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울시내 지하철에서는 맞은편에 걸어오는 사람을 피해 종종걸음 치는 이용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서울시가 2009년 10월 1일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한 ‘보행자 우측 통행’ 이후에 자주 보게 된 풍경이다. 시범 실시 9개월째이지만 아직도 국민들은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도가 낮기 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다.

보행자 우측통행 제도를 처음 제안한 국토해양부는 "우측보행 원칙이 정착되면 보행속도 증가(1.2~1.7배), 심리적 부담 감소(13~18%), 충돌 횟수 감소(7~24%), 보행밀도 감소(19~58%) 등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토해양부가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이 제도에 왜 국민들은 쉽사리 공감하지 못하는 것일까.

첫째, 홍보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공식 사이트 개설과, 보도자료 작성을 통해 나름대로 홍보 의지를 보였지만 실제로 국민들이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출근길에 보는 포스터 한 장이 전부였다. 그 홍보 포스터마저도 우측통행의 당위성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고 그저 ‘선진국의 보행 방법이기 때문에 우리도 따라야 한다’ 는 투였다. 포스터 한 장에 많은 내용을 담기보다 간결한 메시지로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국민 행동 변화를 유도해야 하는 포스터 치고는 지나치게 조악한 메시지를 담고 있음도 부정할 수 없다. ‘선진국이 하니까 우리도 하자’는 논리는 이제 너무 똑똑해져버린 우리 국민에게는 통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국토해양부는 2009년 4월 29일 국가 경쟁력 강화 위원회 회의에서 이 안을 처음 발의한 이후 2009년 10월 1일 시범 실시를 시작함과 동시에 지하철 내의 이정표에서부터 에스컬레이터에 이르기까지 우측통행에 적합한 시스템화 작업을 강행했다. 이 성급한 과정은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여러 가지 국책 사업이나 국가적 이슈를 대처함에 있어서 보여 왔던 진행 과정과 많이 닮아 있다. 4대강 사업, 의료보험 민영화, 천안함 사건, 광우병 파동, 촛불 집회 등. 똑똑해진 국민들의 알고자 하는 욕구와 국가 의사 결정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를 무시했기 때문에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어려움과 잡음이 생기게 된 경우였다.

<우측 통행 홍보 포스터, 출처 : 국토해양부 홈페이지>

 

둘째, 규범과 예의의 영역이 국가적 강요의 영역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가정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예의와 규범을 배운다. 그것은 법적으로 규제를 받지는 않지만 내 안의 양심과,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좁은 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과 원활히 오고 가기 위해 최소한으로 필요한 예의과 규범으로 좌측 통행을 배웠다. 한 번 배운 예의와 규범은 더 이상 누가 그렇게 시키거나 법적으로 강요하지 않아도 기꺼이 따르고 참여한다는 의식이 형성된다. 그러나 자유 의사에 의한 약속으로 지켜지고 있던 좌측 통행을 국가가 단 한 마디 상의도 없이 무턱대고 바꿔버린 것이다. 그 순간 국민 스스로 기꺼이 지키던 규범과 예의가 국가의 강요를 받는 조금은 불편한 영역이 되어버렸다. 열심히 수학 공부 하고 있는 학생에게 영어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해댄 꼴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우측통행이 효율적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측통행의 효율성을 국민들이 확실히 인지했을 때의 일이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개인의 생활과 자유의 영역을 침범 당했을 때 불쾌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통행 질서처럼 사소한 문제일지라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사소한 문제일수록 더욱 그렇다.군대에는 “줄줄이 우로 가” 라는 제식 용어가 있다. 행군하는 하급자에게 줄을 맞춰 오른쪽으로 접어들 것을 명령하는 용어이다. 국가는 군인이 아니고 국민은 하급자가 아니다. 국가가 그것을 모르고 계속 “줄줄이 우로 가”를 외친다면 앞으로도 계속 외면 받고 그 순수성에 의심을 사게 될 것이다.

보행자 우측통행은 2010년 7월 전면시행이 앞두고 있다. 밀어붙이기식 행정과 일방적인 의사 결정에서 비롯된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국민들에게 말뿐이 아닌 진정 공감을 얻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