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주요 언론은 국방부가 ‘병사 성과평가’라는 제도를 도입한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알렸다. 이에 따르면, 내년 1월부터 입대하는 모든 병사의 군 생활에 대한 성과평가가 이루어지게 되며, 병사들은 ‘탁월’, ‘우수’, ‘보통’의 세 등급으로 ‘직속상관’에 의해 평가받게 된다. 정부는 이 제도의 도입과 함께, 병사 평가 자료를 전역군인의 취업 시 해당 기업에 본인 동의를 얻어 제공할 방침이다.

당연하게도 여론은 매우 냉담하다. 반대 근거도 매우 다양하다. 기본적으로 군대마저도 스펙 쌓기의 현장, 경쟁의 정글로 변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높다. 직속상관이 주체가 되는 평가 방식이 과연 공정성을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일부 여성들은 이 제도가 취업 시에 남성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보고 있기도 하다. 반면, 모 설문 조사 결과 기업의 60%는 군의 성과 평가를 찬성하며 이를 채용시에 사용할 의사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지 출처 : http://blog.naver.com/yesgame/109542469)



인간이 인간을 줄 세울 수 있는가

병사들의 자기 계발을 돕고 군 경쟁력을 높인다는 ‘도입취지’는 허울 좋은 말일 뿐이다. 이제 군대 안에서도 병사 간의 ‘탁월’을 향한 경쟁이 시작된다. 상대평가 규정에 의해 전체 장병의 40% 만이 ‘탁월’ 등급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탁월’이라는 등급을 받을 수 있는 병사의 비율이 높기는 하지만, 만약 4번의 평가를 받는다고 가정할 경우 4번 모두 ‘탁월’을 받을 수 있는 병사는 전체 병사의 2.56%에 불과하다. 더욱 더 세분화해서 ‘병 기본훈련’, ‘체력단련’, ‘자기계발·사회봉사’로 나누어진 평가 요소에서 모두 ‘탁월’을 받는 병사의 비율은 확률적으로 0.0017%에 불과하다.

병사 개개인 모두가 아무리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도, 결국 누군가는 최상위의 성과평가 성적을 받고 누군가는 최하위의 성과평가를 받게 된다. 그들은 객관적이지도 않은 직속상관의 주관적 기준에 따라 한 줄로 나열되게 된다. 이 경쟁의 목적이 ‘좀 더 나은 나의 생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앞서기’라는 불편한 진실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이제 군대마저도 정체 없는 성공을 향해 끝없는 경쟁의 공간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의 시험, 기업에서의 승진 등 ‘그럴 듯한’ 영역에서만 통용되던 경쟁의 논리가 점점 일상의 영역을 지배해 가고 있는 것이다. 단순한 시험 성적을 가지고 능력을 판단하던 시대가 가고, 전인적인 다양한 기준으로 능력을 판단하는 시대가 왔다. 이러한 미명 하에서, 개인들이 일상 속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은 평가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있다.

입학사정관제의 성찰 없는 도입으로 인해 지금 이 시간에도 많은 초등학생들이 입학사정관제를 대비한 스펙 쌓기로 고통 받고 있다. 다양한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기업들 앞에서 뭐라도 더해보려는 구직자들은 일상을 취업을 위해 반납했다.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능력을 평가하겠다는 자기소개서 앞에서 우리는 경험 하나하나를 쥐어짜내야만 한다. 행동 하나하나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것이다. 기업 중심 자본주의의 범람과 조직행동론 류의 인간 연구의 발전으로 인해 이제 사람들은 존엄한 개인에서 평생 평가받는 개체로 전락해 버렸다.



이제 어렸을 때부터 모든 행동을 성공을 위해 조직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단 말인가? (이미지 출처 : 한국경제)




군대적 가치의 무의식적인 확산 우려

우리나라는 87년 이후 공식적으로 ‘정치적 민주화’를 달성한 국가이다. 하지만 일상 속에서는 아직도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매우 강력하게 작용되고 있다. 가부장제적인 가정 내의 문화는 여전히 압도적이다.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간은 여전히 불평등한 관계이다. 회사나 학교 등 대부분의 조직에서도 상사, 선배의 말 자체가 ‘권위’가 되는 경우가 많고, 이는 민주적인 토론 문화를 방해하고 조직의 효율성을 해치기도 한다.

이렇게 권위주의적인 문화가 일상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2년간의 군대 생활을 통해 남성들이 권위주의를 체화하기 때문이다. ‘신의 아들’이 아닌 이상 의무적으로 복역해야 하는 현실은 비정상적 권위주의를 마치 ‘정상적’인 것으로 둔갑시키기에 충분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병사 성과 평가의 도입으로 인해 권위주의적인 군대적 가치가 확산되는 것은 아닌지 매우 우려가 크다.

권위주의나 권위, 계급에 따른 권력은 군대라는 조직 내에서는 필수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렇게 추구해야 할 가치가 다른 군대와 사회를 제도적으로 연결 지으려는 시도는 분명 옳지 못하다. 권위주의적인 군대 제도에 좀 더 잘 적응한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도 이득을 볼 경우 사회의 민주성도 조금씩, 조금씩 감퇴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