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앞으로 다가온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후보 본인인 아버지보다 오히려 자녀들이 더 큰 이목을 끌고 있다. 고승덕 후보의 딸과 조희연 후보의 아들이 각각 쓴 글은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하며 선거의 방향을 바꿀 마지막 변수로 평가받고 있다. 후보들 간의 토론에서도 정책 대결보다 자녀들의 문제를 놓고 벌어진 공방전이 더욱 뜨거운 양상이었다. 조희연 후보는 고승덕 후보 장남의 이중국적 의혹을 제기했고, 고승덕 후보는 특목고․자사고 폐지를 주장하는 조희연 후보에게 “두 자녀들은 왜 외고를 보냈느냐”고 반문했다. 선거 때마다 반복되는 후보자 자녀들의 행적이나 이력을 둘러싼 논란이 이번 6.4 지방선거에서는 특별히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외고 폐지를 주장하는 후보의 자녀가 외고에 다니는 게 문제의 소지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이 글에서 판단을 내리지 않겠다. 그것은 유권자 개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며, 또 다른 글을 통해 이야기할 수 있는 철학적 문제에 가깝다. 대신, 이 글을 통해 지적하고자 하는 바는 이러한 논쟁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 관한 철저히 한국적인 인식이다. 왜 조 후보에게 질문을 던지는 고 후보의 문장이 “두 자녀들은 왜 외고에 갔느냐”가 아니라 “두 자녀들은 왜 외고를 보냈느냐”가 되는지, 왜 후자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여겨지는지에 관한 것이다.

주 상식적인 선에서 생각했을 때, 후보의 자녀들 또한 하나의 독자적인 인간이다. 그들도 그들 나름의 가치관을 가지고 있고 그들 스스로 주체적인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아주 분명한 얘기다. 조 후보 자녀들의 사례를 다시 가져와 이야기해보면, 조 후보의 자녀들이 아무리 중3이라는 어린 나이였어도 그들도 그들의 진로에 대해 스스로 고민을 했을 것이란 사실은 명백하다는 것이다.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일반고, 심지어는 특성화 고등학교까지 그들의 앞에 놓인 수많은 선택지들 속에서 ‘자녀들도’ 나름대로 미래를 설계하고 자기 인생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당연히 갖는 존재이다. 

따라서 조 후보의 자녀들이 외고에 진학한 결과를 놓고 아주 기본적으로 ① 자녀들은 외고를 원치 않았는데 조 후보가 강요한 경우, ② 자녀들과 조 후보가 모두 외고 진학을 원한 경우 ③ 조 후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녀들이 외고를 선택한 경우 등의 과정을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조 후보에게 문제를 제기하는 고 후보도, 이를 보도하는 언론들도, 이 보도를 접하는 우리들도 모두 아주 당연하게 자녀들의 외고 진학은 부모의 선택에 의한 결과인 것처럼 말하고, 쓰고, 받아들이고 있다. 그들이 청소년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의 독자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것처럼 그렇게 청소년을 소비하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단순히 그들이 성인이 아니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고 후보가 조 후보의 자녀들에게 제기한 의혹은 하나 더 있는데, “장남은 왜 군 복무를 하지 않고 있느냐”는 것이다. 이미 대학원에 재학할 정도로 다 큰 자녀의 인생 문제를 부모에게 따져 묻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게 한국사회라니. (이래놓고 어떤 다른 순간에는 ‘캥거루족’이 많아져 문제라면서 너무도 독립적이지 못한 20대를 꾸중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는 사실 고승덕 후보의 딸을 통해 명확하게 보지 않았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영향을 줄 수는 있어도, 자식이 부모가 강요한 생각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독립적인 개별 존재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 사회는 자녀라는 존재를 부모에게 종속시키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