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 5급 사무관 특별공채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딸이 선발된 것과 관련해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유 장관이 자진해서 장관직에서 퇴진하고 관련자는 문책되었다. 행정고시 선발인원 축소 방안이 백지화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민들의 분노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이 결국 ‘위정자들이 사실 국민을 위하는 게 아니라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일하고 있다’라는 반신반의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정확하게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명환 전 외교통상부 장관
(사진출처 : http://cafe.naver.com/beautyaria/9851)


8.15 광복절 연설 이후 국정 하반기의 기치를 ‘공정 사회’로 내걸었던 탓일까. 이명박 대통령이 매우 적극적으로 나섰다. 재빠르게 이 사건에 대해서 유감을 표명하며, 관계자들을 문책할 것을 지시했다. 큰 공을 들여온 G20 회의를 주도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외교통상부 장관의 사임도 받아들였다. 이 대통령을 비롯해 한나라당의 고위 인사들은 이번 일을 ‘공정 사회’에서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영역에서 분리해 사건으로 인해 입게 될 피해와 이미지 추락을 최소화하려는데 급급한 모습이다.

그러나 유 장관에 대한 구분 짓기로 그 사건을 밀어내는 것만으로는 ‘공정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본인들의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MB정부의 기반 자체가 이러한 특채 논란과 별로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의 측근들을 정부 및 주요 공공기관의 장으로 심어 놓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온갖 제도를 재편하는 모습이 유 장관이 딸에게 특혜를 준 것과 대체 뭐가 다른가.

권력을 이용해서 개인적인 이권을 누리는 것, 개인적 측근에게 특혜를 주는 것만이 ‘공정 사회’라는 슬로건에 어긋나는 게 아니다. 기득권에게 유리한 제도를 만들어나가고, 무작정 토목 공사를 진행하고, 용산의 눈물은 외면하고, 조중동을 위한 종편 채널을 신설하는 모든 일이 ‘공정’이라는 말에게 모욕감을 주고 있다. 입으로는 ‘공정’을 말하면서, 뒤에서는 ‘편파’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는 그 모순을 국민들은 더 이상 믿을 수 없다.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사진기자단


MB정부가 말하고 있는 ‘국민통합’은 소통을 강조하고 국민소통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게 아니다. 자신의 것을 내주면서까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하는 모습을 보일 때야만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집권 이래 MB정부의 모습은 한 번도 그렇지 못했다. ‘서민’이라는 말은 언제나 악세사리일 뿐이었다. 자신의 재산을 출원하여 장학재단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진정성을 가진 것인지 분위기 반전을 위한 술수인지는 국민이 더 잘 안다. 따라서 그에 대한 서민들의 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의 안토니오 그람시는 20세기 초에 이러한 상황을 ‘헤게모니’라는 기막힌 말로 해석한 바 있다. 헤게모니라는 개념은 대중의 자발적 동의를 얻은 지배자의 문화적 지도력을 의미한다. 독재자의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한 강제적 동의가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얻는 것은 정치인, 그리고 국가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것이다. 기득권의 이득만을 보호하고 말로만 서민서민거리는 정치인,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이용하는 공직자가 헤게모니를 얻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다. 자신의 잘못된 행동으로 헤게모니를 잃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유명환 장관과 MB정부 그리고 공직자 사회 전체의 안타까운 공통점이다. 


안토니오 그람시 ⓒ 한겨레


국민들은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이 공익을 위해 일해야 하며, 다른 직업에서 요구되는 것 이상의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되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누구인가를 지켜보는 눈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공직자들만 몰라서야 되겠는가.

외교통상부, MB정부, 국회 등 가릴 것 없이 모든 공직자들에게 외친다. 자신이 왜 그 자리에 있는지 모른다면 빨리 내려오시라고. 내려오기 싫으면 적어도 사리사욕 채울 욕심은 버리고, 그냥 지금 받는 월급에나 만족하시라. 국민이 뿔나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