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BS 주말특별기획 드라마 <미녀의 탄생>이 방영을 시작했다. 드라마의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뚱뚱하고 우악스러운 아줌마가 남편에게 배신을 당하고, 성형수술을 통해 미녀로 거듭나 새로운 인생을 찾는다. 조강지처와 내연녀의 이름이 사씨와 교씨라는 설정과 작품의 기본적인 토대가 우리의 고전소설 <사씨남정기>와 유사하여 화제를 모았다.



조선 후기 때 김만중이 지은 <사씨남정기>는 대표적인 가정소설 작품 중 하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조강지처 사씨가 첩의 계략으로 집에서 쫓겨나 떠돌다가 오해를 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는 스토리 전개는 그야말로 조선시대판 막장드라마를 떠올리게 한다. 자극적인 드라마는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를 끄는 듯 하다. <사씨남정기>는 수많은 독자를 울고 웃기며 매료시켰고, 나도 언제 오해가 풀릴지 조마조마하며 작품을 읽었다. 마침내 권선징악으로 끝이 나자 안도했다. 그런데 결말에 통쾌함이 느껴지는 한편, 마음 한구석에 설명할 수 없는 찝찝함이 남았다.


이제는 그 찝찝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안다. 사씨는 집에 돌아가지 말았어야 한다. 자신을 모함한 교씨 뿐 아니라 그동안의 사랑과 신뢰를 저버리고 자신을 버린 남편에게도 죄를 묻고 그를 버렸어야 한다. 조선 후기에 유행한 가정가문소설에는 사씨와 같은 삶을 사는 여성 인물들이 많다. 그녀들은 자신을 버린 남성에게 다시 돌아가 가정을 지키는 것을 행복이라 여겼고, 소설은 그 행복을 실현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해피엔딩’일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 중심적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여성들에게는 ’버림’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사씨와 같은 여성은 전근대적 사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정도와 양상은 달라졌지만,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여성이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다. 지난달 28일 여성가족부에서 발표한 ‘여성긴급전화1366’ 사건접수 현황에 따르면, 3년 동안 가정폭력 상담 건수가 약 6만 건에서 12만 건으로 2배가량 증가했다. 또, 긴급피난처에 입소한 피해여성의 30%가 별다른 조치 없이 가정에 돌아간다. ‘매 맞는 아내’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지 꽤 오래됐는데도 여전히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여자 그남자> 캡쳐화면


그녀들이 폭력을 참고 사는 가장 큰 이유에는 가정을 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자리한다. 내가 이혼녀가 된다는 두려움, 내 아이가 이혼 가정의 자녀가 된다는 두려움, 혼자 힘으로 밥을 벌어먹으며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두려움…. 자녀를 내 삶보다 우선으로 고려하여 엄마의 희생으로 아이의 원만한 가정을 지키려는 생각이나 가장인 남편을 대신하여 경제적 주체로 서는 것을 꺼리는 마음은 모두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이는 결국 “그래, 남편이 잠깐 실수한 거야. 본성은 착해. 사과도 했잖아”라는 합리화로 이어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그 모든 두려움에서 해방되었을지 모르지만 가장 중요한 스스로의 주체성은 잃어버리고 만다.


'나’를 지키며 산다는 것. 그것은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내 행복과 안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삶이다. 이는 두려움에 순응하는 방식으로는 이룰 수 없다. 가정폭력 피해여성들이 제 발로 가정에 돌아가는 순간, 그들은 아프고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내면의 ‘나’를 외면하게 된다. 아프면 더이상 아프지 않게, 힘들면 더이상 힘들지 않게 상황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감당해야 할 몫임을 알아야 한다. 버리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 없다. 여성들을 참고 살게 하는 수많은 이유는 사실 그녀들의 삶의 가치보다 무겁지 않다. 나를 잃어버린 삶을 살지 않기 위해, 내게 상처 주는 이들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