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잠잠했던 사이버 공간에서 새로운 이슈가 터졌다. EBS 장희민 강사의 ‘군대 비하’발언이 바로 그것. 장희민 강사는 3월 자 강의에서 ‘군대에서 배우는 건 살인’, ‘살인을 배우지 않았다면 대한민국은 평화로워졌을 것’ 이라는 내용을 말했다. 그러자 강의 내용이 알려진 최근에 와서 각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장희민 강사를 비난하는 경향이 강하게 일고 있다. 비난의 주체는 대체로 군대를 마친 복학생들이 맡는 모양새다. ‘안녕하세요, 살인기계입니다.’라는 자조 섞인 비난부터 ‘꼴패미가 현역병들을 살인자로 만들고 있다.’는 원색적 비난까지 비난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지만 그녀가 했던 발언이 이렇게 까지 사회적 비난을 받을 만큼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을까? 논란이 되었던 그녀의 발언들을 정확히 살펴보자. 문제의 발언은 언어사용에 대한 남녀의 차이에 관해 설명하면서 시작된다. 그녀는 군대에서 살인을 가르치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평화가 저해된다는 식으로 말했다. 페미니스트였던 그녀는 아마 페미니즘이 말하듯이 의무징병제가 야기하는 사회의 지나친 우경화나 권위주의의 체화를 비판하려 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비판은 그동안 책으로든 칼럼이든 여러 형식으로 우리에게 알려진 것들이라 그리 새롭지도 않다(특정 매체만 편중되게 읽거나 사회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에겐 새롭게 느껴지겠지만). 하지만 문제는 그녀의 비판이 지나치게 과정을 생략한 나머지 비판이 아니라 선언적 문구로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군대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지 설명한 것이 아니라 다짜고짜 군대가 평화를 위협한다는 뉘앙스로 말했으니 충분히 오해를 살법한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그녀의 발언은 분명 잘못인 게 맞다.


 그러나 말을 잘 못한 것과 비난받을 만한 말을 한다는 건 분명 다른 법. 그녀의 발언에 논리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지라도 이 정도까지 비난의 수위가 높다는 건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그녀의 발언은 회사로 따지면 직원이 일을 잘못 처리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회사 내부에서야 그 직원의 잘잘못을 따져 적절한 징계를 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직원의 잘못을 사회가 평가하고 비난하진 않는다. 장희민 강사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당연한 실수를 마찬가지로 저질렀을 뿐이다. 혹자는 교육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회사 내 직원과 달리 공인의 위치에 있는 장희민 강사는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물론 이 또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 식이라면 왜 장희민 강사만 비난하는가? ebs의 다른 강사들은 그 흔한 농담도 안하거나, 어떤 논리적 결함도 없는 농담만 하나? 뭐? 군대를 소재로 삼은 게 잘못이라고? 그래, 바로 이거다. 여기서 각종 언론매체와 온갖 커뮤니티 사이트들이 장희민을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 이유가 분명히 밝혀진다. 그들이 장희민을 비난하는 이유는 장희민 강사가 학생들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관념을 주입시켰기 때문도 아니고, 공인이라는 위치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기 때문도 아니다. 장희민 강사가 비난받는 이유는 바로 군대라는 사회적 금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군대는 알게 모르게 터부시된다. 2년이라는 한정된 기간 동안 남성들만이(그것도 일정한 신체조건을 만족한 남성들만이) 존재하는 시설이 있다는 건, 그 존재 자체로 여성을 남성의 타자로 밀어내버린다. 이 때, 군대라는 건 남성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추억으로 자리매김한다. 설사, 여성들과 군대라는 경험을 공유한다고 하더라도 그건 결국 타자라는 입장을 전제한 경험이다. 여성의 입장에서 직접 경험할 수 없도록 제도화된 군대란 건, 결국 남성들만의 성역일 수밖에 없다. 특히 그 성역이 즐겁고 유쾌한 것이 아니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면, 남성들은 그러한 고난을 거치지 않은 여성이 성역을 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페미니스트로 알려진 여자 한 명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된 수업도중에, 농담 식으로 군대얘기를 했다면? 그것도 은근슬쩍 비판적인 어조로? 결국 그 결과물이 바로 이번 장희민 사태다. 장희민을 비난하는 문구들도 하나같이 페미니즘에 대한 비난을 포함하고 있다는 건 장희민을 건방지게 성역을 침범한 여성으로 보고 있음을 역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여기에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의 피해심리와 보상심리도 한몫했다. 대한민국에서 군대라는 건 그만큼 민감한 소재였던 것이다.


장희민 강사가 올린 사과글



 이번 장희민 사태는 장희민 자체보다는 장희민을 향한 사회의 시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군대라는 건 힘들고 어려운 것이기 때문에 그걸 체험하지 않은 너희 여자들은 이러쿵 저러쿵 말하면 안돼!’라고 윽박지르는 모양새랄까? 표현에 약간의 무리가 있었을지 모르지만 군대라는 사회적 금기가 ‘단순히 지나가는 소리’를 ‘꼴페미의 군대에 대한 반란’으로 둔갑시킨 건 분명해 보인다. 장희민은 끝내 대한민국 내에 벌어진 잔혹한 인민재판의 희생양이 됐다. 아마도 그녀의 죄목은 성역(군대)침범죄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