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월 소득 부모님 합쳐 300만원. 대학 입학 이후 장학금을 꼬박 꼬박 받아왔지만, 지방에서 올라와 자취를 하는 나에게는 매일이 가난이다. 생활비를 메우기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를 밤마다 하고 있다. 하지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 이마저도 부족해지기 시작했다. 아직 우리집 사정을 몰랐던 백일까지 데이트를 하자고 조르는 남자친구에게 ‘미안해. 과제가 밀려있어. 미안해, 집에 잠깐 내려갔다 와야 돼’ 라고 거짓말을 했던 것도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백일 기념일을 챙기는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유명 브랜드의 커플 옷을 내미는 남자친구에게 그 달 식비도 모자라 삼각김밥으로 때우던 나는 빈 손이었던 것이다. 헤어지자고 우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이유를 물었고, 나는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은 나에게 더 많은 돈을 요구했고, 그 돈은 나에게 더 많은 노동의 시간을 요구했지만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고. 그 이후 사정을 이해한 남자친구와 식사는 학식, 데이트는 공원, 한강 등으로 가기 시작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연애도 사치다.  

 

ⓒKBS '연애의 발견'

 


기회비용이 되어버린 연애 

이번 청년연구소가 살펴볼 논문은 한겨레신문 김효진 기자의 <서울 대학가 저소득층 대학생의 연애>이다. 요즘의 대학생은 대략 4년의 시간 동안 9종 세트(학벌, 학점, 토익, 어학연수, 자격증, 공모전입상, 인턴 경력, 사회봉사, 성형수술)의 스펙을 보유해야 하는, 완전체로 거듭나야하는 미생들이다. 이 때문에 이들에게 연애는 시간적인 측면에서도 사치라고 말할 수 있다. 돈이 없는 가난한 저소득층의 대학생들에게는 여기에 비용문제도 걸려있다. 

숨 쉬는 것 빼고는 모두 돈인 서울이라는 소비의 도시에서 대학생들은 어떤 형태의 연애를 하고 있을까? 실제로 최근 아르바이트 전문포탈 알바천국에서 진행된 청춘남녀 123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대학생들의 1회 데이트 비용으로 ‘남자’ 5만3800원, ‘여자’ 4만4200원, 총 합 9만 8000원의 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에서 대학생의 연애에 대한 분석한 최근의 논의들은 연애가 커플 소비문화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학생 연애의 정체성 자체에 소비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 때문에 이것을 의식적으로 피하지 않는 한 첫 연애나, 연애 초반에 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시기에는 소비를 통한 '로맨스 각본'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들이 다 가본 데이트 코스, 모두가 챙기는 각종 기념일들. 이런 소비문화의 연애 형태는 ‘추가적인 비용’을 만들고 저소득층의 대학생들은 아르바이트라는 노동으로 이를 해결한다. 별도의 '추가적인 노동'은 시간 부족이라는 또 다른 문제를 발생시킨다. 결국 이들은 연애를 포기하게 되며, 연애는 낭만이 아닌 기회비용으로 전락해버린다.
 



우아하게 사랑을 하며 가난해지는 법은 없나요? ⓒ필로소픽

 

저소득층의 대안적인 연애 방법

서울 대학생들의 연애는 기본적으로 소비문화의 각본을 따르고 있다. 소비문화의 각본이란 ‘데이트’와 ‘기념일’이라는 두 가지 방식에 의해 작동되는, 앞서말한 로맨스 각본을 말한다. 저소득층의 대학생들은 이를 따라가기 어렵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형태로 연애를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논문에서는 이를 소비 각본의 조정이 일어난 경우와 소비 각본의 조정이 아예 없는 경우, 둘로 나뉘어 살펴보고 있다. 소비 각본의 조정이 일어난 경우 상대 이성에게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학생이잖아…’라는 말로 소비 문화의 데이트 방식을 지양한다. 지출의 상한선을 조정하거나, 공동의 통장, 즉 커플통장을 써서 일정 금액 이상의 지출이 발생하는 것을 막는다. 후자의 사례는 보통 두 사람 다 자취를 하는 경우에서 나타나는 사례인데, 이들은 공동의 통장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서 함께 주거하는 형태를 취해 데이트와 일상의 경계를 허문다. 이들에게는 데이트나 기념일의 경계도 희미하다는 것이 이 논문의 설명이다. 

1988년, 신경림 시인은 이웃집 가난한 청년이 돈이 없어 마음껏 사랑도 못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결혼을 하게 되면 시를 지어주겠다 했다. 청년들은 몇 번의 헤어짐과 만남을 통해 결국 결혼에 성공했고, 그 시가 바로 ‘이웃의 한 젊은이를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가난한 사랑 노래'이다. 이 시의 완성은 곧 청년의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는 증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 20세기의 낭만은 더 이상 불러질 수 없게 되었다. 어떤 슬픈 기사의 제목처럼, 사랑은 88만원보다 비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