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흡연자인 여자 친구들이 여럿 있다. 아니, 꽤 많다고 할 수 있다. 친구들 일곱, 여덟 정도가 모인 자리에서는 나 혼자만 비흡연자이다 보니 음식점에서도 흡연석, 카페에서도 흡연실에 앉아야 한다. 화장실도 손 꼭 잡고 가는 여자들이 담배만은 혼자 필 리가 없다. 금연인 건물들이 늘면서 밖에 나가서 담배를 피워야 하는 번거로움이 닥치자 그들은 내 손을 잡고 건물 밖으로, 옥상으로 나갔고 나는 화장실을 가고 싶지 않아도 ‘의리’상 꼭 같이 가야만 하는 중학교 여자애마냥 담배 피는 친구들과 함께 했다. 

 


이렇듯 흡연자의 일상과 다를 게 없는 나지만 여성흡연자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친구들 앞에서는 흡연자요, 남자친구 앞에서는 비흡연자인 여우같은 모양새이다. 

필자의 대학교가 여대이다 보니 공학보다는 학교 내에서 흡연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고 흡연하는 학생에 대한 시선도 사회의 그것보다는 자연스럽다. 이제는 나이도 먹은 터라 청소년기의 학생들처럼 담배를 ‘간지’로 피우는 사람들도 별로 없고, 흡연자들의 논리대로 몸에 매우 좋지 않은 껌이나 과자라고 생각하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담배는 정말 그저 담배일 뿐 이다.

하지만 교문을 나서는 순간 상황은 달라진다. 교내에서 담배를 태우면 숨기고 피해야 할 사람은 어른이신 교수님 정도이지만 교문 밖에서는 피해야할 대상이 모든 사람들로 확대된다. 

스스로를 죄인 취급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변(辯)은 이것이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굳이 따가운 시선을 받고 싶지 않다는 것. 자신 스스로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건강에 지극히 해로운 것 빼고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한민국 사회는 담배피우는 여성을 좀 노는 여자, 저속한 여자로부터 시작해서 남자가 많을 것 같다거나 술집 접대부일 것이라는 거침없는 상상력까지 보태어 몰아세운다. 나는 그런 오해를 사고 싶지 않으니 굳이 대놓고 피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실 저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남성 흡연자를 두고 저속해 보인다거나 호스트바의 접대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 여성흡연자들이 말하는 변명이 무리한 논리가 아님은 분명하다.

한 중견 여배우가 방송에 출연하여 흡연자임을 고백(?)하자 이것이 기사화되었고 수많은 리플들은 한 배우의 사적인 습관, 흡연에 대하여 왈가왈부했다. 국민엄마가 어떻게 담배를 피울 수 있냐, 골초가 드라마에서 자애로운 어머니의 역할을 해도 되는 거냐 였다. 이 배우의 고백(?)이 고백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흡연을 개인의 취향 문제로 보지 않고 흡연 사실로 한 사람의 인격을 폄하 해 버리기 때문이다. 간접흡연 등으로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경우가 아닌데도 여성 흡연자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잔뜩 날이 서 있다. 

내 친구의 경우도 이러했다. 데이트 중 남자친구가 “넌 당연히 담배 안 피우지? 하여간 요즘은 창피한 줄도 모르고 길거리에서 담배피우는 여자애들이 저렇게나 많아.”라고 했단다. 친구는 흡연자임을 밝힐 타이밍을 놓쳤고 지금 막 사랑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은 온데 간데 없이 당장 담배 한 개비를 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져 서둘러 헤어졌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흡연자라는 이유로 자신에게 편견을 갖지 않는 친구들 앞에서는 마음 놓고 담배를 피우지만, 이성을 만났을 경우는 담배 연기만 맡아도 콜록거리는 비흡연자 연기를 할 수밖에 없다.






농촌 마을을 가면 담배를 피우는 할머니들을 종종 만날 수 있다. 할머니들에게 담배는 농사일 중에 부리는 잠깐의 여유이기도 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벗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런 할머니들을 보며 우리는 할머니의 인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젊은 여성 흡연자에게는 그리도 가혹하게 대하는 걸까. 혹자는 젊은 여성의 경우 출산을 염두 해 두어야 하기 때문에 태아와 모체에 치명적인 담배는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말 그 이유뿐일까? 같은 나이의 남성 역시 태아의 건강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지만 남성에게는 아버지로서의 건강을 해치는 흡연에 대하여 관대하다. 못 믿겠는가? 흡연 남성의 정자는 비 흡연 남성정자에 비해 기형이 많으며, 출산 시 자녀는 뇌수종, 안면마비 등의 결함 확률이 배로 증가한다. 뇌암, 임파종, 백혈병에 걸릴 확률은 20%나 증가한다고 하니 남성 흡연은 안 좋다더라는 식의 추측이 아닌 근거 있는 사실이다.

젊은 여성 흡연자에게 가혹한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남자만의 전유물을 여성들이 즐기는 것을 참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담배한대쯤 멋있게 피울 줄 알아야 진짜 남자라고 알고 성장기를 보낸 대한민국의 남성들에게 담배는 그들만의 문화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흡연하는 여성들이 늘고 여성흡연자를 겨냥한 담배까지 출시되자 남성들은 자신들만의 문화가, 곧 영역이 침범당한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담배 피우는 여자의 모습은 남성들이 생각하는 청순하고 소극적이며 지고지순한 여성상과 맞지 않다. 자신들의 판타지를 깨는 순종적이지 않은 여성은, 남성에게 있어 비난받고 평가받아야 할 대상일 뿐이다. 남성들의 편견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담배 피운다고 밝히는 여성은 자기주장이 강하고 자의식이 강한, 남성들의 기피대상 1호가 되어버렸다. 남성들은 여성흡연자들을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여자가 어디 감히 남자처럼 담배를 피우냐는 생각은 곧 ‘여성흡연자=싼 여자’ 라는 근거 없는 주장을 들먹이며 여성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웰빙 바람을 타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공공장소에서의 금연이 확대되어가는 지금, 삼가고 단속해야 할 것은 흡연뿐 만이 아니다. ‘모두 다 같이 금연’을 외치기 위해서는 여성이기 때문에 흡연은 안 된다는 고리타분한 논리부터 단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흡연자임을 가장한 숨은 흡연자들을 양산 해 낼 것이 뻔하다.

이제는 여성 흡연에 대한 해묵은 논쟁을 넘어서 자신과 타인의 건강을 위한 금연을 외쳐야 할 때이다. 덧 붙이건데, 친구들아 담배 좀 끊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