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학생은‘집=잠자는 곳’이라는 명제를 항등식으로 세운 생활을 한다. 동이 트면 수차례 지하철을 갈아타 학교로 향하고, 정문에 들어서면 강의실을 찾아 캠퍼스를 헤매고, 강의가 끝나면 동아리 활동하랴 알바 뛰랴 이곳저곳 도심을 누빈다. 엉덩이에 의자 자국이 남을 만하면 자리를 옮기는 이들만큼 현대인의 노매드적 특성을 잘 반영하는 집단도 없을 것이다.

이동생활이 집단적 습관이 된 대학생의 운반 수단은 어떨까? 이동 거리가 배가된 만큼 운반수단이 기능적으로 진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수순인 듯 생각된다. 그러나 대학생은 기능이 아닌 패션 트렌드에 맞춰 가방을 선택한다. 중고교 시절부터 학생주임 선생님의 회초리에 억눌려 왔던 패션에의 욕구를 마음껏 분출하는 것이다.

그 결과 백팩은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캠퍼스 내에서 백팩은 패션에 관심이 없는 남학생의 전유물로 여겨졌고, 여학생들 사이에서 백팩을 메는 것은 곧 '나는 외모에 신경 안 써요!' 라고 등짝에 써붙이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한국외대 2학년 최모양은 새내기 때는 말할 것도 없고, 2학년이 되어서도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백팩을 멜 엄두가 안 난다고 고백했다. 또 박모양은 식당에서 백팩을 잃어버린 적이 있는데 이때 식당 아주머니가 ‘남자 가방 두고 간 사람!’하고 소리치셔서 ‘내 것’이라 말하기 민망했었던 경험을 토로했다.




작년 말 <미녀들의 수다>라는 TV 프로그램에서는 '루저발언'등 참 다양한 어록이 쏟아졌다. 그 중 인하공전 1학년 재학생이 한마디 덧붙인것이 있다. “미국대학생들은 백팩을 많이 메던데 왜 핸드백을 안 들고 백팩을 메는지?”라고 물은 것이다. 네티즌은 '학생이니까 그렇지' 하며 고소를 보냈다. 그러나 백팩을 여대생에게 있어'비정상적'인 소품이라 치부한 이 발언은 당시 적잖이 많은 대한민국 여학생들의 생각을 반영하는 것이다. '대학교 가서도 백팩을 메도 될까요?'하고 카페 게시판에 소심히 올라오는 예비 새내기들의 고민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이힐에서 해방되는 시험기간에조차 백팩을 메는 여학생은 전무하다. 패션이 개성이 아닌 개인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집단적 습관을 낳은 것이다.

전공서적 두세 권에 노트북 한 대만 치더라도 일반 대학생의 가방 무게는 무시무시해진다. 가히 살인적인 무게도 감내하면서 여학생들은 숄더백을 고집한다.  한 어깨에 3kg이 훌쩍 넘는 무게를 짊어지고 다니는 셈이 되는 것이다. 의사가 권장하는 가방 내 무게가 2kg 내외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들의 집단적 운반 습관은 그냥 불편한 게 아니라 건강을 해칠 정도로 불편하다. 더군다나 숄더백 때문에 습관적으로 한 어깨만 사용하게 되면 신체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고, 악화될 경우 디스크 등의 심각한 근골격계 질환으로 까지 이어질 수 있다.

편하게 다니고 싶어도, 건강을 챙기고 싶어도 많은 여대생은 집단적 습관을 벗어 났을 때의 눈총을 피하려 숄더백을 메고있다. 여기서 웃긴 것은 백팩도 한 때 패션의 중심이었다는 것이다. 90년대 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백팩열풍이 대학가를 휩쓸었었다. 당시 트렌디하면서 기능적으로 편하기 까지한 백팩은 모든 대학생들의 필수 아이템이었다. 여기서 진정한 웃음 포인트는 백팩이 다시 패션 아이템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2010년 초 한겨울날의 추위를 훈훈히 녹여준 드라마 <파스타>의 붕쉐(붕어+쉐프)커플이 백팩을 메고 다니는 장면이 방송을 타자 옥션의 백팩 매출이 50%나 급증가했다. 이를 기점으로 백팩을 패션으로 인정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고 다른 연예인들도 백팩을 멘 모습을 대중에게 노출했다. <우리결혼했어요>에서 빨간색 백팩으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은 닉쿤뿐 아니라 장동건, 신세경 등 많은 연예인들이 백팩을 메고 있는 사진을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여기에 IT 열풍까지 가세해 백팩을 밀고 있다. 스마트 폰 사용 때문에 두 손이 자유로운 백팩의 기능성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여학생들이 스스럼 없이 백팩을 메고 캠퍼스를 활보하는 모습을 가까운 시일에 볼 수 있을 것이다.  패션 때문에 핍박 받은 백팩이 트렌드에 이끌려 '잇 아이템'으로 부상하는 모습은 가히 극적이기 까지 하다. 예를 들어  이스트백은 작년까지만 해도 단조롭기만 한 '복학생 가방'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 '단조로움'은 '심플한 디자인'이라고 추앙받으며 캐쥬얼 룩에 쉽게 매치할 수 있다고 날게 돋힌 듯 팔리고 있다.  패션 트렌드에 웃고 울며 이리저리 휘둘린 백팩의 수난기는 사실 우리들의 수난기이기에 너무나도 웃기다. 패션은 때로 단순한 유행으로서 소수의 패션리더의 옷장을 바꿨다가 사라진다. 하지만 때로 이는 전체 학생들의 삶에까지 깊이 스며 들어 집단적 습관을 일궈 낸다. 백팩의 경우에서 봤듯이 후자일 때 패션은 집단에 속해 있는 개인들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패션 자체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패션은 바뀐다. 변덕스러운 패션 때문에 지금 또 다른 "백팩의 수난기" 혹은 "백팩을 기피해야 했던 우리들의 수난기"가 쓰이고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