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네이트 판’에 올라온 글 하나가 화제가 되었다.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던 도중 아줌마에게 “길에서 화장을 하는 것은 몸 파는 년이나 하는 짓”이라는 소리를 들어 황당했다는 글이었다. 그 글을 본 대다수의 반응은 분명 아줌마가 심한 말을 했지만, 지하철에서 화장한 여자도 잘한 것 없다는 반응이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화장을 하는 행위가 왜 올바르지 않은 행위인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화장이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례로 제시한 것들은 다음과 같다. 좁은 공간에서 화장품의 향은 급속도로 퍼진다는 것, 분가루가 묻을 수 있다는 것, 파우더의 경우 천식환자를 해할 수 있다는 점.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보기에 싫다”는 것이다.

보기에 싫다는 것은 주관적인 개념이라 사람마다 각기 다르다. 심지어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행위”도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옷을 벗는 행위는 도덕뿐 아니라 법에도 저촉되는 행위지만 화장을 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일치의 정도가 상대적으로 훨씬 낮다. 일본이나 프랑스에는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지 말라는 안내문도 붙어있지만 화장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렇게 공통감이 형성되지 않은 행동을 꼭 지켜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게다가 길거리의 화장 문제는 게으름이나 천박함 같은 도덕적 가치판단의 언어가 아니라 사회구조의 문제로 바라보아야 한다.




누가 그들을 길거리에서 화장하게끔 만드는가.

어떤 사람인들 우아하고 싶지 않겠는가. 보는 사람이 불쾌하다면 보여지는 사람은 더할 것이다. 하지만 우아함을 지키기 위해서 선결되어야 할 문제들은 많다. 시간은 돈이다. 아침의 20분은 아침밥을 사먹지 않고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시간이고, 야간 잔업으로 부족한 잠을 메울 수 있는 시간이다. 생활에 치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시간의 압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느낄 일이 없지만 대부분이 여유를 잊고 시간에 쫓겨 사는 우리나라의 풍경 속에서 자유로운 이들은 별로 없다.

특히나 일을 하는 여성의 하루는 빡빡하다. 아침 출근에 우리나라의 근무 환경 상 늦은 퇴근. 장도 봐야 하고 요리도 해야 하고 청소에 아이도 돌보아야 한다. 게다가 여성으로써의 아름다움에 까지 신경 쓰려면 잠이 드는 순간까지도 정신없다.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것이 10분 일찍 일어나지 못한 개인의 게으름이 결과라고 하기엔 직장인 여성들의 삶은 너무나 팍팍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사회는 여성들에게 화장은 예의라며 강요한다. 화장은 우리나라에서 자신의 미를 위해 투자하는 행위가 아니라 필수적인 행위다. 화장을 하지 않으면 자기관리 못하는 여자로 매도당하며 친교담배 속의 안주거리가 된다.

게다가 효율성이 어느 무엇보다 강조되는 시대에서 출근 시간에 화장을 하는 것은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어디서든지 효율성과 실용성을 강조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회분위기가 만연한데, 일상생활은 이에 영향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러한 토대일 지라도 근무환경이 지금보다 더 낫거나, 맞벌이 여성의 부담이 줄어들거나 화장이 공공연한 강제가 아니라면 이 많은 여성들이 지하철에서 화장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그런 날은 멀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공공장소에서 화장을 하지 않는 여성들이 많다는 반박은 마치 가난한 상황에서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말처럼 허망한 말이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물질적으로 부유하고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사람들은 절대 지하철에서 화장할 리가 없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화장대 대신 지하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내몰리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화장하는 여성들을 비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것들

우리는 하루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을 꼴불견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지난 옷을 입은 사람, 길거리에서 먹는 사람 그리고 뚱뚱한 사람들 까지도. 그들을 비난하는 행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쾌감은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고양감이다. 우리는 본질적으로 우리가 비난하는 이들보다 나을 것이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남들을 비난하며 끊임없이 타인과 나를 분리하고 나를 보다 높은 곳에 위치시킨다.

화장만 놓고 봐도 어떤 사람은 화장 자체를 좋지 못한 것으로 여기기도 하고, 극단적으로는 우리 얼굴에 무언가를 바르는 행위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우리는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여성들을 비난함으로써 다를 것 없는 우리를 악과 선으로 구분짓는다. “공공장소 화장녀”라는 가상의 악을 통해 우리는 화장을 하는 행위 자체에 대한 비난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진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가 조금 더 괜찮은 사람, 혹은 우리 세대가 더 나은 세대라는 환상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새로운 나와 다른 ‘집단군’을 의식속에 형성시키고 ‘악’으로 치부한다. 나쁜 것, 그리고 더 나쁜 것을 또 분화시키고 증식시키며 우리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안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실체가 불분명한 ‘부도덕’은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라는 환상을 얻기 위한 행동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