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경인년(庚寅年)의 추석은 그야말로 대박이다. ‘징검다리 명절연휴’라고도 불리는 이번 연휴는 추석이 수요일(22일)에 떡하니 자리 잡으면서 회사인의 경우 월요일(20일)과 금요일(24일)에 연차휴가를 낼 경우 장장 9일을 쉴 수 있게 되었다. 학생들의 경우에도 학교에서 월요일과 금요일을 재량휴업일로 지정하고 놀토(노는토요일)로 이어지면서 역시 9일 간의 황금연휴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연휴를 앞에 두고 들뜬 마음과 동시에 신문에 실린 헤드라인을 보며 가슴 한 쪽이 먹먹했다.

‘연휴기간 총 198편 항공기 증편 운항’
‘중⋅일⋅동남아 패키지 여행상품 품절’
‘즐거운 추석, 성형 병원⋅여행업 수익도 짭짤’
‘추석 연휴 최장 9일, 여행가방 매출 180% 급증’

어느새 추석 연휴의 키워드가 ‘여행’이 된 듯하다. 사실 상 추석 연휴가 시작된 지난 금요일 오후부터 해외로 떠나려는 여행객들로 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뤘다. 인천국제공항공사는 지난 금요일에만 5만여 명이 해외로 나갔다고 전했고 추석 연휴동안 총 89만 명이 공항을 이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징검다리 휴일로 인해 지난 추석 연휴보다(38만 여 명) 두 배 이상 는 셈이다. 사상 최장 추석 연휴인 만큼 해외여행객도 사상 최대이다. 

언제부터인가 명절 즈음이 되면 해외여행에 관한 기사가 따라다녔던 것 같다. 아무생각 없이 받아들였던 정보였는데 고맙게도 ‘사상 최대’라는 거대한 타이틀 때문에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러한 해외여행이 ‘정을 나누는 한가위’라는 말이 무색하게 중산층과 서민들의 격차를 여지없이 드러내는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전통보다 실속을 따지는 이러한 실태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

(http://news.sportsseoul.com/read/ptoday/878519.htm 출처)


놀기 참 좋아하는 필자는 우리나라의 ‘이렇다 할만’ 한 축제가 없는 것이 참 안타깝다. 세계 3대 축제라고 불리는 브라질의 카니발 축제, 에스파냐의 토마토 축제, 미국의 할로윈 축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온 국민이 떠들썩하게 아무 걱정 없이 놀 수 있는 축제가 하나쯤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래도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이 있어서 위로를 삼고 있는 필자에게 명절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가 조금씩 달라지는 실태는 실로 안타깝다. 한국교통연구원에 따르면 168만5000여 대의 이동 차량 중에 70만8000여 대에 달할 것으로 보이는 ‘역귀성’은 이제 낯익은 장면이 됐다.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차려놓고 오순도순 둘러 앉아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는 대신 정답게 잡은 자식들 손에 이끌려 성형외과를 찾는 부모의 모습도 늘고 있다고 한다. 예전의 그 따스함과 온기는 어디로 간 걸까. 필자 역시 추석을 추석답게 보내고 있지 못하는 것 같다. 언제부터인가 추석의 대표 음식은 송편도 도란도란 모여앉아 빚어먹기보다는 사먹고 있고 오랜만에 만난 친척들과 모여앉아 윷놀이를 하기보다는 닌텐도의 작은 화면 속으로 끊임없이 빠져든다.

이번 경인년의 대박추석을 맞이하여 명절 중 사상 최대의 해외여행객이라는 기록을 갈아엎었지만 이러한 세태가 지금은 심각하게 문제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지금 추석명절을 맞아 부모의 손에 이끌려 해외여행을 떠난 아이들. 그 아이들은 나중에 그 후대에게 추석의 의미를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고유한 풍속과 말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명절이 주는 그 따스한 온기를 전해줄 수 있을까? 


추석(秋夕) : 음력 팔월 보름을 일컫는 말.
달이 유난히 밝은 좋은 명절이라는 의미를 지님. 신라 초기에 이미 자리 잡은 신라시대의 대표적인 명절이며 조선시대로까지 이어져 설날, 한식, 단오와 더불어 4대 명절의 하나로 꼽혔다. 이러한 세시명절은 농촌사회가 변화하면서 약해지기 시작하고 전통적인 성격 또한 퇴색하여 차례와 성묘하는 날로 축소되긴 했지만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큰 명절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달의 명절로도 일컬어지는 추석에는 풍요를 기리는 각종 세시풍속이 행해진다. 조상에게 예를 갖추는 차례와 같이 엄숙한 세시풍속이 있는가 하면 한바탕 흐드러지게 노는 세시놀이 역시 풍성하게 행해진다



필자가 제기한 문제가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다. 긴 연휴를 맞이하여 모처럼 여행을 가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극심한 귀성 정체를 뚫고 고향을 찾는 대신 ‘역귀성’이 합리적인 방안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태가 지속되고 한 세대가 바뀌었을 때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버릴 우리의 전통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후손에게 전해 줄 소중한 전통이 우리도 모르게 사라져 버린다면, 그래서 전해 줄 것이 아무것도 없고 심지어 그것에 대해 설명도 하지 못하는 현실이 온다면 지금 이 세태를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까? 그러한 현실이 오기 전에 한바탕 흐드러지게 놀 수 있는 명절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