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가까운 것인지 가을에 가까운 것인지 헷갈리는 8월 막바지. 뜨거워서 데일 것만 같은 태양과 심연에 있는 푸르름까지 모두 꺼내 보여주는 여름의 매력에 빠져있는 사람이라면 8월은 당연히 그들의 계절이라고 할 것이다. 반면에 지겹도록 견뎌 온 매미소리와 찜통더위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겠다고 하는 사람들이라면 쇼윈도에 걸린 카키색의 긴 팔 옷들이 반가울 것이다. 
 
 스물다섯도 꼭 그런 나이 아닐까.
 갈팡질팡하면서도 넘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스물에 가까운 스물다섯이라면 몇 달이 지난 후 맞게 될 서른에 가까운 스물여섯이 절대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숫자일지도 모른다. 우연히 시계를 보았을 때의 시각이 헤어진 연인의 생일인 것처럼. 이제는 어떻게든 안정되고 싶다고 갈망하는 스물다섯이라면 나이 드는 것이 꼭 숫자만 하나 느는 것이 아니라 삶에 빠져있는 나사 한 개를 채워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할 것이다. 매일 확연히 느껴질 만큼 선선해지는 여름밤의 가을바람을 맞으며.
 그렇다. 스물다섯. 스물에 가깝지도 않고 서른에 가깝지도 않은 딱 중간에 있는 나이이다. 10대였을 때도 ‘자, 이제 내년만 되면 스물에 더 가까워지는 거야. 이제야 초딩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진짜 어른이 되는 거지.’ 라며 기대감에 넘쳤을까. 꽤나 오래 전 일인 것만 같아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열 네댓 살의 소녀민재가 어떤 생각을 했던 간에 지금의 내게, 아니 대한민국의 스물다섯 살의 여자들에게는 그 보다 더 중요한 고민들이 읽지 않고 쌓아두고 있는 신문의 부수만큼이나 넘쳐난다.

 고민 이만오천구백육십두 가지 중 하나. (편의상 넘쳐나는 신문 부수는 다 세보지 않고 대충 저 정도 쯤으로 해두자. 이제는 신발장 키만큼이나 쌓여있는 종이들을 한 부씩 세면서 잉여 놀이를 하기에는 기사 마감이 더욱 시급하다!)

 연애와 결혼 그 어디쯤.

 스물다섯이 결혼을? 이거 너무 빠른거 아니냐고? 그러면서 왜 스물다섯이 만나는 연인에 대해서 물으며 그의 결혼관에 대하여 궁금해 하는 것이란 말인가! 남자나이는 서른 넘어도 괜찮지만 여자나이는 그래도 스물 대 여섯 정도 까지만 꽃 같은 나이라는 거다. 그나마 후하게 인심 써 ‘나 꽤나 진보적인 사람이야.’의 뉘앙스를 팍팍 풍기며 옛날에는 스물 둘 셋 까지였지만 어디 요즘 그러냐, 이제는 여자나이 스물 대여섯도 괜찮다며 시크한 미소 한방까지. 여자나이를 크리스마스 케익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은 이제 성희롱계의 오랜 클리셰이다.

 따뜻한 봄바람이 머리카락을 마구 간질이고 있던 올 봄, 친구와 이대로라면 죽을 때 까지 남친이 생기지 않을 것만 같다고 한탄하던 중 결혼정보업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는 자기가 주워들은 바에 의하면 우리의 나이가 ‘그쪽 업계’에서 스펙으로 쓰일 수 있는 것도 올해까지라고 했다. “설마, 말도 안돼!!!!!!!” 를 외치며-여자의 어린 나이가 스펙이 된다는 익숙한 소문이 말도 안되를 외칠 만큼 성차별적이며 여성의 상품화를 부추긴다는 이유때문인지, 스물다섯이 지나면 정말 내 나이가 꺾이는 나이라는 그들의 논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아마도 후자 쪽에 좀 더 기울었던 것 같지만.-소문의 진실을 파헤치고 싶어졌다. 





 우선 인터넷으로 그 업체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았더니 친절하게도 안내책자를 이메일로 보내준단다. 몇 시간 후 업체로부터 메일이 도착했고 첨부된 파일에는 미혼남녀, 재혼남녀를 우선 구분하고 성별에 따라서 각기 다른 기준들로 회원들을 분류한 표가 포함되어 있었다. 첨부파일의 내용은 보통 소문으로 들었던 기준들과 다를 바 없었다. 본인의 직업과 재산뿐 만 아니라 부모님의 직업과 재산도 회원 등급에 영향을 미치며 회원 가입비는 꽤나 거액이라는 사실까지.
 그러나 내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그놈의 스물다섯이 정말 당신들이 말하는 꺾이기 전의 마지막 나이인지였다. 표에서 이와 관련된 내용을 찾지 못해 아쉬워하던 중 전화벨이 울렸다. 상대방은 결혼정보업체의 커플매니저. 놀랍도록 체계적이고 신속한 이 업체의 업무처리에 입이 떡 벌어졌다. 통화를 시작하자마자 나이와 출신 학교, 키를 확인한 커플매니저는 지금 이 순간이 본 업체와 상담을 해야만 하는 아주 적절하고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유는 일반회원이 아닌 특별한 등급의 클럽 회원으로 30% 할인 된 금액으로 가입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라고 했다. 더욱이 이 기회는 오직 올해까지라고 했다. 그 기회가 회사의 이벤트성 행사냐고 물었다. 그러자 커플매니저는 한껏 격양된 목소리로

“어머 그럴리가요~. 올해 스물다섯이시잖아요. 그래서 올해까지 할인된 금액이 적용되죠.”

라고 했다. 그러니까 올해 즉, 2010년 12월 31일 까지는 그들의 기준으로 선별하고 더 비싼 가입비를 내야만 가입할 수 있는 클럽에 여자 나이 스물다섯까지만 할인을 해주는 대단한 혜택을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결혼에도 전문가가 있는지 의문스럽지만 전문가를 자처하는 이들의 기준에 의하면 스물다섯이 넘은 여성의 경우 이상적인 미혼 여성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연애와 결혼이 동떨어진 이야기는 아니지만 ‘할인 안 되는 스물여섯’ 이야기는 결혼보다도 오랜 연애를 꿈꾸는 이들이나 연애보다도 하루빨리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 모두에게 괴담으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이만오천구백육십두가지중 둘. 커리어 우먼, 여전히 로망中

 아무리 때늦은 졸업이 유행이라지만 일찍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한 친구들 중에는 벌써 3년차인 친구들도 있다. 입사 6개월도 채 안된 신입사원이든 신입후배를 거느리는 3년차 직장인이든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쉽지 않다. 하고 싶었던 일이 맞는지, 직장을 옮기는 것은 어떠할지 등등의 고민들과 더불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이대로는 안돼!’. 


http://cafe.naver.com/bornnborn.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74594&topReferer=http://cafeblog.search.naver.com%26imgsrc=20100424_231/min830501_1272117373621WveAo_jpg/2010-04-24_22%3B55%3B49_min830501.jpg



 이대로라면 능력 있는 여자는커녕 일에 찌들어 늙어가는 올드미스가 될게 뻔할 것 같다는 두려움이다.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화려한 직장여성의 삶과 현실의 나와의 거리감은 자꾸만 커져가고 언젠가는 될 수 있을 것만 같던 섹스앤더시티의 캐릭터 중 하나가 되기에 내 생활은 너무 궁핍하고 퍽퍽하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드라마 주인공처럼 흰 셔츠에 펜슬스커트, 킬힐을 신고 완벽한 화장을 한 채로 하루를 보내기, 아니 하루를 시작하기에도 아침의 출근준비시간은 턱없이 모자라고 취업준비를 하는 동안 고갈된 체력도 도와주지 않는다.
 야근을 마친 후 출근한 지 약 13시간이 지난 후의 피곤에 지친 얼굴을 화장으로 숨기고 회식에 꼬박꼬박 참여해도 저러다 시집가면 그만이야 라는 부장님의 실언에 맥이 풀린다.
 30년 후에 지금의 부모님 정도의 생활수준을 가지게 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고, 편의점에서 로또를 구입한다면 영락없는 스물다섯 직장여성의 지친 퇴근길 풍경이다.


  후배들에게는 멘토가 되는 20대 후반 같은 멋진 선배이고 싶고, 사랑에 있어서는 사람 좀 제대로 볼 줄 아는 20대 후반의 노련함을 배워서 좋은 사람 만나 찐한 연애도 하고 싶다. 하지만 세상이 씌우는 스물다섯의 굴레에 갇혀 누군가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나이에 전전긍긍하며 서른이 올까봐, 마흔이 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갈팡질팡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버나드쇼의 묘비명)’ 하며 새해를 맞기 보다는 오늘은 여름을 만끽하고 내일은 일찍 도착한 가을 냄새에 취해 대한민국의 스물다섯살 여자가 아닌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임을. 20대 초반의 이편으로 후반의 저편으로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스물다섯 지금을 온전히 즐기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