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9일 논란의 중심에 있던 MBC 드라마 <기황후>가 51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드라마 <기황후>는 시작 전부터 문제가 불거졌다. 원나라의 힘을 등에 업고 당시 고려를 쥐락펴락했던 기황후를 고려의 자주독립을 위해 노력한 여인으로 그리는 기획의도가 밝혀지면서 <기황후>는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주인공인 주진모가 맡은 왕유 역할 또한 문제였다. 충혜왕과 기황후 사이의 은밀한 사랑, 그 속에서도 함께 고려의 자주권을 꾸려나간다는 식으로 그린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넷 상의 논란은 뜨거웠다. 어떻게 이런 내용을 공중파에서 방영할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

▲드라마는 역사 왜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기황후>의 역사 왜곡 논란에도 불구하고 배우, 제작진의 당당한 태도 역시 문제를 일으켰다. 주인공을 맡은 하지원은 “비록 역사 왜곡 논란이 있지만,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주셨으면 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매번 새로운 사극이 방영될 때마다 역사 왜곡의 문제는 있었다. 과거 MBC에서 방영되었던, <선덕여왕>이나 <주몽> 역시 역사에 없는 새로운 내용을 만들어냈다고 질책 받았다. 하지만 그 드라마에 있는 ‘픽션’은 일반적 사실과 일치하는 역사관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기황후>의 수준과는 달랐다. <기황후>는 역사적으로 명백히 잘잘못을 가릴 수 있는 인물을 대놓고 미화하고 있었다.

결국, 제작진은 <기황후> 방영 전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루었습니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혀드립니다”는 공지를 내걸고 시작했다. 문제가 된 충혜왕은 이름을 바꾸고 썼다.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며 기황후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으로 이해해 달라는 작가의 인터뷰도 나왔다. ‘미화’에 대한 시각을 우려한 탓인지 고려에서 패악을 저질렀다고 알려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은 등장시키지도 않았다. 

지식인에는 “우리 역사에서도 왕유와 기황후가 사랑하는 사이였나요?”, “기황후의 업적을 알려주세요” 라는 질문이 올라왔다. 실제 역사와 드라마를 혼동하는 사람도 역시 존재하고, 역사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드라마라는 장르를 무기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사까지 흔들었다.

 

 

ⓒMBC

 

▲기황후라는 이름의 판타지 드라마 

<기황후>는 사극이라고 볼 수 없는 다양한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다. 정통사극으로 시작한 드라마는 역사 왜곡 논란과 함께 ‘퓨전 사극’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을 입었다. <기황후>에서는 원나라 사람들이 변발을 하지 않아도, 배우들이 갈색 머리를 해도 허용되었다. ‘이건 사극이라 볼 수 없다’는 논란에도 퓨전 사극으로 덮어버릴 수 있었다. 

시작부터 기황후의 삶을 극적으로 그렸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점점 더 사극이란 이름을 벗어 던진 듯했다. 드라마에서 당시 황후는 후궁이었던 기황후에게 개의 저주를 걸고, “저주를 통해서 그 사람을 죽이지 못하면 저주가 되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판타지물의 한 장면으로 봐도 무리가 없는 대사였다. 

퓨전 사극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예는 많다. <태왕사신기>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일기를 중심으로 철저한 판타지 드라마를 그려냈다. 역사적 사실과 완전히 다른 허구의 내용일 경우 <해를 품을 달>처럼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이야기를 진행하기도 했다. 

<기황후>에는 실존 인물들이 제 입맛에 맞춰 등장했다. 가상의 인물과 다름이 없었다. 기황후와 원나라 황제의 아들인 ‘아유시타라’, 황제의 신하인 ‘백안’ 그리고 백안에게 길러졌지만 백안을 숙청하는 ‘탈탈’ 등 <기황후>는 실존 인물들의 이름을 빌려 멋대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빌리고 전체 얼개를 따온 것을 제외하고는 사실 허구의 이야기로 봐도 무방했다.

▲왜 하필 기황후인가

드라마 <기황후>는 기황후라는 실존 인물의 미화 문제를 빼면, 꽤 승승장구한 드라마였다. 시청률은 20%를 넘어 동시간 대 1위를 달리며 고공행진 했고, MBC 드라마 중 2013년, 2014년을 통틀어 높은 시청률을 보였다. 이 드라마가 사극이고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으면, 선남선녀인 주인공들, 커다란 스케일, 흥미로운 주술과 판타지적 요소들로 가득 찬 드라마다. 

우리는 이미 성공적인 판타지 드라마를 몇 개나 가지고 있다. 굳이 기황후라는 이름을 빌려올 필요가 있었을까? 주인공이 기황후라는 점을 빼면, 흔히 볼 수 있는 맹목적인 사랑을 보이는 남자 주인공, 당찬 여자 주인공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다.

이슈를 위해서 제작진은 기황후라는 이름을 빌려오고 역사 왜곡에 멋지게 가담했다. 어쩌면 드라마라는 재창조의 영역에서 일부의 픽션 가미는 허용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 드라마가 ‘한류’란 이름으로 다른 나라로 수출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드라마의 역사관 또한 하나의 중요 요소로 평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