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이슈는 언제나 군대 이야기로 포화상태다. 하지만 대부분의 군관련 논쟁들 예를 들어 군 가산점 문제, 여성 군복무 문제와 정치인, 연예인 병역 문제는 징병제라는 제도 자체의 본질에 대한 생각은 결여되어있다. 군대가 파릇한 20대 남성에게 가하는 사상의 주입. 그리고 그로 인해 사회에 가해지는 폐쇄적 분위기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군대와 정치성향

정치에 대해 별 생각 없는 20대 남성이 군대에서 반공사상과 투철한 안보의식을 주입받게 되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주변을 보면 안보나 우리나라가 휴전상태라는 점을 들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남자가 훨씬 많다. 군대에 2년을 희생하고 나면 이런 분단상황을 만든 북한에 대한 적대감은 더 강해진다. 군대 선임들은 다들 한나라당을 찍는 분위기라 군대의 부재자투표를 더하면 중도나 진보 정당에 불리하다는 통설도 이러한 생각과 무관하지 않다.

군대에서 사회 돌아가는 ‘현실’을 체득한 사람들은 뇌물스캔들이나 도덕성에 대해서도 무뎌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행정병으로 복무했던 이들은 예산 집행 시스템을 알기에, 연말에 예산을 많이 소비해야 내년에도 많은 예산을 할당 받을 수 있다는 시스템을 알아 연말의 세금 낭비 예를 들면 보도블럭 다시 깔기를 기꺼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이해해준다.

전체주의와 친해진 이들은 자유의 증대가 쓸데없이 혼란을 초래한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촛불 시위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논지들도 유사하다. 약간 문제가 있더라도 이러한 대규모의 시위를 하다보면 국가 전체의 경쟁력이나 효율성이 떨어지기에 안 된다는 것이다. 전체를 위해서 자유는 억제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군대에 다녀오기 전에도 유효한 것일까.


군대와 사회 분위기 




가장 큰 문제는 전체적 사회 분위기에 미치는 영향이다. “군대를 다녀오면 철이 든다.”는 말은 우리나라에서 거의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는 문장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 없던 20대 초반의 남성은 대체로 군 제대 후 미래를 위해 학점과 스펙을 관리하는 복학생이 된다. 군생활을 하면서 선임에게 잘 보이는 법과 아부하는 법을 터득한다. 이렇게 터득한 사회생활의 필수소양이라는 아부와 눈치는 사회 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큰 조직이 돌아가는 방식을 깨닫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불합리한 행정 시스템도 이해하고 모르는 사이에 적응하며 긍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방향의 변화가 한 사람과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시스템에 잘 적응하도록 만들어 주기는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시스템에 대한 반항과 도전의 마음은 한껏 누그러진다. 2년 동안 옳고 그름과는 관계 없이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며 2년간 잘 ‘살아남을’ 방법을 궁리하다 보면 아무래도 세상의 정의와 옳은 일에 대해서는 한껏 무뎌지기 마련이다. 이러한 태도는 제대하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회에 나온 전역자들은 군대의 비합리적 사고방식과, 하향식 의사전달에 익숙해진 사고와 몸을 완전히 변하지는 않는다. 전역 직후에 이와 관련 없는 일을 하여도 이런 생각은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입사를 하는 등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게 되면 스멀스멀 기어나온다.


이러한 군대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이 기업들의 조직문화이다. 우리나라는 유난히 보상 없이 야근이 잦고, 일요일에도 일터에 나가는 것을 당연히 여기곤 한다. 부장님이 퇴근하기 전에는 할 일이 없어도 퇴근하지 않는 분위기 등은 군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할 수 없다. 선임에게 이쁨받는 법을 터득했다면 부장님도 퇴근하기 전에 자리를 뜰 리가 없고, 시키면 토 달지 않고 실시하다 보면 사람이 잦은 야근에 반항하기란 쉽지 않다. 군대경험이 없어 눈치 없이 칼퇴근에 회식 불참이 잦은 여성들은 뒤에서 욕먹기 십상이다.


기본적 조직 문화 뿐 아니라, 상부의 기획안에 대해 정당한 비판도 꺼려지는 경직적인 분위기. 내부고발자는 영웅이 아닌 죄인 취급 받는 분위기도 군대의 그것과 쓸데없이 닮았다. 가정 생계를 남자가 주로 책임지는 분위기에서 오는 부담감과 군대에서 늘려놓은 인내의 그릇은 남성들이 부당한 근무환경과 열약한 복지에 침묵하도록 만든다.


이러한 사회적응력은 사회에게도 개인에게도 비극이다. 사회의 발전과 건강한 비판은 사라진다. 기업문화의 경직적 분위기가 스마트폰 ‘옴니아’같은 결과물을 만들고 절대로 ‘아이폰’을 내놓을 수는 없게 만든다. 비효율적이게 근로시간만 많고 스트레스만 주는 근무 환경은 행복지수를 바닥에 밑돌게 만들고 직업 만족도를 떨어트린다. 2년 동안 사고방식을 주입당한 남성이 보는 불이익에는 비할 수 없지만, 부당함에 덜 무뎌진 여성들은 직장에서 혹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여자들은 단체 생활을 모르고 이기적이다.”라는 평가로 내쳐지곤 한다.




군대와 양성평등

소대에 신병이 들어오는 날의 풍경. 신병이 들어온다는 설렘에 가득 찬 선임들은 남의 사생활까지 침해해가며 온갖 성적인 질문공세를 퍼붓는다. 여자친구가 있기라도 하면 진도를 비롯한 상세한 경험을 묻고 “여자는 도장찍어줘야 도망치지 않는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이왕 시작된 음담패설을 이어기는 것은 누가 봐도 허풍이 짙은 경험담의 공유다. 순진한 신병에게는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책이라며 잡지 MAXIM을 안기기도 한다.

여자도 막상 당하면 좋아한다던가 하는 이야기, 자신들이 경험한 나쁜 여성들, 처녀에 대한 환상, 외국물 먹은 여자에 대한 루머, 쉬운 여자 판별하는 법, 쉽게 원나잇 하는 법 등의 이야기가 부대 내에 난무하지만 그중에 맞는 것은 얼마나 되는지 본인들도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군인들은 이러한 주워들은 이야기에 영향을 받게 된다. 여자에 대해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20대 초반의 남성들은 여성을 적으로, 혹은 왜곡된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

성(性)의 영역은 단지 섹스뿐이 아니라, 남자는 어때야 하고, 여자는 어때야 한다는, 똑똑한 여자는 피곤하다, 결혼 하면 가정을 휘어잡아야 한다는 성적역할에 대한 사상의 계승도 함께 이루어 지곤 한다. 2년간 다른 성을 가진 사람들의 의견은 들어볼 기회 없이 남성들끼리만 부대끼다 보면 양성평등에 저해되는 올바르지 않은 사고관을 가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군대와 폭력성



지키기 위한 것이든, 싸우기 위한 것이든 군대는 어떤 ‘사람’을 더 효율적으로 죽이기를 배워야 하는 장소임에 틀림없다. EBS강사였던 장희민씨는 남성들이 강제로 군대에 끌려갔음을 간과하고 그러한 발언을 하여 문제가 되었지만, 나라에서 모든 남성들에게 2년간 폭력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합법적인 폭력을 매일같이 눈앞에서 본 사람들이 모두 합법적인 폭력과 비합법적인 폭력을 구분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살인 방법을 배우는 것은 유쾌하지 않다. 20대 초반의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전쟁에 준비하고 대비하며 2년을 보내는 것이 잠재적 폭력성에 긍정적 역할을 하리라 생각지는 않는다.

군대가 앞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 갈 수 있다고 믿지만, 군대라는 공간 자체의 폭력성, 경직성, 폐쇄성이 온전히 사라질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다른나라와는 다리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이기에 사회의 전체적 경향도 군대적인 면이 눈에 많이 띄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휴전 상태다. 하지만 복무 일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남녀 모두 군복무를 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하고 부족한 인원은 직업군인으로 채운다면 실업자는 줄고 희생되는 청춘도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통일이 된다고 해도 남북한의 정치인들 모두 대중들의 뇌를 세탁하고 쉽게 대중을 조종할 수 있는 군대라는 공간을 없애려 할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