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강연의 영상 속 학생들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상하고 있었다. 2008년 두산 재단이 중앙대에 들어온 후 학교는 몇 차례의 강도 높은 학사 및 학교 전반에 관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시작은 2009년이었다. 이 과정에서 학교의 독단적인 구조조정 단행을 비판한 학교 자치 언론 중앙문화는 강제 수거되고 예산이 삭감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구조조정을 반대하며 한강 다리에, 건물 공사 현장에 올랐던 학생들은 학교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로 퇴학이나 정학 등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약 6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 싸움은 멈추지 않고 있다.


2015년 2월 26일, 중앙대는 '학사구조 선진화 계획'을 독단적으로 발표했다. 학교 측에서는 이번 구조 조정안이 인력 수급의 불균형을 해결하고 학생의 진로선택의 폭을 확장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이 급진적이었고 절차의 타당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서 커다란 논란이 일었다. 특히 이번에는 교수들도 강력하게 항의했다. 교수 중 87%가 개혁안에 반대했지만 본부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발표했기 때문이었다. 이 개혁안으로 비인기학과가 폐지되고 학생 간의 경쟁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일었고 캠퍼스 내에서는 이에 대한 뜨거운 공방전이 벌어졌다. 수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계획안은 약간의 수정을 거쳐 4월 27일 이사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6월 1일 중앙대학교 서라벌홀에서 열린 자유인문캠프의 ‘2015 여름 새내기 교양학교’ 의 프로그램의 첫 날은 대학 구조조정의 흐름과 그 원인들에 대한 강연과 토론으로 이루어졌다. 본격적인 강연에 앞서 올해 초 중앙대에 커다란 파장을 몰고 왔던 ‘학사구조 선진화계획’의 진행과정에 대한 간략한 정리가 있었다. 이후 자유인문캠프의 기획진인 최철웅(중앙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수료)의 강연으로 대학의 기업화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그는 대학의 기업화, 자본과 대학과의 관계를 생각하기에 앞서 신자유주의가 단순한 사상이 아닌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현대의 모습을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 자유인문캠프 페이스북 페이지

 

신자유주의가 대학에 침투하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이제 하나의 문화가 되었습니다. 단순한 정책으로 환원된 것이 아니라 가치, 규범, 합리성, 습관, 생활양식 전반에 신자유주의가 침투한 것이죠” 최철웅 씨는 이 현상이 대학에도 예외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교수 평가제와 연봉제, 총장 직선제 철폐, 경영대나 공대와 같은 학부 우대, 인문 사회계열의 구조조정과 같은 구체적인 정책들은 시장 가치를 우선시하는 신자유주의 흐름에 편승한 것이었다. 

 

이 흐름에 따라 대학의 풍경은 확연히 달라졌고 학생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교원 평가 제도가 도입되었으며 경쟁 효율성을 위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또한 기업의 대학 인수는 자율화되었으며 영리 산업이 대학에서 판을 치게 되었다. 


물론 기업이 대학에 들어와서 좋은 점도 있었다. 학교에 침투한 대기업이 주는 달콤한 혜택은 그들의 혀를 마비시키기도 했다. 학교는 외형적으로 성장했으며 대학평가 지표들은 개선되었다. 그러나 대학의 기업화는 ‘학문의 전당’으로서의 대학의 의미를 퇴색시켰으며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개혁은 대학의 민주적인 분위기를 말살했다. 이번 중앙대 개혁 과정에서 본부는 학내 구성원들과의 어떠한 합의도 없이 구조조정안을 발표했고 이에 비판하는 그들의 목소리를 계획적으로 묵살하였다. 그에 이어 터진 박범훈 전 총장의 불법적인 특혜와 비리 의혹 및 박용성 전 이사장의 막말 논란은 기업이 약속했던 대학의 ‘장밋빛 미래’ 뒤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렇다면 왜 대학에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들이닥쳤을까? 최 씨는 신자유주의가 만들어 낸 ‘대학 위기 담론’이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산업의 수요, 고용의 불안정 그리고 치솟는 실업률과 같은 사회의 문제들이 정부나 경제 구조의 탓이 아니라 ‘대학의 탓’으로 돌려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경제 상황에 맞춰 노동 인력은 유연하게 조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교육과 대학이 제대로 된 인적 자본을 길러내지 못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되었다’ 이러한 논리에 대해 최 씨는 교육에 모든 책임을 전가시키는 것은 분명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취업을 못하는 게 대학 때문인가요? 대학이, 학생들이 잘하면 사회구조를 바꾸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나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학생들도 이 의견에 모두 동의하며 대학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을까. 최 씨는 중앙대의 일련의 사건을 겪고도 대부분의 학생들이 아무 일도 없는 듯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연대의 실종, 대학의 미래는...?


중앙대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중앙 문화와 같은 자생적 언론을 탄압하고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학생들에게 강력한 징계를 내리면서 학생의 자치권을 서서히 박탈하는 것이었다.  “학교의 주인이 학생이나 교수와 같은 교육의 주체들이 아닌 학교 재단의 이사장이라고 선언하는 것은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최 씨는 이러한 권력관계의 전복으로 인해 학생들이 연대의 가치를 잊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오히려 청년들은 이 권력관계를 내면화하고 경쟁의 질서를 당연하게 여긴다. 


대학생들은 경쟁에서 도태되는 것을 불안해한다. 신자유주의는 이들에게 냉정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밀려나면 취업이라는 험난한 관문을 통과할 수 없다. 이러한 무한 경쟁의 체제 속에서 청년들은 대학가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의 바람을 이겨낼 힘을 잃어버린 듯하다. 구조조정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거나 ‘대학은 원래 취업 학원이 아니다!’라며 순수학문, 특히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선에서 저항은 벗어나질 못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현실주의’에 부딪친다. ‘우리의 현실이 지금 이런데 별 다른 방법이 없잖아? 대학을 나오면 취업을 할 수 있어야지’와 같은 주장 말이다. 


최 씨는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생적인 교육문화와 학생 문화를 기획하여 ‘대학의 공공성’을 정립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신자유주의의 질서는 개인적으로 거부할 수 없다. 따라서 같이 연대하여 대안적인 이념을 만들어야 한다. 자유인문캠프의 이 날 강연은 ‘대학의 질서를 다시 어떻게 회복시킬 수 있을까?’라는 대학생들의 고민에서 시작하였으며 ‘신자유주의와 현실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과 그에 대한 학생들의 공감 없이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시사점을 던져주었다. 


글/ 베르다드 (qwerty925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