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연대가 준비해 5월부터 시민들과 만남을 가졌던 <대학> 강좌의 마지막 시간이 왔다. 오늘의 강연자는 수유+너머의 고병권이었다(여기서 수유+너머는 연구공간으로 좋은 앎과 좋은 삶을 일치시키는 연구자들의 생활공동체를 뜻한다). 지난주 김규항씨와 마찬가지로 편한 차림으로 강연장에 들어선 그는 먼저 자신이 대학과 그리 가깝지 않은 사람이라는 점을 밝혔다. 대학에 대해 여전히 모르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많다면서. ‘그럼 왜 강연을 해?’ 하며 반문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이 ‘대학에 무지’하다는 점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2003년, 혹은 2005년. 정확한 연도도 기억나지 않는, 적어도 5년은 더 된 과거에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가 불쾌한 경험을 했다. 첫 시간부터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고 뒷줄에 앉아 엎드려 있었던 세 명의 학생이 문제의 발단이었다. 정식 수업과정을 진행하는 날도 아니고 해서 넘길까 생각했으나 여간 거슬리는 것이 아니어서 지적했더니 “이래도 다 들려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물론 그 말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기본적으로 배울 자세조차 갖추지 않은 학생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국 대학 내 강의는 그 수업이 마지막이 됐다. 고병권은 현재 대학원 강좌를 하나 하고 있지만 거기엔 원치 않는 자리에 끌려온 사람들이 자리만 지키는 사람은 없다. 학생 수도 단 한 명이다. 그와 학생은 차를 마시며 심도 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차이가 분명하다.


 보통 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대학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고병권은 대학이란 ‘공간’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다만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면면이 어떤지에 훨씬 더 흥미를 가졌다. 대학 말고도 그가 설 무대는 많았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강의를 할 일이 많았는데 그때 고병권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앎과 배움의 성격이 대학의 그것과는 무척 다르다는 것. 소위 가방끈이 짧다고 평가받는 그네들은 비록 학습 과정 중에 참조할 만한 ‘본인의 앎’은 부족했지만, 배운 것을 삶에 일치시키는 데에는 더 뛰어났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참조하며 강연을 듣는 그들은 논리적 정합성의 틀에 갇히지 않은 채 삶에 적용시킬 수 있는 질문을 했다.






 고병권이 강연 내내 강조한 것은 대학은 말 그대로 ‘배움이 일어나는 곳’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대학이 앎과 배움을 매개로 한 삶의 공동체로 구실한다면 그 어떤 곳이어도 상관 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초기 대학이 장이 열리듯 이곳저곳에서 열렸던 이유다. 또한 당시 대학에서 중요한 것은 어떤 배움을 얻느냐의 문제였기에 요즘처럼 지식인은 대중과 유리되어 있지 않았다. 대학(University)라는 말이  앎과 배움을 매개로 한 삶의 공동체라는 '우니베르시타스(universitas)'에서 나온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14세기에 접어들면서 대학의 모습은 많이 달라졌다. 학문하는 일은 경제상황과 무관하게 모두가 누려야 한다는 생각이 옅어지면서 대학은 교황과 군주 등 후원자의 지배 아래 들어간다. 교수는 축재하는 자가 되며 점차 귀족화되었고 학생들은 스승을 주군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배우는 자와 가르치는 자 사이에 어느샌가 권위라는 벽이 생긴 것이다. 청중에 둘러싸여 무언가를 말하던 중세의 대학인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그들은 서재에서 혼자 사색하는 사람들로 바뀌어 버렸다.


 교수(Professor)라는 말은 '공언하다', 고백하다'라는 라틴어 profiteor, professus sum; pro et fateor에서 연원한 말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보통 교수의 말에 권위와 성실성이 배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어느샌가부터 우리는 교수의 개인 행적보다는 그/그녀로부터 얻을 지식에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왜 살아온 대로 말하지 않고 말해온 대로 살지 않는가 하고 묻지 않는다. 대학이 배움을 펼치는 공간이라는 말은 역시 화석화된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병권은 앎의 구원이 절실한 곳은 자본이 아니라 삶이라고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진리를 배우지 못한다면, 적어도 진리를 말할 용기를 배워야 한다는 그의 말에 자연히 고개가 끄덕여졌다. 나는 과연 대학에서 진리를 말할 용기를 배우고 있는 것일까. 마지막 강연자로 고병권이 온 것은 시기적절했던 것 같다. 단순히 일정 기간을 할애했다는 느낌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생각거리를 남겨 줌으로써 특강의 여운이 자연히 지속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