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하면 통기타와 데모를 떠올리던 시대가 있었다. 시대가 흘러 옆구리에 토익책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자기만의 세계에 심취한 모습이 익숙해지기도 했다. 오늘날은 아무래도 카페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죽치고 앉아 머리를 싸매는 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전에는 영어 스터디가 주를 이뤘다면 이젠 ‘공모전’ 회의 중인 학생들도 만만찮게 찾아볼 수 있다. 한 해에도 수 백개씩 쏟아지는 공모전의 홍수, 그들이 그토록 공모전에 매달리는 이유를 자칭 타칭 공모전 매니아인 조선후 (23/남), 김효선(23/여)씨를 통해 알아보자.


Q. 먼저 어떤 공모전을 주로 하시는지와 관련해서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려요.

김효선 : 홍대 커뮤니케이션 디자인학과 재학중입니다. 광고 작품 공모전에 주로 참여 하고 디자이너 역할을 할 때가 많은 편입니다. 공모전은 다섯 번 참여 해 봤어요.

조선후 : 마케팅 기획서 공모전에 주로 나갑니다. 특별히 정해진 분야는 없습니다.

Q. 공모전은 왜 하세요?

김효선 : 공모전 참여 경력이 스펙이 되는 것도 사실이지만 반은 재미로 하고 있어요. 휴학하고 딱히 할 일이 없는데 집중할 수 있고 도움도 되는 활동이라서 좋은 것 같아요. 인턴처럼 얽매일 필요가 없어서 더 좋기도 하구요.

조선후 : 취업이 어렵잖아요. 대학교 학점과 영어 성적은 이제 특별한 ‘스펙’이 될 수 없는 것 같아요. 공모전 수상 경력이 있으면 든든할 것 같습니다.



Q. 두 분 모두 ‘스펙’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공모전 수상 경력이 실제로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보시나요?

김효선 : 공모전에서 얻을 수 있는 ‘스펙’을 그렇게 알고 있는 친구들이 많더라구요. 저는 특별히 많은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고 봐요. 제가 생각하는 ‘스펙’은 ‘난 이렇게 문제 해결할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난 이만큼 열심히 해봤습니다’ 라는 어필 정도입니다. 고작 공모전 수상 정도로 기업에서 알아 모실리는 없잖아요?

조선후 : 제 생각도 그래요. 저도 이 분야 저 분야 하고 있지만 통신 회사를 들어가고 싶은 사람이 외식업체 서비스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상 받아 놓고 특별한 '스펙‘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고 봐요.

Q. 그렇다면 기업에서 왜 공모전을 주최 한다고 생각하나요?

김효선 : 대학생다운 좀 더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현업인들은 더 전문적이겠지만 트렌드나 창의적인 면에서는 대학생들에게도 기대할 것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해서 혹여나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면 싼 값에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도 사실이죠. 상금 천만원 이천만원은 우리 입장에서는 큰돈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액수가 아닐거라고 생각해요.

조선후 : 제 생각은 조금 달라요. 전 많은 공모전을 나가 봤지만 수상한 아이디어들이 현실화 되었다고 생각한 경우는 없었어요. 기업측에서도 대학생들에게 큰 기대를 하고 공모전을 주최하는 것 같진 않습니다. 공모전의 특성상 과제를 해결하려다보면 그 제품이나 회사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알고 감정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에, 공모전 자체가 홍보용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Q. 두 사람 다 공모전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서도 지적해 주셨는데 그러면서도 공모전을 계속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김효선 : 결국 내가 결정권을 가진 사업자가 아닌 이상 어디를 가나 그저 아이디어를 제안만 하는 일은 큰 보상을 받긴 힘들다고 봐요. 기업에게 당하는 느낌이라는 친구들도 있지만 그 한계를 분명히 아는 상태에서 도움 될 것만 가져가면 손해볼 거 없잖아요?

조선후 :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윈윈이라고나 할까요? 열심히만 하면 기업 측에서 얻어가는 것만큼 분명 본인도 얻어 가는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선후씨가 ‘얻어간다’고 표현하셨는데 공모전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김효선 : 공모전에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아마 한 번쯤은 ‘스펙’에 대해서 생각해 봤을 거예요. 그러나 몇백명 중에 불과 십여명이 수상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 그게 쉬운 일은 아니죠. 전 공모전을 하면서 ‘사람’을 얻습니다. 공모전의 과정 하나하나가 커뮤니케이션인만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즐겁습니다.

조선후 : ‘성취감’이라고 생각해요. 왠만한 공모전은 한 번 참여하고 나면 진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고 모든 것을 쏟아 붓기 마련이에요. 그럼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후련하고 뿌듯합니다.

Q. 마지막으로 묻고 싶은 것도 그것입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을 때가 더 많아요. ‘그 시간에 다른 걸 할걸’ 하고 후회한 적은 없습니까?

김효선 : 후회하지 않아요. 내가 투자하기로 결정한 시간들이고, 수상 여부를 떠나서 나 전 이미 많은 걸 배웠거든요.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조선후 : 후회하죠. 매번 후회합니다. 밤을 샐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 공모전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모든 걸 떠나서 재미있거든요. 그래서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공모전은 가장 싼 홍보 수단’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기획 의도나 특전이 부실한 공모전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특별한 홍보 창구가 없는 공기업이나 정부 기관들이 앞 다투어 공모전을 주최하는 이유다.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들의 의도를 모를리 없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공모전에 참여한다. 소수, 정말 즐거워서 하는 학생들도 있겠지만 공모전 참여마저도 ‘스펙’에 발목 잡혀 있는 현실을 보면서 앞으로도 이름 모를 공모전이 속속 생겨나리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인터뷰 내내 ‘스펙’, ‘취업’으로 가득찬 그들의 현실을 들으며, 결국 오늘날 우리네 공모전 열풍은 꿈 없는 대학생들의 취업문 앞 줄 세우기에 또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꿈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또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들처럼 재미와 성취감을 위해서 공모전에 참여하는 대학생들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