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그로] : Aggravation(도발)의 속어로 게임에서 주로 쓰이는 말이다. 게임 내에서의 도발을 통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적의를 갖게 하는 것을 뜻한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자극적이거나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끄는 것을  "어그로 끈다"고 지칭한다.

고함20은 어그로 20 연재를 통해, 논란이 될 만한 주제들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자 한다. 여론에 정면으로 반하는 목소리도 주저없이 내겠다. 누구도 쉽사리 말 못할 민감한 문제도 과감하게 다루겠다
. 악플을 기대한다.



지난 3월, 생리대 제조업체인 ‘화이트 유한킴벌리’는 ‘생리휴가신청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캠페인은 3월 19일부터 4월 30일까지 유한킴벌리 SNS상에서 활발히 홍보되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참여자들이 뮤직비디오 형식을 통해 생리휴가를 신청하도록 돕는것이다. 유한킴벌리는 '직장 내에서 생리휴가가 직접 말하기 꺼려지는 현실을 반영한 캠페인'이라고 의도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캠페인에는 정중, 당돌, 애교 등 세 가지 컨셉의 뮤직비디오가 마련되어 있다. 각기 다른 노래를 입혀 음악적 다양성(?)까지 갖췄다. 먼저 '팀 리더님'이 좋아할만한 버전을 고르고, 자신의 얼굴이 입혀진 뮤직비디오를 전송하면 된다. 가사는 대동소이하다. “여자의 그날, 자신감도 없어지고 우울해서 일이 잘 안되니 하루 쉬게 해주세요. 존경하는 상사님.” 상사는 영상을 본 즉시 거부와 수락을 선택할 수 있다. 추첨을 통해 생리휴가 신청자를 위한 호텔숙박권을 증정하는 이벤트도 있었다.




유투브에 업로드 된 생리휴가찾기 캠페인 광고.



살아있지만 움직이지 않는 화석, 생리휴가


유한킴벌리가 20대~30대 직장여성 13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생리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이들이 10명중 8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생리휴가는 사용되는 경우를 본 적 없어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된 유령에 가깝다. 법으로 보장되어있는 휴가마저 ‘부탁'해야하는 아쉬운 처지에 무슨 변명(?)이겠냐마는, 이 때마저도 ‘존경하는’ 상사님이라고 아부해야 한다. 이 캠페인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은 끊임없이 상사에게 부탁하고 권리를 갈구한다.


생리휴가 뿐만아니라 월차와 연차도 그렇다. 자체 '빨간날'을 만들기 위해서는 상사와 동료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법이 보장하는 권리치고는 넘어야 할 장벽이 가파르다. 아빠가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나 엄마가 출산휴가를 써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직장사회에서 휴가의 사용은 '따박따박 받아먹는'다는 말로 표현된다. 내 휴가는 곧 다른 이의 일거리가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옆자리 동료의 권리찾기를 비웃을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명칭만 바꾸면 '휴가를 찾자'는 캠페인은 어느 경우라도 적용이 가능하다. 



'생리휴가찾기 프로젝트'의 맹점


1분이 채 안되는 이 발랄한 뮤직비디오 세 편이 의미하는 바는 의외로 분명하다. 이것은 역설도 반어도 아니다. 오히려 한국사회에서 가능한 휴가신청법의 견본이라 할 만하다. 근로기준법상 가장 지켜지지 않는 휴가일 중 하나를 받고자 생리대회사가 꾀한 방법은 바로 상사앞에서 ‘가무’를 하는 것이다. '당당하게' 생리휴가를 찾는다는 문구 역시 직장인들의 '받아먹기'마저 특정태도를 견지해야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자연스러운 생리휴가 신청을 장려한다는 당초 취지가 무색하다.





생리휴가가 정신적 피로감만을 배려하는 정책이 아님에도 뮤직비디오는 심리적인 애로사항을 호소하는데 무게가 쏠려있다. 가사는 생리기간 중 여성의 스트레스와 자신감 하락, 우울감을 설명하는데에 그친다. 물론 그래야만 '말랑말랑'한 뮤직비디오 분위기와 좋은 조합을 이룬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여기서 월경전증후군이나 생리기간 중 나타날 수 있는 신체적 불편함, 질병에 대한 언급은 소거된다.


애교있게 또 싹싹하게 부탁하는 직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생리휴가는 아니다. 직장인의 태도와 상관없이 보장되어야 하는것이 휴가이며 근로기준법이다. 굽신거려야 겨우 쉴 수 있는 사회에서, 뮤직비디오가 추구하는 '유머'가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뮤직비디오 형식의 휴가신청서는 법이 보장하는 권리마저 기업이 대신 외쳐주어야 하는 한국 노동조건의 우스꽝스러운 자화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