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하는 우리나라에서 ‘대학’은 늘 뜨거운 화젯거리가 되는 소재 중 하나이다. 그 자체로 어마어마한 힘을 자랑하게 된 대학에 대한 논의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대학 입시 제도에 큰 문제가 있다는 것부터 시작해 대학 교육이 더 이상 학생들에게 큰 배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까지 범위는 넓고 다양하다. 하지만 한 번 생각해 보자. 우리는 그 동안 얼마나 열정적으로 대학에 대한 담론을 나누었는가. 누구나 문제점은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적인 한탄과 불평으로 그치지 않았던가. 대학과 관련한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인사를 초청, 강연을 진행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자리를 인권연대에서 마련했다. 5월 24일부터 시작된 ‘대학, 대학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강연 두 번째 시간 ‘대학, 이렇게 바꾸자’를 다녀왔다.





 대학 관련 강좌라 대학을 직접 경험하고 있는 대학생들만 자리를 채우고 있으리라 예상했던 것도 잠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강연 시작 전부터 사뭇 진지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는 그들을 보니 강연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더 커졌다. 강연은 원래 예정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시작되었다. 

 오늘 강연자로 나선 김동애 씨는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 본부장을 맡고 있었다. 눈을 반짝이며 앉아 있는 시민들에게 그녀가 가장 먼저 보여준 것은 바로 지식채널-e 영상이었다. 기존에 일어났던 투쟁의 틀을 깨고 ‘물질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우리를 억압하는 어떤 것도 참을 수가 없다!’ 며 거리로 나온 그 시절의 모습을 보며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지 고민했다. 짧은 시간 강렬한 영상과 메시지로 뇌리에 박히는 지식채널-e는 이번 편에서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인상적인 메시지 하나를 던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모든 것은 가능합니다. 다만 당신이 꿈꾸지 않았을 뿐.’ 

 김동애 본부장은 대학 시간강사 문제가 대학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악영향에 대한 너른 이야기를 해 주었다. 두툼한 핸드아웃에서 알 수 있듯 그녀는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왜 교 지위 회복 문제를 제기하는 것인지, 시간강사가 겪고 있는 실태가 어떠한지, 그래서 결국 대학은 어떻게 변혁해야 하는지 등 많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중에서 단연 핵심이 되는 것은 ‘시간강사의 실태’였다. 시간강사가 겪고 있는 열악한 환경과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은 몹쓸 관행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그녀는 목이 메는 듯 이따금 어렵게 이야기를 이었다.





 얼마 전 조선대 강사 서정민 씨의 유서가 발견되면서 시간강사의 처우 문제가 다시 한 번 수면 위로 올랐다. 무려 54편에 달하는 논문을 쓰며 누구보다 연구, 저작 활동에 애썼던 그는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을 견디지 못해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유서에서도 또렷이 적혀 있는 ‘스트레스성 자살’. 교수와 제자는 철저한 종속관계라는 것을 알린 그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있는 로비 부분에 대해서도 밝혀 충격을 주었다. 강의 경력을 온전히 인정받기도 어렵고,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비용을 들여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았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흔히 우리는 언론에서 화제로 다룬 소재는 보도 이후 많은 것들이 저절로 개선되겠거니 하고 기대한다. 김동애 본부장은 바로 이 점을 날카롭게 꼬집었다.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가 나타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고 착각하며, 모든 실타래가 풀리고 나면 그 혜택은 나중에 누려야지- 하고 생각한다는 것. 그녀는 해결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싸움을 멈출 수 있냐며 ‘작전상 후퇴’는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감정적인 반응만 보일 뿐 사안에 직접적으로 접근해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지는 않는 세태를 지적했다. 절반의 공감과 절반의 의문이 남았다. 언론 보도만을 보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믿고 금세 잊고 마는 모습에 대한 비판에는 고개가 끄덕여졌지만, 과연 시민들이 시간강사 처우 개선 문제에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잘 열려 있는지 궁금해졌다.  





 강의 후 마련된 질의응답 시간에는 아쉽게도 질문이 쏟아져 나오진 않았지만, 의미 있는 발언들이 등장했다. 강연을 들은 한 시민은 '10여년 간 강사의 처우 개선과 고질적인 대학교육 문제에 대항하며 싸워오시고 있는데, 정말 해결되리라는 신념이 있나?'는 질문을 던졌다. 이내 장내는 숙연해졌으나 김 본부장은 "해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처음에 한 달만 고생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시작했던 것이 어느덧 10년에 이르게 되었다는 그녀는 대학강사 문제는 최종적으로 학생, 학부모에게 그 피해가 돌아가기 때문에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어떤 시민은 배부받은 핸드아웃에 대한 지적을 했는데, 내용의 설득력을 높이기 위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점을 들었다. 사태의 심각성은 잘 나와있지만 이 문제가 왜 조속히 해결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미흡하다고 했다. 자칫하면 이 문제가 결국은 등록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보다 친절한 설명이 필요하다는 애정 어린 조언을 해 주었다. 

 효율성을 이유로 온전치 못한 대학강사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대학들이 현재의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면, 아마 대학은 '큰 배움'을 실현하는 장소로 기능하기 어려울 것이다. 힘든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내일도 분명 국회 앞 천막으로 가 시위를 계속한 김 본부장과 강사들이 왠지 모르게 처연해 보였다. 6월 5일 저녁 6시에 있을 '서정민 박사 추모를 겸한 농성 1천일 미사'에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한다는 말로 강연은 끝이 났다. 사주가 사립대학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메이저 언론사가 보도하지 않아 그나마도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대학강사 문제. 20대 대표 언론을 지향하는 한 사람의 언론종사자로서 마음이 좋지 않았다. 직접 당사자인 대학생마저 고개를 돌려버린다면 이 문제는 다른 사안들과 같이 '알아서 해결될 것'으로 치부되고 말 것이다. 묵직한 책임감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