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과 '20대'에 대한 인상비평이 여기저기에서 쏟아지고 있습니다. 이에 청년이슈팀의 [청년연구소]는 청년과 20대를 주제로 한 다양한 분야의 학술 텍스트를 소개하려합니다. 공부합시다!


‘청년’이라는 이름은 더 이상 낭만적이고, 희망적인 이름이 아니다. 청년 다수의 일상은 자격증 따기, 적성검사 준비, 토익, 인턴, 공모전 준비와 자원봉사 활동 등으로 구성되는 이른바 ‘스펙 관리’의 쳇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들은 서열화 된 직업시장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에 내몰리면서도, 끊임없이 압박해 오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매우 고달프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청년’이라는 달콤한 이름은 오히려 혀끝에 현실의 씁쓸함만을 남긴다.


그에 비해 청년들을 평가하는 주류 기성세대의 담론들은 냉혹하다. “청년 세대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한다. 게다가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힘든 일은 더욱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청년세대에 대한 이러한 담론들은 언론 등을 통해 끊임없이 생산되어 왔고 청년들은 무력하고 한심한 존재로 치부되었다. 결국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소통은 위기를 맞게 되었다. 청년세대의 삶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리고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와 어떻게 소통할 수 있을까. 


소통... 할 수 있을까...?


이번 청년연구소는 경희대 이기형 교수의 논문 '청년세대의 삶과 소통의 위기: 대학안의 내부자들의 시각을 중심으로'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한다. 이 논문은 엄기호의 '왜 이것은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은 학생들의 리뷰를 이기형 교수가 분석한 내용을 담고 있다.


기존 청년세대의 담론이 갖는 한계들


논문에 따르면 신세대, IT 세대, N세대, 광장 세대 등 청년 세대를 지칭하는 신조어들을 셀 수 없이 만든 이들은 언론과 출판계 혹은 문화영역의 담론생산자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신조어들은 매체의 필요를 위해 혹은 마케팅을 위해 의도적으로 청년들을 유형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그들이 그 시대에 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시대적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로 간주된다. 예를 들어, '신세대'라 함은 물질적 풍요 속에 자라났으며 책보다는 TV와 잡지 등 각종 매스미디어의 영향을 받아온 세대라는 용어이다. 그리고 삼포 세대는 연애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세대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대론이 모든 청년들의 개성이나 특징들을 반영할 수는 없다. 


되려 'OO 세대'라는 이름하에 청년들을 한 범주로 묶어버리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담론을 생산하는 이들에게 이보다 편리한 작업은 없다. 청년 세대가 겪는 현상이나 경험의 특징을 집어내어 'OO 세대'로 부르면 되기 때문이다. 결국 기성세대들에게 보여지는 것은 이러한 세대론이 드러내는 청년의식의 한 단면일 뿐이다.  

이러한 세대담론이 위험한 이유는 사회 내의 집단이나 세대 간의 편을 가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특정 세대의 행태나 성향을 규정짓는 작업은 그 세대론을 만들어내는 주체의 이해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결국 어느 쪽으로 치우칠 가능성도 농후하다. 청년 세대는 그 평가의 중심에 있는 세대이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세대론을 수용하는 사람들은 청년세대에 대한 피상적인 그림만을 그려낸다. 


위에서 언급했듯, 일부 기성세대는 현재의 청년세대가 불평등한 사회구조에 저항하지 않고 개개인의 경쟁력만을 갖추는 일에만 몰두한다고 비판한다. 20대가 예전 청년세대가 가지고 있던 연대의 가치를 망각한 ‘탈분노화’의 상태라는 것이다. 혹은 이와 반대로 청년들이 본인의 경쟁력을 제대로 갖출 생각은 하지 않고 사회구조의 문제만 탓하면서 정부의 정책들을 반대한다고 하는 기성세대의 비판도 있었다. 


이 담론들은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청년세대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결국 기성세대는 청년세대가 처한 현실과 그들이 표출하는 문제의식에는 귀를 기울이지 못하고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를 소위 ‘꼰대’라 부르며 반발한다. 청년세대와 기성세대는 서로 ‘소통 불가능한’ 세대로 바라볼 뿐이다. 그렇다면 논문의 필자가 찾아낸 소통의 해답은 무엇일까. 


청년들을 향하는 소통의 담론


논문의 필자인 이기형 교수는 엄기호가 학생들을 연구했던 방식에서 세대 간의 소통의 벽을 넘기 위한 해답을 찾아낸다. 대학에서 문화이론을 전공하는 교수인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는  자신이 강의실에서 만났던 다수의 학생들과 나누었던 소통의 경험을 비교적 자유롭게 기술한 책이다. 이 책의 특징은 연구자인 교수가 청년 세대인 학생들을 가치중립적인 입장에서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신, 그들이 겪고 있는 취업과 대학교육의 현실에서부터 시작하여 사랑과 돈과 같은 개인적인 고민까지, 청년들의 삶을 아우르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진솔하게 논의하고 있다. 


ⓒ푸른숲

기성세대는 청년들을 이미 언급된 거시적인 담론들을 갖고 함부로 재단하지 말고, 대신 청년들을 논의의 주체로 불러내어 그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들어주어야한다. 청년 세대의 삶을 이해하고 그들이 직면한 사회적 현실을 같이 마주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기성세대가 어떠한 실체적인 대안을 찾지 못할 지라도, 적어도 사회가 청년세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금까지 무엇을 해왔는지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이 반성은 기성세대의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 현재 이 사회의 중심에서 기득권을 쥐고 있는 것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이다.


엄기호의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를 읽은 청년들의 평가는 대부분 긍정적이다. 독자들은 기성세대의 관찰 대상으로서 제기되어 온 청년들의 문제를 청년들의 목소리로 절실하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고 한편으로는 위안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일부는 그러한 현실을 방조한 기성세대의 문제를 지목한다. 그리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간의 갈등과 긴장을 드러낸 최초의 세대담론이 '88만원 세대론’이었음을 논문의 필자는 지적한다.


88만원 세대담론이 가진 의미


88만원 세대 담론은 기존의 세대담론들과 차별화된다.88만원 세대론은 현재 청년 주체들이 현실에서 겪고 있는 어렵고 불안정한 사회경제적인 상황의 원인을 386세대를 포함한 기성세대의 책임임을 제기함으로써 기존 세대 논의의 틀을 크게 벗어나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론은 청년들의 현실적인 문제의식을 담아내는 동시에 기존의 세대담론에 대한 방어기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신선한 세대담론이었다. 이러한 담론은 청년세대가 맞닥뜨린 현실의 문제의식을 기성세대에게 일깨워주는 역할을 하였다. 경제적 모순과 양극화, 불안정 노동으로 인해 고통과 밀착되어 있는 청년세대의 삶을 담론의 중심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88만원 세대론은 청년세대의 위기에 대한 사회의 반향을 일으켰고 기성세대와 청년세대가 이 위기를 함께 극복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담론’도 아직 진정한 의미의 세대 간의 소통을 이루어낸 담론은 아니다. 


이기형 교수는 청년세대의 구성원들이 자신들의 체험과 관점을 바탕으로 주체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이 고무적인 징후라고 생각하며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에게 세대 간의 현실과 문제의식을 공유할 수 있는 ‘진정한’ 담론으로 화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앞으로의 세대 담론은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공감과 배려를 기반으로 삼는 소통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 담론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