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ok Song? Hook Sound?

노래는 가사와 곡으로 이루어진다. 헌데 오늘날 우리 가요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경우가 많다. 노래 한 곡을 듣고 나면 가사와 곡을 들은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소음과 춤사위를 듣고 마는 것이다. 노래가 더 이상 의미와 감정을 전달하기 위한 예술이 아니라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데에서만 그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요즘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떠나서 도무지 이해해주기 싫은 의도의 가사들도 청소년들이 즐겨 듣는 노랫말로 쓰인다. 예를 들면 샤이니의 링딩동 같은 경우에는 입에 붙는 운율과 리듬, 실력 있는 아이돌의 퍼포먼스 속에 인기를 얻었으나, 아무 의미 없게까지 보이는 그 가사에 일부 팬덤에게마저 조롱을 받고 있다. 이것은 비단 한 가수나 몇몇 노래만의 문제가 아니다.

특히 지난 해 가요계의 트렌드였던 일명 ‘후크(hook)송’은 태생적으로 그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후크송은 반복 되는 짧은 후렴구에 운율, 리듬 면에서 임팩트를 주는 것이 생명이기 때문에 언뜻 들어서는 큰 의미가 없는 가사들로 이루어진다. dot, gee, oh, tell me, bo peep 등을 수십번씩 반복하는 이 노래들에서 ‘메시지’나 ‘이야기’를 바라기는 애초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요즘처럼 다양한 음악 장르가 있고 그것이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시대에 노랫말에 집착하는 모습이 무식해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위에 말한 가요들이 멜로디나 창조성 면에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Hook song이 사실 Song도 Music도 아닌 Sound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100년 전의 감성을 50년 후로 전할 김소월 프로젝트의 오늘

그런 불가해한 소리들 사이에서 박창학, 박지만씨가 중심이 되어 발매한 김소월 프로젝트의 도전은 의미가 깊다. 김소월 프로젝트는 작곡가 박지만 씨가 곡을 쓰고, 윤상, 정순용(마이앤트메리), 하림, 김정화, 정진하, 김태형, 안신애, 이지영(빅마마), 정재일, 이한철, 융진(캐스커), 조원선(롤러코스터) 등의 뮤지션이 참여한 14편의 노래로 만들어졌다. 물론 수록곡 14편의 노랫말은 전부 김소월 시인에 의해 쓰여졌다.

‘시’로 만들어진 노래는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마야의 ‘진달래꽃’이나, 조성모의 ‘가시나무’ 또한 시가 노랫말로 여진 경우이다. 이렇듯 시가 노래 가사로 흔히 쓰이는 이유는 시와 노래 모두 운율에 맞추어 언어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김소월 프로젝트의 수록곡들 또한 그런 의도가 물씬 풍긴다. 영화 음악 감독으로도 유명한 작곡가 박지만 씨의 곡은 전면에 화려하게 드러나지 않고 김소월 시인의 시에 은은하게 베어있다. 시를 노래하는 이들 또한, 그에 가장 적합한 가수들을 한데 모은 듯하다. 하나같이 담담한 어투로 노랫말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살리는 것으로 유명한 보컬들이다. 윤상의 고백하는듯한 어조와 가슴에 대고 부르는듯한 하림의 깊이 있는 목소리 속에서 살아나는 김소월 시인의 시는 시대를 넘어서 깊이 아로새겨진다.언어에는 해석과 이해의 차원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면이 존재한다. 시는 그러한 언어활동의 극치이다. 가장 오래된 문학 활동이면서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접한 것이기도 하다. 거기에 흥얼거리며 자기 생각을 함축적으로 전하던 것이 운율이 붙어 시가 되고 악기가 더해지면서 노래가 생겨났다.

오늘 날에는 노래가 시의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유행과 감각이 녹아나 있다. 오늘 날에도 우리가 즐겨 부르는 유행가 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통찰과 정신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날 노래 가사의 실종 현상을 그저 우습게 보거나 트렌드로 치부해 버리면 안 될 이유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소월 프로젝트의 시도는 2010년의 감각과 감성을 100년전의 목소리를 빌어 50년 후로 전하는 역할을 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그래서 이러한 시도가 더욱 소중하다. 생각해보라. 50년 후 2010년대를 돌아볼 때, 우리의 감성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외계어에 의해 쓰여졌다면 곤란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