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에도 힘차게 달려온 프로야구도 어느덧 막을 내리고 있다. 해마다 어느 팀이 우승하고 어느 팀이 꼴찌를 할 것인지도 중요한 관심거리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4위 안에 드는 것이다. 9개 구단 중 4팀만이 가을 야구, 즉 포스트시즌을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시즌에 진출한다는 것은 곧 그만큼의 실력과 운을 갖춘 팀이라는 의미다. 이는 동시에 감독들의 능력이 평가되는 마지노선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올해에는 4위 안에 들지 못한 구단의 감독들이 모두 교체되었다. 5위 SK 와이번스부터 9위 한화 이글스까지 모두 잔여 계약 기간과는 관계없었다.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이유였다. 하지만 이러한 무조건적 감독 교체는 팀의 부진이 과연 감독의 탓이기만 할까라는 의문을 갖게 할 정도로 잔혹해보인다. 이렇게 감독을 바꾸면 성적이 올라갈까? 라는 단순한 질문을 던졌을 때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경우는 분명히 있다.


한화 이글스, 야신 김성근의 강림 

야구를 보지 않는 사람들이더라도 한화와 꼴찌가 연관된 농담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한화는 대표적인 약팀으로 꼽히고 있다. 최근엔 3년 연속으로 꼴찌를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화 팬들의 응원은 열성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야구 관련 커뮤니티들에서 한화 팬들은 보살, 돌부처 등으로 자주 그려진다. 팀의 승패를 떠나 팀이 진정으로 잘 되기를 바라는 순수한 이미지로 비춰지는 것이다.


이렇게 ‘착하지만 야구는 못하는 팀’이던 한화에게 올해 변화가 생겼다. 김성근 감독이 한화에 찾아왔다. 김성근 감독은 전성기 시절 SK를 이끌었던 사람으로, 야신(야구의 신)이라는 별명과 더불어 프로야구 역사상 명감독을 꼽을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올해까지 독립구단인 고양 원더스를 이끌었으나 고양 원더스가 해체되며 다시 한화의 감독이 되어 프로야구의 세계에 돌아오게 되었다. 한화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영입설이 돌자 1인 시위, 아고라 서명 등으로 그를 적극적으로 원한다고 외쳤다. 착한 팬들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라도 하듯, 한화에는 그렇게 야신이 강림했다.


한화에 온 야신의 첫 마디, “꼴찌가 어디서 놀아요”

선수들이 야구를 잘 하도록 만드는 것에 김 감독의 특별한 비결이 있진 않다. 방법이라면 ‘선수들의 노력’과 ‘고된 훈련’ 뿐이다. 그가 지도자로서 많은 선수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따라다니는 꼬리표는 고된 훈련과 선수 혹사 의혹이다. 그만큼 그는 선수들이 야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만드는 훈련 방식을 택한다.


김성근 감독은 한화에 부임하자마자 어느 인터뷰에서 ‘꼴찌가 어디서 놀아요’라는 말을 했다. 그는 그만큼 한화의 현재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휴식이나 상황 봐주기 없이 강하게 훈련을 진행하기로 굳혔다고 알려졌다. 그는 휴일이 없을 것이라고 미리 밝혔다. 이에 따라 선수들의 개인 일정인 가족 여행, 온천 휴식 훈련 등은 모두 취소되었다.


‘꼴어놀’은 단순히 김성근 감독의 의지가 드러난 각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꼴찌에게도 놀 권리는 분명히 있다. 프로야구 선수는 4월부터 10월까지는 경기 일정을 소화하고, 겨울과 봄에는 전지훈련 캠프를 떠나기 때문에 1년 중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달은 한 달 정도다. 그 소중한 시간을 가족과 함께 보내고, 홀로 쉬고 싶다는 그들의 소망이 무시될 수는 없다. 프로야구 선수는 야구라는 스포츠-노동을 통해서 돈을 버는 노동자다. 그들에게도 분명히 권리는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김성근 감독의 그러한 강도 높은 훈련이 꼴찌 한화를 바꿀 유일한 방법이라고 외쳤다. 매우 환영하는 눈치였고, 그러기를 바란 것처럼 보였다. ‘꼴어놀’은 이미 사람들에게 유행어가 되었고, 선수들의 취소된 여행과 휴식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꼭 학교에서나 듣던 ‘공부 못하는 놈들이 놀긴 뭘 놀아’ 랑 닮아 있다. 우리는 그 말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학생이라면 누구나 공부와 관계없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적을 위해서라면 놀지도 말고, 연애하지도 말라는 말을 듣고 불편함을 느끼며 자랐던 사람들은 어느새 그 말을 야구선수들에게 하고 있었다. 누구나 누려야 할 권리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나쁜 목소리를 나도 모르게 내면화하며 야구를 보고 있는 것이다. 야구선수들의 정당한 권리와 비시즌 기간에 누릴 수 있는 휴식까지 포기하게 하면서, 이렇게까지 야구를 해야 할까?

 

고된 훈련을 받고 있는 한화 이글스 선수의 모습 ⓒMK 스포츠

 

‘한밭 예수’가 되기 전 잊지 말아야 할 것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별명은 ‘인천 예수’였다. SK의 연고지인 인천에서 그가 예수처럼 야구에 전지전능하다는 팬들의 찬사가 담긴 별명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한화의 도시 대전에서 다시 한 번 야신으로서의 자신을 세우기 위해 노력중이다. 프로의 세계로 돌아와서 꼴찌 팀에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유능한 지도자, 야구 영화의 줄거리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한화 이글스와 한화의 선수들은 ‘꼴찌’라는 낙인을 더 깊이 아로새기고 있다. 무능하고 게으르기 때문에 ‘계몽’을 통해서 거듭나야 하고, 그 과정에서는 정당한 권리도 포기해야 한다. 야구를 못하니까 혹사당해도 괜찮다. 이는 다 돈을 받고 야구하는 프로 선수이기 때문에, 팬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모든 권리는 조금 부족하고 모자르는 사람들에게 덜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들에게도 똑같은 권리를 주기 위해 싸워온 것이 인간의 역사다. 꼴찌도 쉬어야 할 땐 쉬고 놀아도 될 땐 놀아도 된다. 지금 한화의 권리는 야구에 대한 팬들의 열망과, 김성근의 고된 훈련 속에 가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답답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팀을 끝까지 응원하는 한화 팬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한 명의 야구팬으로서, 야구계의 명장이 팀을 훌륭하게 이끄는 것 역시 보고 싶기도 하다. 분명 프로야구는 경쟁을 통해 이겨야 이득을 볼 수 있는 구조다. 그것이 프로이며 스포츠 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스포츠는 스포츠며 놀이이기도 하다. 선수들이 보람을 느끼고 그것을 보는 팬들이 행복해야 가장 큰 의미를 가질 수 있다. 김성근과 한화, 그리고 팬들이 그 과정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들을 놓친다면, ‘한밭 예수’의 재림이 그렇게 즐겁게만 다가오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