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 꼬박꼬박 인권연대의 대학 관련 특강을 듣고 있는데, 이번 주 강의가 가장 도발적이었던 것 같다. ‘대학, 꼭 가야 하나?’라는 짧은 물음이었지만 내면의 파장은 컸다. 오늘 강연을 맡은 주인공은 세상에서 하나뿐이라는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의 편집장인 김규항씨가 맡았다. 인권연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최근 조사에서 개인주의 성향을 비롯해 가장 ‘왼쪽’에 자리하고 있다는 그였다. 그 말에 강연을 더 경청하게 되었다.




 캐주얼한 차림으로 등장한 김규항 편집장은 핸드아웃도 없이 강연을 진행해 나갔다. 그의 이념적 성향에 대한 언급에 대해 잠시 해명(?)의 시간도 가졌다. “제가 가장 좌측이라고 하셨는데, 정말 그렇다면 대한민국에 문제가 있는 거지요. 저는 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이 정권 들어 특히나 자주 언급되는 ‘상식’. 그 동안 상식, 아니 상상을 초월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했기 때문이 아닐까. 남들이 지닌 만큼의 상식과 교양을 갖춘 김 편집장의 이야기는 매우 재미있었다. 


 우리는 흔히 우리나라만큼 많은 교육문제를 가지고 있는 나라도 드물다고 생각한다. 교육감 선거가 이렇게 큰 이슈로 부상하고, 매년 입시제도의 변화로 나라가 들썩이기 때문이다. 수능 당일에는 잠시 동안이나마 일상의 흐름마저 멎게 할 수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과연 이게 ‘진짜 교육 문제’일까? 김규항 편집장은 아니라고 했다. 이 아이가 얼마나 높은 등급인지 알아낼 수 있는 가장 공공연한 절차인 ‘입시’만이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전부이며, 대학에 가기 위한 유난스러운 과정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까닭에 ‘교육문제’라고 포장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입시에 있어서만큼은 좌우와 진보, 보수가 구분되지 않는다.

 
 어린이 교양지를 만드는 편집장답게 그는 입시제도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에 초점을 맞추어 강연을 해 나갔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박정희 군사정권이라는 극단적인 시대에서도 아이들에게 권장되는 사회적 임무는 ‘노는 것’이었단다. 학교 마치고 나서 어디로 놀러 나갔는지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아이가 30분만 소재 파악이 안 되면 부모들은 불안해하거나 분노한다. 자연스러운 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또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어도 입시의 무게를 느끼며, 빡빡한 사교육 일정으로 하루를 바삐 보낸다. 중3 때까지만 학원을 다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법 자유로운 방과 후 생활을 보낸 나는, 30분의 공백조차 허용되지 않을 만큼 빡빡한 생활을 하는 요즘 아이들에 비해 얼마나 행복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김 편집장은 우리나라의 독특한 교육풍토를 독일의 그것과 비교해 설명했는데 꽤 흥미로웠다. 정확히 말하면 독일의 교육문화가 재미있었다. 독일로 가게 된 한국의 엄마는 아이가 혹시라도 뒤처질까봐 초등학교 입학 전에 동화책을 모두 독일어판으로 바꾸어 예습을 시켰다. 그런데 웬걸? 그 반에서 독일어를 읽을 줄 아는 아이는 한국아이 한 명밖에 없었다. 대단한 학습능력을 지닌 아이라고 생각한 담임교사는 부모에게 끈질기게 월반을 권유했다고 한다. 또 수업 중간에 발표를 한다든지, 교사가 설명하는 중간에라도 아이가 아는 부분이 있을 때 아는 척을 하는 것에 꽤 관대한 우리나라와 달리 독일에서는 전체적인 학습 분위기를 망친다며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압권은 시험 일정을 미공지 부분이었는데, 독일 교사의 말에 아무런 반박도 할 수 없었다. “시험을 언제 보는지 알면 아이들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겠습니까? 어릴 적부터 공부 때문에 많이 괴로워하면 정신적으로 손상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그렇게 되는 걸 바라지는 않으시죠?” 시험 때까지 열심히 달려 모든 것을 착착 준비하고 최대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에만 관심을 두는 사회에서 자란 내게 이런 이야기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대학 진학률이 90%에 다다르는 모습이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데도, 막상 독일의 대학 진학률이 30% 후반에 머무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학력 수준과 삶의 질이 비례하는 비율이 5%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래 전부터 깨달았던 것일까?



 
 그러나 불타는 교육열을 가져 입시에 모든 것을 거는 학부모를 마냥 매도할 수는 없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우리는 모두 알게 되었다. 극한 상황에서는 오로지 본인의 생존력 하나만 믿고 가야 한다는 것을. 나라 전체가 위급한 때를 맞아도 정작 국가나 사회는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기에, 내가 강해져야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동시에 이런 불행을 자식에게까지 대물림해 줄 수 없다는 판단도 하게 되었다. 생존 경쟁의 시대에 뛰어들었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대학 졸업장이라고 여겼기에 더욱 더 입시에 매달리게 된 것.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비이성적인 입시 열기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아니다. 과열된 교육열 속에서 아이가 희생양이 되는 구조는 분명 고쳐져야 한다. 대학 진학에만 목숨을 걸고 아이들을 같은 길로 몰아넣는 ‘암묵적으로 합의된’ 분위기를, 적어도 한번쯤은 찬찬히 돌아봐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도 아닌데 요즘은 아파트 부녀회에서 강연 요청까지 들어온다며 머쓱해하는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부분의 질문이 자녀교육에 관한 것이었다. 게임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조언을 구하는 부모도 있었고, 학교의 공고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만 자유롭게 풀어두어야 하는지 묻는 부모도 있었다. 취미, 특기가 공부가 아닌 여동생의 입시 문제를 걱정하는 멋진 오빠도 있었다. 강연에 참여한 시민들은 김규항 편집장의 자녀 교육 방침에 대해서 가장 궁금해 했는데 그는 명료하게 답했다. 약 2~3년 정도 아이들과의 깊은 대화 끝에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아이를 만들어 놨으면 되도록 아이를 행복하게 살 수 있게끔 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며, 교육 아닌 교육을 자행하는 현실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많이 다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자고 말했다.


강연 말미 즈음에 나온 아이를 위한 10가지 제안을 덧붙이며 글을 마친다.


1. 오늘 행복한 아이가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다.
2. 아이는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독립된 개체이다.
3. 아이는 제대로 잘 놀아야만 건강한 신체와 정신을 가질 수 있다.
4. 돈은 아이의 생활을 행복하게 하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5. 모든 아이를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6. 교육의 목표는 얼마짜리로 키우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으로 키우느냐에 있다.
7. 몇 등을 했느냐 보다는 어떻게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8. 대학은 갈 수도 안 갈 수도 있으며 부모가 강요할 수 없다.
9. 사교육은 아이와 상의하여 결정한다.
10. 아이의 직업 선택에 있어서 부모가 가진 편견을 강요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