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라면 누구나 해봤던 고민, ‘알바를 하긴 해야 하는데, 공부도 해야 하고’ 를 위해 한국장학재단에서 제시한 해법은 ‘근로장학생제도’였다. 교내 기관에서 근무 시 시급 8000원, 교외 9500원이라는 비교적 높은 시급에 자신의 적성과 연계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솔깃한 문구, 새학기만 되면 학생들의 신청이 폭주할 정도다. 하지만 과연 문구대로 나의 적성을 살리면서 높은 시급을 받을 수 있기만 할까? 실제로 2학기째 근로장학생 일을 하고 있다는 대학생을 만났다. 장학재단 홈페이지와 학생처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전한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름은 김OO (가명), 나이는 스물 넷. 국가근로는 교내근로와 교외근로로 나뉘는데, 저는 올해 3월부터 교외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서초구에 위치한 사단법인 XXXX입니다. 주로 탈북자 선교 일을 하는 교회인데, ‘국제학교’라고 해서 탈북자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볼 수 있도록 기숙학교를 운영하는 일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이 국제학교를 나와서 탈북자를 위한 대입 전형을 통해 우리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제안으로 ‘국가근로’에 한하여 두 기관 간에 교류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청소, 빨래, 식사 준비 같은 허드렛일이에요. 기숙학교에서는 40명의 아이들이 평일동안 기숙사에서 생활을 하고 10여명의 직원과 교직원들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건물에서 청소하는 분, 밥하는 분이 따로 없고 그 일을 학생과 직원들이 모두 분담해서 해요. 일단 가면 건물을 쓸고 닦고, 점심 때가 되면 밥하고 반찬하고, 설거지하고, 오후에 은행 심부름 좀 다니다가, 세탁기 돌리고. 그러다가 하루가 다 가요.


어떤 계기로 근로장학생을 신청하게 되었나요?

정말로 돈이 없어서요. 지금 집에 대학생 자녀가 두 명이라 용돈을 넉넉하게 받을 수 없어요. 벌써 명절 같은 경우를 제외하고 용돈을 받지 않은 지 3년이에요. 그래도 등록금은 내 주셨는데 올해에는 그것도 안 됐어요. 방값도 제가 내고, 지금은 휴대폰 비를 제외하고는 집으로부터는 경제적으로 자립을 했어요. 면학장학금이나, 복지장학금 같은 것을 매 학기 받아오다가, 올 해는 9학기 이상이라 국가장학금도 못 받게 되었고, 카페 알바 같은 것을 전전하며 자린고비처럼 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친구의 소개로 국가근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목록을 보는데 탈북자 관련된 단체가 있더라고요. 탈북 문제는 사실 저한테 생소했어요. 그런데 ‘교육’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도 해서, 그런데서 일하는건가? 싶어 설레더라고요. 그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요. 거기다 시급도 높고. 신청 후 국가근로가 되었다고 문자가 왔을 때는 진짜 환호성을 질렀어요. 대충 한 달에 얼마 벌겠구나 싶고 실제로 계산해보니 밀린 세금도 꼬박꼬박 갚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정말 좋았어요.


일은 어떤가요? 힘들지 않나요?

청소, 빨래, 밥 같은 걸 한다고 말씀드렸는데, 여기가 일을 정말 쉬지 않고 시키는 편이에요. 다 몸으로 하는 일인데 쉴 틈을 주지 않고 일을 시키니까. 1학기 때는 근로를 하고 온 날은 파김치가 됐어요. 과제해야 되는데 집에 오자마자 잠들기도 하고. 근로 시작하고 두 달 정도는 주말 카페알바도 병행했는데, 그 땐 정말 다른 생활이 불가능했었어요. 수업도 많이 들어서 제 삶은 없고 월급날만 기다려지는 삶. 저는 집에서 자취를 하느라 이런 허드렛일이 익숙하고, 카페알바 같은 걸 많이 해봤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 와서 몸으로 하는 일이 얼마나 사람을 소모시키는지 절감했어요. 시급이 높은 걸로 참긴 하지만 일주일에 세 번 정도 나가는데 그 중 하루는 조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힘들었어요. 네 달 정도 되니까 노하우가 생겼고 방학이 되니까 일에 여유가 생겼어요. 우리 학교 말고 다른 학교에서도 두 명을 더 뽑아서 근로장학생들이 많아지는 바람이 일이 분배가 됐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맡은 일을 하고 난 다음에 쉴 수도 있었어요. 그런데 방학 한 달 지나고 나서 그 학교 장학생들이 다 그만두게 되었어요. 학교가 돈이 없다면서 방학동안 근로하기로 했던 걸 하루아침에 8월부터는 안 된다고 통보가 와서. 속수무책으로 해고당하는 걸 옆에서 지켜본 느낌이랄까. 그리고는 다시 일이 많아졌어요.

 

 

주변에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힘들어하나요?

우리 학교에서 온 학생은  네 명 중 한 명 빼고는 다 힘들어해요. 안 힘들어하는 한 명은 거기서 사는 탈북자 언니인데 그런 일이 익숙하신 거 같아요. 긍정적인 마인드시고 일도 잘 하시고. 일단 저랑 1학기 때 일했던 애는 못 버티고 나갔구요. 거기서 오래 일한 사람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데, 학기 마다 애들이 바뀐다고 하더라고요. 3일 만에 관둔 애도 있다고 하고. 그러면서 거기 직원이었던 언니가 ‘여기 신청하는 애들은 다 어디가 아픈 애들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속으로 좀 웃기더라고요. 일이 힘드니까 애들이 아프다는 핑계대고 많이 안 나왔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단순히 힘든 일 못 버텨서 나간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애초에 그런 일을 하는 곳인걸 알고 들어오거나, 일을 좀 잘 설명하고 시키면 좋겠는데, 그런 게 없잖아요. 높은 시급에도 불구하고 그런 게 힘들어서 나가는 거 같아요.


근로장학생 제도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처음에 신청을 할 때 해당 기관의 주요 근무 내용이 어떤지 제대로 알 수 없어요. 학교 홈페이지에는 ‘사무국 지원 시 : 사무보조, 홍보문서 관리 / 대안학교 지원 시 : 학업 보조 / 탈북자쉼터 지원 시 : 관리 및 정리정돈 업무’라고 나와 있었는데, 여기서 일하는 학생들에게 일이 깔끔하게 분담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날그날 해야 하는 일을 시키는 시스템이에요. 출근 첫날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여기는 어떻게 돌아가는 지 설명도 안해주고 바로 걸레를 쥐어줬어요. ‘여기 책상 좀 닦으세요‘ 하면서. 어떤 날은 갑자기 차를 타고 가서 거의 폐가에 가까운 방치돼있던 기숙사 건물을 치운 적도 있고. 그래서 처음에 갈피를 못 잡았어요. 지금에야 내가 뭘 하면 되는구나 눈치껏 움직이지. 신청할 때 애초에 이런 일을 하는 거라고 나와 있었으면 당혹스럽지는 않았을 텐데. 

저는 ‘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데, 국가 장학 취지 중 ‘자신의 특기를 살리는 일을 하면서 장학금도 받는다’는 문장이 있었어요. 저는 그래서 다른 기관 제치고 ‘탈북’문제를 다루는 기관에 신청한 것도 없잖아 있었는데, (학업 보조 일을 하고싶어서) 특기를 살린다는 문구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느꼈어요.


일의 힘듦을 넘어서 근로장학제도의 한계나 부정적인 점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우선 이름부터가 ‘국가근로장학생’인데, ‘근로장학’이라는 방식이 참 모호해요. 나는 알바생인지, 장학생인지. 거기서 사람들이 저한테 누구냐고 물어보면, 저는 ‘근로장학생이에요’하고 대답하지만, 사실 ‘장학생’이란 단어를 말 할 때는 좀 부끄러워요. 사실 전부 다 저를 허드렛일 하는 알바생으로 보거든요. ‘장학금’을 받는다는 느낌이라기보다, 내가 노동을 하고 그 노동에 대한 시급을 받는다는 느낌이에요. 장학금의 원래 취지는 말 그대로 ‘학업을 장려하는 돈’ 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친구들한테도 ‘나 장학금 받았다’ 안하고 ‘월급 받았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가끔 엄청 힘든 일을 해도 (6시간 동안 5분도 못 앉았던 날도 있어요) 시급 많이 주니까, 장학금이니까 하는 생각에 저도 스스로 이런 걸 문제제기할 생각을 못해요. 이렇게 많이 주는데 감히 불평을 해? 이렇게 반응할 것 같아서요. 

저는 알바를 할 때에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학교에서는 노동3권이나 근로기준법 같은 걸 배우는데 정작 내가 알바 할 때는 ‘근로계약서’ 한 장 못 쓰는구나 하고. 최저임금 못 받고 일한 적도 있어요. 그런 사장님과 저와의 ‘약속’에 어떤 문제를 느껴도 문제제기 못한다는 게, 아 이런 게 ‘갑을’의 관계라는 거구나. 내가 머리로 알아도 어떤 지식이 존재해도, 실상 내가 살아가는 삶에서 적용이 안 되는구나. 자괴감도 들었고 잘릴까봐 무서워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게 바보 같기도 했어요. 특히 근로장학생은 그런 게 더욱 모호해요. 그래서 그걸 문제라고 인식하는 것부터가 힘들기 때문에 해결도 힘든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일단 그 기관은 어떤 일을 하는 지 구체적으로 잘 설명하라고 건의하고 싶어요. 어디 건의하면 되는지, 그 건의가 받아질지는 안 찾아봐서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일하는 기관에 말하면 되는 지, 학교에 말하면 되는 지, 국가장학재단에 말하면 되는지 그것부터가 좀 모호하긴 한데 어떻게든 말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 스스로도 국가근로를 하면서 느낀 게 조금 있었는데 인터뷰를 통해서 좀 정리가 되네요. 일단 저는 다른 알바보다 국가근로를 하는 게 훨씬 좋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아직 의문이 남는 게, 장학생이냐, 노동자냐 하는 이 모호한 지점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진짜 모습은 노동자인데 장학생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서 설명되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히 있어요. 

또 앞서 말했지만, 방학동안 일하기로 된 학생들이 하루아침에 ‘더 이상 국가근로 못하게 되었다’고 문자로 통보받는 걸 봤잖아요. 그 때 그 학생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분명히 불합리한데 누구한테도 말할 수 없었어요. 제가 장학재단에 말해보라고 했는데, 예산 문제니까 어쩔 수 없지, 하고 넘어갔어요. 이건 근로장학생들 개개인이 짊어질 문제가 아니죠. 국가근로의 성격을 확실히 하는 것부터 해결할 일이라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자기 특성을 살리면서 장학금도 받는다’ 이런 홍보문구는 안 썼으면 좋겠어요. 인턴 사업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 같은데, 기관마다 복불복도 크고 무슨 일을 하는 지도 명확하지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