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사찰논란은 이미 ‘장기전’에 접어들었다. 따라서 텔레그램의 급부상은 갑작스러우면서도 당연했다. 일상대화부터 조모임, 각종 친목모임 등 사생활을 엿볼 수 있다는 위험에 사람들은 조용한 메신저 서비스 이동으로 응답했다. 텔레그램이 ‘국민 메신저’를 대체할 가능성에 대한 전망도 나온다. 앱스토어 다운로드 1순위, 최근 몇 주간 폭증한 가입자 수… 2014년 한국에서의 ‘사이버 망명’은 성공할 수 있을까? 텔레그램을 접한 20대 몇 명의 이야기를 모았다.
김모씨(24)는 약 3주 전 인터넷 뉴스로 텔레그램의 존재를 처음 접했다. 사찰 위험으로 텔레그램이 대체품으로 부상한다는 내용이었다. "딱히 '걸릴만한' 대화는 없지만, 열어보려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으니까 기분이 나빴다." 그는 최근 여덟명이 쓰던 단체채팅방(이하 단체방) 하나를 '이주'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기사를 보여주니 자연스럽게 텔레그램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김씨는 친구들의 텔레그램 사용을 손수 도왔다. 직접 휴대전화에 어플을 받아주기도 했다. 귀찮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처음엔 잘 사용하지 않더라. 그래서 카톡에서 묻는 말을 텔레그램에서 대답하는 식으로 유도했다." 그는 파일전송이 느리다는 점을 빼면 텔레그램에 만족하는 편이다.
사찰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김씨는 "페이스북에 말 잘못 올리면 ‘코로 설렁탕 좀 먹겠구나’ 싶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대통령 모독이 도 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검열의 압박을 느꼈다고 답했다.
ⓒ 텔레그램
"대체 무엇이 정부비방인가?"… 이동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유모씨(24)는 사찰 관련 보도가 나왔을 때 처음으로 텔레그램이라는 어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경우다. 그는 9월 26일경 서비스에 가입했다.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마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회를 보던 중이었다. "친구들이 텔레그램을 꽤 다운받은것을 기점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현재 그는 텔레그램을 카카오톡보다 더 많이 열어본다.
그는 텔레그램의 다운로드는 곧 ‘시민의 의사표현’이라고 말했다. '나는 정부의 사찰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 표출의 일부라는 것이다. 유씨는 메신저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갖고 있었고, 현재도 그렇다고 말했다. "어떤 말을 할 때, 정부가 내 표현의 자유를 제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텔레그램으로의 이주가 '떳떳하지 못해서' 그렇다는 의견에 대해서도 유씨는 "일상 대화중에도 얼마든지 정부비판이 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정부비방인가? 정부비판을 국가모독과 동일하게 보는 상황에서는 결국 말을 줄이고 자기검열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의 텔레그램 내 단체방은 현재 두 개다. 이미 몇 명이 '와 있었기' 때문에 나머지 인원이 이동하는 것은 쉬웠다. "직접 설득한 건 아니다. 다른 친구들도 뉴스를 보고 적극 옮기자고 해서 이주하게 되었다." 그의 주변에는 '왜 옮겨야 하느냐'고 귀찮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유모씨는 부모님과 카톡방이 묶여 있어서 카카오톡 탈퇴는 어렵다고 했다. "부모님은 텔레그램의 존재를 아예 모르신다. 정보의 격차를 실감했다."
텔레그램, 카톡보다 낯선
배모씨(27)는 SNS에서 텔레그램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그는 어플을 다운받지 않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주변사람들의 이용률이 매우 적어서다. 배씨는 텔레그램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카카오톡으로 얘기도 못하게 됐다"고 답답해했다. 정부의 의식수준이 사회를 못 따라간다는 생각이 든다고도 덧붙였다.
김지민씨(가명, 29)는 텔레그램의 보안성은 안심이 되지만, 상대적으로 적은 이용률을 문제로 꼽았다. "설치하니 사용자가 영 없더라. 메신저 선택 기준 중 가장 중요한 게 '얼마나 많은 인원이 사용하는가'인데, 한국에서 흥할 것 같지는 않다."
ⓒ 텔레그램 개발자 파벨 두로프
망명은 이제 시작이다
이모씨(22세)씨는 텔레그램을 이용한 지 3주 정도 됐다. "정말 말세다 싶었다. 그러면서도 '설마 정부가 내 카톡도 보겠어?' 하는 마음이 컸지만, ‘검열은 가지에 가지를 뻗는다’고 하지 않나." 그는 일단 학교 친구들에게 메신저를 옮기자고 말했다. '욕 할수 있는데로 가자'는 것이 목적이 됐다.
이씨는 텔레그램에서 먼저 온 '망명민'들을 만났다. 있더라. “반가운 마음이었다. ‘너도? 나도!’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접속중’ 표시보다 '입력중' 표시가 불편하다고 했다. 단체방의 이름 설정이 무조건 통일이라는 점이나, 지우기 혹은 나가기만 선택 가능하다는 점도 꼽았다. 그는 기능이 마음에 안 든다기 보다는 신기하다는 쪽에 가깝다고 말했다.
그의 텔레그램 단체방은 메신저 이동에 자연스럽게 동의한 이들 사이의 한 개가 전부다. 4명에게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들은 이씨에게 '굳이 왜 깔아야 하느냐'고 물었다. "카톡은 압도적으로 사람도 많고, 이모티콘도 다양하다는 점이 마음을 붙잡는 것 같았다. 기사도 줘보고, ‘텔레그램 만든 사람이 잘생겼다’고도 농담도 해봤지만 안 온다. 정말 강경했다."
이씨는 메신저 이동을 권유할 때 들었던 말을 언급했다. '난 노조원 아닌데?, 난 시위 안나가는데?, 난 정부욕 안해, 정부 몰라'등의 말들이 주변에서 메신저를 거부하는 이유였다. "물론 정부가 좀 심하지만 설마 내걸 뒤지겠냐. 난 그럴 '껀덕지'가 없다는 식이었다." 그는 일주일 간 카카오톡과 텔레그램을 병행한 후 모바일 카카오톡을 지웠다. "다음날 PC로 접속했더니 300여개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연락이 왜 안되냐고 걱정하는 내용들이었다."
최인영(25)씨는 텔레그램과 사찰 관련 일간지 기사를 읽고 즉시 서비스에 가입했다. "텔레그램의 사용자 수가 계속 늘어날지는 의문이다. 카카오톡은 여전히 평온하다." 최씨는 그러면서도 텔레그램이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한 이상, 꾸준히 이용하는 사람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텔레그램이 '대체재'가 된 지는 몇 주 됐지만, 지금 가입하는 사람들도 많다. 매일 한두명의 새 가입자 알림이 울린다. 이 흐름이 금방 끝날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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