. 사실상 학생의 배움의 자율이 허용되어야 하는 대학에서 수업을 얼마를 들어야 하는지 정해주는 것이 부당한 처사라는 것이 학생들의 주된 생각이다. ‘재수강 횟수 3회 제한’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13학번 이후 신입생들이 대학생활의 즐거움을 포기하기도 한다. 연세대 2학년 김 모 씨는 “활동이 바쁜 공연 동아리라 새내기들의 지원이 많이 줄었다. 신입 부원 중에 14학번 비율이 확연히 낮다”고 전했다. 학교 등의 일방적인 제도 변경과 자율권 침해로 D를 드린다. 

동덕여대 / D : 영원히 함께 가는 F 

아무리 재수강 제도가 엄격한 대학이라 할지라도, F 학점 재수강은 예외로 남겨두는 편이다. 재수강 제도에 제한이 많더라도 0점대의 F 학점은 재수강을 통해 지울 수 있게 해두는 것이다. 하지만 동덕여대의 경우 F 학점의 재수강에서도 엄격한 제한을 두고 있다. 동덕여대 학생들은 F 학점을 받게 되면, 해당 과목을 재수강할 수 없다. 같은 과목을 다시 들으면 최초수강 처리되고, 처음 받은 학점은 여전히 전체 평점에 포함된다. F 학점을 졸업까지 안고 가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생각했던 학생들은 이러한 학칙이 당황스럽기 마련이다. 동덕여대 2학년 김 모 씨는 “학칙은 본인이 알아봐야 하고, 애초에 F를 받고 나서 재수강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기는 하다. 그래도 개인 사정이 있을 수도 있는 건데 성적에서 지울 수 없는 F가 재수강도 안 된다는 것은 너무 가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익대 / D- : 재수강은 계절에 해야 제맛

홍익대의 기존 재수강 제도는 C+ 이하부터 재수강을 허용하고, 재수강 시 최대 취득 학점을 B+로 제한했다. 하지만 이러한 재수강 제도는 계절 학기에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이전에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와 상관없이 계절 학기를 자유롭게 들을 수 있다. 또한, 기존에는 재수강 시 최대 취득 학점이 B+이지만 계절 학기에서는 이러한 제한 없이 성적에 따라 받을 수 있다.

학생들은 한 학점당 8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이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계절 학기를 듣고 있다. 대학 측은 계절 학기에 열리는 과목이 대부분 전공과목이 아닌 교양 과목이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정규 학기와 계절 학기에 같은 기준이 적용되는 것에 비해, 계절 학기에만 예외를 두는 것은 계절 학기를 통해서 ‘장사’를 하려 드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피할 수 없다. 

학점 인플레이션 때문에라도 재수강 제도의 개선은 필요하다. 하지만 학점이 취업의 당락을 결정지을 수 있는 한, 학생들의 끊임없는 재수강 또한 이해가는 처사이다. 학생들은 본인이 원하는 수업을 들을 권리가 있다. 또한, 대학은 양질의 수업을 제공하고, 관리할 의무가 있다. 학교 측의 일방적인 강요 대신 조율이 필요한 단계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