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2014 더 나은 삶 지수’ 자료에 따르면, 한국은 평균 6.6점에 도달하지 못한 6.0점으로 36개국 가운데 25위를, ‘일과 생활의 균형’ 부문에서는 34위로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이 부문에서 한국보다 낮은 수치의 국가는 멕시코와 터키 두 국가 뿐이다. OECD에서는 이와 같이 한국의 ‘삶의 만족도 지수’가 낮은 이유를 OECD 국가 연평균 근무시간인 1천 765시간보다 훨씬 높은 2천 90시간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2천 90시간의 근무시간은 OECD국가 중 거의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하고 싶지만 정작 하지 못하는 말…“오늘 칼퇴근하겠습니다.”

 

‘나인 투 식스’는 박휘순 외 5명의 연예인들이 실제 대기업에 입사하여 직장 생활을 하는 모습을 담은 예능 프로그램이다. 박휘순은 ‘나인 투 식스’ 기자간담회에서 “직장 생활 중 가장 어려운 일은 칼퇴근이 힘들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프로그램 제목이 ‘나인 투 식스’이지만 오후 6시에 집에 갈 수 없고 ‘세븐 투 일레븐’의 생활을 한다고 했다.  '나인 투 식스'의 출연자 박휘순의 말대로, 직장인들은 '세븐 투 일레븐'의 생활을 하고 있을까? '세븐 투 일레븐'의 생활이라면 직장인들에게 삶의 여유란 과연 있을지  그들에게 '집'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

 

'세븐 투 일레븐'의 생활을 하는 직장인들에게 집이란, home 아닌 house 로써 다가올 것 같다. '회사 출근-집 잠' 의 패턴의 하루가 반복될 것이다. 그들에게 기타를 배우거나 책을 읽을 기회는 없다. 그럴 시간적 여유와 체력이 받쳐주지 않을 것이다.  실제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자료를 더 살펴봐야겠다. 그들의 진짜 생활은 어떨지? 우리의 미래의 삶은 어떤 생활패턴을 갖게 될지? 20대인 우리에게 그리 멀리 떨어져있는 일이 아닌, 곧 나와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이 되니 괜한 걱정이 밀려오기도 했고 흔한 예능프로그램에서의 과장이 아닐까?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초록색 네모박스 인터넷 창을 열어 자판을 치기 시작했다. 내심 예능프로그램의 과장이길 바라고 있었지만 프로그램 부제인 리얼 직장 살이 공감 프로젝트’ 대로 박휘순의 말은 과장아닌 '리얼'이었다. 


 지난 1월 29일 취업포털사이트 잡코리아는 ‘직장 동료, 선후배에게 평소 하지 못한 말’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하고 싶지만 정작 하지 못하는 말’ 1위로 “오늘 칼퇴근하겠습니다.” 가 뽑혔다. 또한 10명 중 7명의 응답자가 주 2회 이상 야근을 한다고 답했고, 퇴근 직전의 업무지시와 야근을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칼퇴근의 걸림돌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결과에서 나왔듯이 직장인들의 가장 큰 요구는 근무환경이나 급여 따위가 아닌 정시퇴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상사의 눈치를 보며 야근을 하게 되고, 직장에서는 그러한 야근 분위기가 당연시 되고 있다. 프로그램 이름처럼 직장인들의 계약 근무시간은 나인 투 식스이지만 현실은 세븐 투 일레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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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퇴근 아닌 퇴근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칼퇴근을 ‘[명사]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조금도 지체 없이 바로 퇴근함.’ 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서 보다시피 칼퇴근이란 말 안에는 정시퇴근에 대한 부정적 시선이 담겨있다. 사실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지체 없이 퇴근 한다는 것은 당연하고 또 당연한 일이다. 퇴근 시간에 어떤 지체가 필요하단 말인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시에 퇴근하는 당연한 행동을 칼퇴근이라는 말로 비꼬기 시작했다. 이제는 한국 직장인들에게 야근이란 선택 아닌 필수적인 요소이며, 6시 정시퇴근은 꿈같은 이야기이다.

 

최근 몇몇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일주일에 한번 또는 한달에 한번 정도씩 ‘가정의 날’, ‘칼퇴근데이’와 같은 정시퇴근 날을 정해서 그 날만큼은 직장인들이 정시에 퇴근하여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여가시간을 보낼 수 있게 장려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시퇴근운동이 몇몇 대기업과 공기업에게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이른바 좋은 직장에서 제공해 주는 직원 복지 차원으로 인지 되어서도 안 된다. 또한, 가장 중요한 점은 정시퇴근 운동이 평소에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야근을 무마하는 수단, 열심히 야근을 행한 후에 받는 보상으로 전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시퇴근 운동이 일시적인 이벤트가 아닌 지속성을 지녀야 할 것이다.


직장에 뿌리 깊게 박힌 야근문화를 없앤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야근문화가 사라지고 정시퇴근 문화가 자리 잡으려면 무엇보다도 인식개선이 필요하다. ‘야근=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정시퇴근=불성실, 무책임, 열심히 일하지 않음’ 과 같은 수식에 대한 인식이 깨져야 할 것이고, 우선적으로 상사보다 먼저 퇴근하는 것이 죄악시되는 분위기와 인식에 대한 전환이 필요하다.


20대의 우리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구했을 때, 그 때쯤에는 칼퇴근이라는 단어도, 야근문화도 없는 ‘나인투식스’의 직장생활이 기다리고 있기를, 칼퇴근 아닌 퇴근을 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