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줬다 뺏는 건, 안 주느니만 못하다”는 말이 있다. 뭔가를 줬다가 다시 뺏는 건 정말이지 치사한 짓이다. 사귈 때 줬던 선물을 헤어진 후에 돌려달라고 말하는 전 여친(혹은 남친)을 상상해보라.(놀랍게도 그런 사람이 실제로 존재한다.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다면 괴롭겠지만, 그때를 회상해보라.) 정말로 꼴불견이다.(그런 일을 몸소 경험했다면 ‘꼴불견’이란 단어가 너무 약하게 느껴질 테지만, 심한 비속어는 각자의 몫으로 남기겠다.) 그만큼 '진상'짓의 대표격인 ‘줬다 뺏기’에 수많은 이공계생이 당할 위기에 처했다. 2012년도 입학생부터 이공계 국가장학금을 받은 뒤 이공계 이외의 분야로 진출하면, 장학금을 반납해야 하기 때문이다. 장학금을 도로 뱉어내야 하는 공포의 그 날이 다가옴에 따라 이공계생들의 불안과 혼란은 점차 커지고 있다.


사실 이공계 국가장학금 환수는 오래전부터 예정된 일이었다. ‘국가과학기술 경쟁력강화를 위한 이공계지원특별법’ 개정안이 2011년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며, 이공계 국가장학금 환수는 법제화됐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졸업 후 곧바로 비이공계 분야로 진출할 경우 5~8학기 재학 중에 받은 장학금 전체를 반납해야 한다. 이공계 분야로 진출한다고 해서 장학금 환수의 아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장학금을 받은 기간이 ‘의무종사기간’으로 정해져서, ‘의무종사기간’보다 적게 이공계에 종사할 경우에도 장학금 일부를 반납해야 한다.


국회의원들에게 조모씨는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을 약화하는 원흉이었던 것이다. ⓒSBS


이러한 법이 제정된 배경에는 갈수록 심해지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정치권의 심기를 가장 크게 건드린 건,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한 학생들이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은 카이스트 국정감사 때마다 ‘먹튀’라는 표현을 써가며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진학한 카이스트 학생들을 비난해왔다. 이공계 국가장학금을 받고 비이공계로 진출하는 학생들이 그들에겐 세금을 갉아먹는 악의 무리이자,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을 약화하는 원흉이었던 것이다.


학생들에게 줬던 장학금을 다시 뺏음으로써 이공계 기피현상을 해결하겠다는 발상 자체도 유치하지만, 장학금 환수 자체도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다. 장학금은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학업을 장려하는 ‘당근’인 셈이다. 결코, 해당 학기 동안 이공계에 붙어있는 대가로 받는 ‘계약금’이 아니란 말이다. 물론, 장학금 환수 법안이 만들어진 후에 신청해서 받은 장학금이기에 당연한 수순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요소들을 고려하면, 학생들이 장학금 환수에 동의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학생들 대부분은 장학금 환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모른 채 장학금을 신청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떠한 공론 형성도 없이 정치권에서 일방적으로 법안을 만든 탓이다. 더군다나 국가장학금 신청 시즌만 되면, 학과 사무실에서는 이메일, 문자메시지까지 보내 가며 성적이 안 좋아도 일단 장학금을 신청하라고 학생들을 닦달한다. 그렇기에 이공계 학생들의 장학금 신청을 이공계에 뼈를 묻겠다는 계약 체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전공불일치 비율이 높은 현실도 감안해야 한다. ⓒ연합뉴스


실질적인 법 집행이 가능한지도 의문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헌법에 엄연히 존재함은 둘째 치더라도, 장학금 환수 대상을 도대체 어떻게 정하겠다는 걸까? 이공계 진로와 비이공계 진로라는 것이 무 자르듯이 딱 나뉘는 게 아닌데 말이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이공계 산·학·연에 종사하지 않을 때’라는 규정이 있긴 하다. 하지만 융합이 중요한 시대라고 말하면서 이런 구분을 두는 것도 웃기고, 국가에서 규정한 것 외에는 이공계 진로가 아니라는 말 또한 도무지 납득할 수 없다. 과학 전문 기자, SF 소설 작가는 이공계 진로인가, 비이공계 진로인가? 이처럼 ‘이공계 진로’를 명확히 규정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학원 진로 또한 이공계/비이공계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 이공계 특성화 대학이라고 하는 카이스트의 대학원 중에는 비이공계 쪽에 가까운 문화기술대학원, 경영대학원도 존재한다. 이런 대학원에 진학할 경우엔 ‘이공계 대학원 석사·박사 과정에 입학’에 해당하여 장학금 환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비슷한 성격이지만 다른 대학에 소속된 대학원에 진학한다면, 장학금 환수 대상에 포함된다. 이렇듯 모호한 기준으로 장학금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공계 국가장학금 환수 정책은 지금이라도 폐지돼야 한다. 2012년도 입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정책을 폐지한다면, 없던 일로 바꿀 수도 있다. 현재 한국장학재단은 ‘진로 추적조사시스템’을 구축하고 ‘장학금 환수 관련 세부지침’을 마련하며, 장학금 환수를 위한 만반의 준비 중이라고 한다. 엉뚱한 데 열성을 쏟아 붓는 짓은 그만둬라. 진정으로 ‘국가과학기술 경쟁력 강화’를 이뤄내고 싶다면, 새로운 정책 개발을 시작하는 편이 더 낫다. 이공계 국가장학금 환수로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이 강화될 리는 만무하다. 억지로 이공계 진로에 붙잡힌 학생들이 연구에 매진하여 국가과학기술 경쟁력을 드높이는 광경이라니! 제발 망상에서 벗어나자. 이공계 국가장학금 환수 정책은 줬던 장학금을 도로 뺏는 치졸한 행위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