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 밀양은 살아있는 지옥이었다. 십 년 가까이 송전탑 반대 시위를 하던 주민들에게 정부는 ‘행정대집행’을 단행했고, 경찰 2500명과 공무원 250명이 투입되었다. 남아있던 네 개의 농성장을 강제 철거한 한전은 서둘러 철탑 공사를 재개하며, “밀양 투쟁은 종료됐다”는 것을 공식화했다. 싸움은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중 박배일 감독이 독립영화 <밀양아리랑>을 발표했다. <밀양아리랑>은 765kV 송전탑에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의 투쟁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영화 <밀양전(2013)>에 이은 밀양 시리즈 2부작이다. 지난 11월 30일, 서울독립영화제(SIFF)의 장편영화 경쟁부문에 후보로 올라 상영되었으며, GV(관객과의 대화)도 함께 열렸다. GV에는 박배일 감독과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김태철 씨, 밀양 주민 김영순 씨와 김영자 씨가 함께했다.
지옥이 되어버린 그네들의 소중한 삶의 터전
<밀양아리랑>은 765kV 송전탑을 두고 밀양 주민들이 한전과 벌인 투쟁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밀양 주민들을 둘러싼 수많은 폭력과 함께 영화는 그 속에서 존재하는 밀양 어르신들의 삶에 주목한다. 박배일 감독은 “영화를 찍으며 밀양 주민들의 삶 속에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느꼈다. 투쟁보다는 오히려 이런 연대를 통해 더 충만해지는 것 같았다”고 밝혔다.
ⓒ 영화 <밀양아리랑> 장면
영화 속 인터뷰에서 한 할머니는 “우리가 가꾸는 곡식이 너무 소중해서 이곳을 지켜야 돼. 이 땅은 내 삶의 전부야”라고 말한다. 이는 왜 농사짓던 밀양의 어르신들이 생업을 포기하면서까지 농성장에 나왔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는 주민들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농사를 짓는 자부심을 잔잔히 담아내며, 이를 짓밟고 밀양을 ‘살아있는 지옥’으로 만든 현실의 비극을 더욱 심화한다. 밀양 주민 김영자 씨는 “경찰은 힘없는 주민이 아니라 정부와 자본가들의 편이었다. 국가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며 수많은 경찰이 동원되어 농성장을 철거하던 당시를 떠올렸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영화는 “밀양주민들은 765kV 송전탑 싸움 시즌2를 준비하며 다시 농성장을 꾸렸다”는 자막으로 끝이 난다. 정부의 행정대집행 이후, 사람들에게 밀양은 점점 잊혀갔지만 여전히 그들은 싸움을 계속하고 있었다. 움막 농성장이 철거되고 대다수의 주민이 정부와 합의했지만, 260세대는 다시 농성장을 만들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 따르면 송전탑을 막는 것은 탈핵운동의 일환이며, 우리나라의 에너지 악법을 바꾸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다. GV에 참석한 김태철 씨는 “현재 송전탑을 막기 위해 대책위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느냐”는 한 관객의 질문에 구체적으로 답했다. 대책위는 ‘765kV OUT’이라는 이름으로 블로그와 페이스북을 운영하며 지속적으로 밀양의 상황을 알리며 일반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대책위원회 공식 블로그
또한, 밀양주민들이 조합원으로 도시의 연대자들이 후원조합원으로 참여하는 ‘미니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김태철 씨는 “지속적인 투쟁을 위해서는 경제적인 부분에서도 삶의 연대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협동조합은 전국에 있는 연대자들과 밀양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끈”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밀양 주민들이 직접 생산한 농산품을 거래할 수 있고, ‘밀양장터’와 같은 직거래 행사가 진행되기도 한다.
투쟁을 계속하고 있는 밀양 주민들은 지금까지 싸워왔고 앞으로도 싸워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음을 지적한다. 김영자 씨는 “첫째, 내 권리를 위해. 둘째,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 셋째, 우리와 연대해주는 분들을 외면하지 않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의 말처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765kV를 OUT하기 위한 싸움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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