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6월 처음 개관한 전쟁기념관은 “전쟁을 기억하는 일은 곧 평화를 기약하는 일”이며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지켜내야만 한다”는 가치관을 표방하며 탄생했다. 이와 함께 전쟁기념관은 과거의 전쟁을 기록하고, 그 기록의 보존을 통해 궁극적으로 ‘평화’를 향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24일 용산에 위치한 전쟁기념관을 방문했다. 서울 중심에 위치해 수도권에서 가장 접근하기 쉬운 역사적 장소로 꼽히는 전쟁기념관은 6·25전쟁 64주기를 앞두고 많은 유치원생과 고등학생, 그리고 군인 등으로 붐볐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방문객은 단연 70-80대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저마다의 기록 장치를 꺼내 전쟁기념관이 전시하고 있는 것들을 담기에 바빴다. 또 어떤 이들은 과거를 회상하듯 전쟁의 참혹함을 담은 사진에서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전쟁기념관은 기관의 궁극적인 목표가 ‘평화’에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전쟁기념관이 품고 있는 이념적 전시물들과 ‘자랑하듯’ 내걸려 있는 무기들이 평화가 아닌 ‘승전’을 지향하는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국군발전실에는 F-15K 전투기 3D체험관과 시뮬레이션 사격체험관이 있다. ⓒ고함20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이승만 대통령 의전용 세단’이 전시된 방향을 가리키는 현수막이었다. 현수막에 적힌 화살표를 따라가자 이승만 대통령 자동차와 바로 옆에 김일성 리무진 승용차가 전시되어 있었다. 현수막은 이를 ‘역사를 달린 자동차’로 명명하며 ‘특별한 듯’ 설명했다.


전쟁기념관은 크게 3층으로 나뉘어 있었다. 1층에는 살수대첩과 귀주대첩 등 전쟁 역사실이 있고, 2층에는 6·25전쟁실과 호국추모실, 3층에는 국군발전실과 해외파병실 등이 있다. 국군발전실에는 F-15K 전투기 3D체험관과 시뮬레이션 사격체험이 있는데, 이곳은 특히 ‘신기한’ 체험을 해보려는 이들로 이미 줄이 길게 늘어 있었다. 


해외파병실에서 전시하고 있는 ‘베트남 전쟁 파병’ 또한 또 하나의 이념적 전시물이었다. 베트남 전쟁의 모습을 담고 있는 영상에선 이런 나레이션이 나온다. “전방도 후방도 없었던 전쟁터 월남. 이들에게 자유와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군대를 파견하기 시작했고 우리도 베트남에 군대를 파견했다” ‘자유와 평화’를 심어주기 위해 시작되었다던 베트남 전쟁이 결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는지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도 없었다.


클라이막스는 3층 ‘대형 방산장비실’에서 나타난다. 전쟁을 기록하는 것을 넘어서 그 다음 전쟁을 위한 ‘미래 전투기’와 ‘미래 사병’ 모형이 사람 크기만 하게 10평 남짓한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전쟁기념관이 갖고 있는 가치가 평화가 아닌 ‘승전’임을 나타내는 대목이었다. 기념관은 미래의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방안으로 ‘좋은 기술’과, ‘더 좋은 무기’를 제시하며 미래의 병사는 이 모든 것을 갖추어야 함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전쟁기념관의 기념품을 사는 곳에서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진 6·25전쟁 관련 책자를 들춰봤다. 책은 대표적인 친일 인사인 ‘백선엽’을 ‘장군’으로 칭하며 그가 당시 했던 발언을 영웅화하고 있었다. 더불어 가장 우려스러웠던 풍경은 교사들의 손에 이끌려 이곳을 ‘소풍’의 일환으로 오게 된 유치원생들의 모습이었다. 전쟁기념관이 평화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계속해서 고수하는 상황에서 전쟁기념관 견학이 적절한 교육의 한 형태로 행해지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해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 평화는 없다”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미래병사' ⓒ 고함20

한홍구 교수는 그의 책 <한홍구와 함께 걷다>를 통해 ‘전쟁을 기념하는 곳에 평화는 없다’고 말했다. 전쟁기념관을 둘러보며 느낀 건, 기념관이 지향한다는 ‘평화’가 최첨단 장비와 기술로 무장한 누군가의 또 다른 희생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었다. 결국 그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적어도 전쟁기념관 안에서 말하는 평화가 ‘전쟁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진 않다는 것과 일맥상통 한다.


‘전쟁기념관’을 두고 “전쟁을 기념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말에 대해 기념관 측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명칭에서 ‘전쟁’과 ‘기념’이라는 용어를 썼다고 해서 참혹한 전쟁 그 자체를 미화하거나 지향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중략)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고, 그 교육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킴으로써 다시는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하는데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덧붙여 전쟁기념관 명칭이 건립 전부터 각계 인사를 대상으로 수차례 여론 수렴 과정을 거쳐 결정되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전쟁기념관의 이름에 대한 사람들의 비판을 단순한 ‘꼬투리’로 치부하기엔 전쟁기념관이 전쟁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인지, 혹은 ‘기념’해서 다음번엔 더 ‘이기는’ 전쟁을 치르려는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은 시설과 최첨단 장비들을 포함한 시물레이션으로 ‘무장’한 전쟁기념관을 나서며 전쟁을 ‘기념’하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전쟁기념관은 결코 평화를 꿈꾸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