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 관음기] 5화 십 구문 반의 신발, S 다이어리


“내 신발은 / 십 구문 반 / 눈과 얼음의 길을 걸어 / 그들 옆에 벗으면 /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 귀염둥아 귀염둥아 / 우리 막내둥아.”


박목월의 시 ‘가정’에는 십 구문 반의 신발을 신는 가부장과 육문 삼 신발의 주인인 막내가 등장한다. 처음 만난 날 S는 육문 삼의 코가 납작한 신발을 신는 막내둥이 같았다. 입을 열 적마다 까르르 까르르 웃어 젖히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리고 겨울에서 여름까지의 시간이 흐른 지금, 단언컨대 S는 십 구문 반의 신발을 신는 가부장의 모습에 수렴하고 있다. 입을 열 적마다 껄껄 웃어 제끼는 S의 다이어리를 관음해보았다.



다이어리를 소개해달라.

작년 12월 말부터 써온 스케줄러 겸 다이어리다. 평범하다. 먼슬리는 일정을 관리할 때 쓰고 위클리는 생각을 정리할 때 쓴다. 해야 할 일을 나열하거나 지인과 나눈 이야기를 적어두거나, 읽은 책 내용을 기록하거나 하는 식이다. 아, 또 자아 성찰도 한다. 자괴감이나 후회를 토해내면서.



먼슬리에 두줄로 죽죽 그은 흔적이 많은데?

이미 지난 일정은 과감하게 지운다. 지우면서 성취감을 느끼곤 한다.


스케줄이 주기적인 것 같은데 자세히 알려달라.

신문사에서 편집국장 직위를 맡고 있다. 보이다시피 일상은 신문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주간 신문이므로 삶의 패턴 역시 일주일 단위로 고려한다. 


먼저 월요일 오전에 지난 주에 발행된 신문을 실물로 확인한다. 오후엔 2시부터 11시까지, 그러니까 종일 회의를 한다. 화요일과 수요일에는 평기자의 기사 얼개를 함께 짜고, 취재하는 것을 돕는다. 목요일에는 초고를 종일 첨삭한다.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웹하드에 쌓여 있는 기사를 마감한다. 토요일 밤까지 조판 작업을 하고, 일요일은 종일 잠을 잔다.


듣는 것만으로도 숨이 찬다.

그렇다. 힘들다. 입학한 지 5학기 째인데 신문사 생활도 5학기 째다. 1학년 1학기 3월에 신문사의 문을 두드렸다는 말이다. 보통들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지 않나. 나 역시 그런 시기가 잠깐 있었는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생각을 좀더 하고 싶었고, 술맛을 잘 몰랐기도 해서 아쉬움 없이 과 생활을 포기했다. 덕분에 1학년 1학기에 스펀지처럼 빨아 들이는 ‘대학 구성원으로서의 사회화’ 과정을 겪지 못했다.


신문사에 들어간 이후 평기자 생활은 죽을 것 같았고, 부장일 때는… 혹시 비속어를 사용해도 되는가?


알아서 검열하겠다.

부장일 때는 XX 죽을 것 같았고, 국장이 되고서는 역시 XX 죽을 것 같았다. 평기자와 부장 사이의 노동 강도에 매우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국장이 됐을 때는 되레 큰 부담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다.


방학 중에도 먼슬리는 꽉꽉 채워져 있다.

방학 때도 신문사는 멈추지 않는다. 평기자 교육도 해야 하고, 아이템을 첨삭할 때 기본 배경지식이 필요하니까 공부도 많이 해두어야 한다. 보통 오전 9시까지 출근해 2시에 퇴근한다. 사실 말이 오후 2시지 다들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템 제출 기간에는 오후 11시까지 기자들을 잡아두기도 한다. 이 자리를 빌려 미안하다고 전하고 싶다.


이런 생활을 5학기 째 하고 있다니… 대학이 8학기인 것은 아는가?

물론 잘 알고 있다. 등록 5학기인데 아직 53학점밖에 못 들었다. 앞으로 꽉꽉 채워 들어야 하고, 듣겠지만 아무래도 졸업은 매우 늦어질 것 같다. 그래도 이번 학기가 신문사에 남는 마지막 시간이다.


이렇게 오래 신문사에 남을 생각은 아니었다. 정기자까지만 하고, 사촌이 살고 있는 호주에 가서 여행도 하고 휴식도 취하려고 했었다.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다음 학기엔 호주에 갈 것이라고 공연히 말하고 다니기도 했다. 그때도 지쳐있긴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런데 선배 기자들이 내가 반드시 부장 직을 맡아야 하는 이유, 신문사에 남는 것이 좋은 이유/배울 수 있는 것 등등을 구구절절 풀어냈다. '배울 수 있다'는 그 한마디가 나를 붙잡았다. 덕분에 환불도 못 받고 비행기 티켓까지 날려야 했지만 삶에 대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긴 했다.




위클리는 거의 보여주지 않는군. 부끄럽다고만 하는데 자아 비판할 것이 그렇게 많은가? 공산당인가?

자아비판을 그리 많이 하는 것은 아니다. 오해하지 말아 달라. 왜 자아비판이 많으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많이 했지? 아마 반성하면 발전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내 자신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게 된 것 같다.


그렇다면 삶의 낙은 무엇인가?

글쎄. 취미는 자는 것이다. 잘 자기 위해 맥주 한 캔씩을 마시고 잔다. 술을 마시면 꿈도 꾸지 않고 잘 잘 수 있다. 종종 스트레스를 주는 평기자가 꿈에 나와 괴롭히기도 하는데 그들이 나오지 않으니 좋다.


마냥 수면제로만 술을 먹는 것은 아니고 맥주라면 다 좋다. 얼마나 잘 마시는지 수량으로 이야기하긴 뭣하지만 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들을수록 40, 50대 가부장 같다. 십구문 반의 신발을 신고 산수유 열매를 따올 듯한…

신문사가 기점이 됐다. 특히 부장을 맡으면서 성격까지 달라졌다. 약간은 거칠어졌달까. 책상을 내려치기도 하고 입에 욕이 붙기도 하고. 심지어는 나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에게 성질도 내는 등 싸움의 기술이 늘었다.


고등학교 때는 토론 동아리를 했었는데, 그때 배운 토론이 모두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획회의를 하다가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가져왔을 때 “자, 서로의 의견을 공유하고 갈등을 조율해보자”하는 식의 논의가 불가능했다. 이상하게 우기는 사람도 많고, 말이 안 통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전반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많이 보인다. 자기계발적 인간형에 가까운가?

놀고 싶은데 겁이 나서 공부를 한다. 한번 풀어지면 한없이 풀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잘 알고 있다 보니 빈 시간을 빈 시간으로 두지 않고 몰아치는 것도 있다. 이런 삶의 양식이 마냥 부정적이게 들릴 수도 있지만 매듭 지으며 걸어 나간다는 것에 성취감을 느낀다. 


구체적인 순간으로 표현하자면 매주 신문 조판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 밤늦은 시간이니 택시가 매우 빠르게 달리는데, 그때 그 순간의 쾌감이 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탄 느낌이다.


그렇군. 신문사 일에 대한 다른 자랑도 부탁한다.

사람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다. 원하는 글을 원하는 만큼 쓸 수 있도록 공식적인 지원도 요청할 수 있고. 언론, 나아가 저널리즘에 대한 고민까지 뻗어나가기도 한다. 평기자 생활을 하면서는 내 그릇을 넓혀가는 느낌이 좋았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랄까? 또... 학교 앞 유명한 짜장면 집의 짜장면도 실컷 먹을 수 있다.


의욕적으로 사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 놀라고 있다. 체력은 잘 받쳐주는가?

이번 마감을 하며 특히 체력적 한계를 느꼈다. 기사를 보는데 글이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이틀 밤을 새도 괜찮았는데 요즘은 이틀 밤을 새면 썩 어지럽다. 최근에는 일주일 동안 체한 적도 있었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한의원에 갔더니 손가락 발가락 스무 개를 하나하나 다 따주셨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것이니 허덕이면서도 하고 있다. 재충전하는 방안이라 하면 그저 일요일에 몰아서 자는 것? 자고 일어나면 오후 5시쯤이고 TV에선 '삼둥이'가 나온다. 주말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어 슬프긴 하지만 그래도 자는 것이 가장 좋다.


체력을 기르겠답시고 자전거를 탄 적도 있는데, 한번 넘어진 후로 무서워서 못 타고 있다. 또 엄마가 한약을 지어주셨는데 그걸 먹으면 술도 밀가루도 포기해야 한다기에 한약을 포기했다. 맥주도 짜장면도 먹어야 할 것 아닌가.





프리노트로 넘어가보자. 이것들은 대체 무엇인가?

신문사 일이 모두 끝난 후 하고 싶은 일들을 써놓았다. 힘들 적마다 하나 둘 쓰면서 원기를 회복하곤 한다. 현실이 고되다보니 찬란한 미래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냥 기쁘다.


신문사를 벗어나는 다음 학기에는 마감 없이, 가감 없이 생각을 써내려가고 싶다. 또 책도 많이 읽고 싶다. 하고 싶은 일 중에 ‘집 앞 벤치에서 책 읽기’도 꼭 해볼 것이다. 집 근처를 지나다 얼핏 아늑하고 아기자기해 보이는 벤치를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유유자적 책장을 넘기고 싶다.


그렇게 신문사 일을 하고도 글자를 보겠다고? 활자 중독인가?

약간 그런 감이 있다. 하지만 같은 글자를 보더라도 시간에 좇기며 보는 것과, 시간에 방해받지 않고 읽는 것은 매우 다르지 않나. 날이 머지않았다. 이제 종간호 하나 남았다.


신문으로 삶을 세다니, 멋진 워커홀릭이다. 앞으로 그려나갈 삶이 궁금하다.

앞으로도 글을 쓰는 사람, 그중에서도 신문 기자가 되고 싶다. 사안을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그 맥락까지 전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조금 더 넓은 범주로 이야기하자면 누구나 그렇듯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기며 살고 싶다. 고생스럽더라도 유의미한 일들을 하면서.


십구 문 반의 신발을 벗고 호주로 떠나려던 S는 편집실에서 활자를 마주하고 있다. 신문으로 삶을 세는 S는 (내 생각에) 종간호가 끝나고도 아마 육문 삼의 신발을 신지는 못할 것 같다. 고생스러워도 유의미한 일로 일상을 채우는, 시린 눈밭을 헤치고 산수유 열매를 따러 나가는 S에게 (과연 S는 산수유의 약자였던가.) 십구 문 반이든 육문 삼이든 무어가 대수겠는가 싶다. 맥주와 짜장면, 일요일 종일토록 자는 낮잠이 있으니 말이다.


*참조 김종길 '성탄제', 박목월 '가정'


인터뷰/글. 이매진(temporis@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