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해가는 시골 마을 궐렌에 ‘차하 나시안’이라는 귀부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신의 옛 애인 안톤을 살해한다면 10억 마르크를 내놓겠다는 제안을 건넨다. 마을 사람들은 처음에는 그녀의 제안을 거절했지만, 결국 살인은 민주적인 절차의 외피를 입고 진행된다.
1951년 발표된 뒤렌마트의 희곡 [노부인의 방문]은 인간이 돈, 자본이라는 가치 앞에서 얼마나 쉽게 타락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1950의 스위스에서 육십여 해가 지난 오늘의 한국에서도 자본의 힘은 막강하다. 분명 우리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것’보다 ‘돈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공간은 시골 마을 궐렌에서 중앙대로, 주인공은 노부인에서 박용성으로 변하였다. 두산의 재단인수 전까지 중앙대학교는 재단의 전입금이 부족해 천원재단으로 불렸다. 그리고 찾아온 2008년, 대기업 두산이 중앙대학교 재단을 인수한다 하니, 학내 여론은 들떴다. 두산이 재단에 들어오고 얼마 후, 중앙대 기존의 총장 직선제가 법인 임명제로 바뀌었다. 인사권을 독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두산은 프로였다. 학생들의 머리에 폴로 모자를 씌워주고, 입에는 버거킹 와퍼를 물려주고, 손에는 두산베어스 응원 막대풍선을 쥐여 줬다(물론 그날 야구장 입장은 무료였다). 교정은 변화에, 자본의 힘에 도취되었다. ‘그게 뭐? 다들 눈감고 살잖아?’ 노부인이 아닌 기업가의 방문이었다.
노영수 지음 '기업가의 방문' ⓒ후마타니스
“내가 중앙대 이름만 빼고 몽땅 바꾸겠다, 교수들은 지켜봐 달라, 만약 내 발목을 잡는 사람이 있으면 교수의 손목을 자르고 가겠다.”
-박용성 전 이사장, 2008년 중앙대 교수들을 창원 두산중공업 본사로 초청한 자리에서
“박용성 이사장님께서 ‘얼굴에 분 바르는 여학생들 잔뜩 입학하면 뭐하냐. 졸업 후 학교에 기부금도 내고 재단에 도움될 남학생들을 뽑으라’고 말씀하셨다.”
- 전 입학처장, 중앙대 이 모 교수
“제 목을 쳐 달라고 목을 길게 뺐는데 안 쳐주면 예의가 아니다.”
- 박용성 중앙대학교 전 이사장, 이용구 중앙대 총장과 보직 교수 등 20여명에게 지난 3월 25일 보낸 이메일에서
박용성, 그 후- '대학의 기업화'를 감각하기 위해서
뇌물 공여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용성의 중앙대' 시대는 그 저열함을 드러내며 막을 내렸지만, 대학의 '기업화'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박용성의 후임 이사장으로 선출된 김철수 이사장은 세종대 총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사학비리로 징계를 받았던 인물이다. 더불어 '기업화'라는 개념 역시 많은 대학생에게 여전히 추상적인, ‘나’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로 인지된다.
이러한 지점에서 노영수 작가의 [기업가의 방문]이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 03학번 대학생이었던 작가는 2008년 두산의 재단인수 전, 후를 모두 겪은 인물이다. 그가 '기업가의 방문'에, '대학의 기업화'에 부딪히며 겪은 수기는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해 독자가 '기업화'를 감각하도록 돕는다.
그렇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의 이야기가 ‘대학의 기업화’라는 신자유주의 영향아래 대학의 변화를 일상 속에서 감각되는 지점으로 끌어내렸다는 것이다. 너무도 익숙해진 ‘구조에 저항하는 개인은 무력하다’와 같은 말에는 '구조'의 영향에 대한 개인의 감각 과정이 생략된 경우가 많다. [기업가의 방문]은 이제 클리셰가 되어버린 '개인'의 체념에서, 생략되는 ‘구조’에 대한 체감을 돕는다. 대학의 기업화가 논문과 기사가 아닌 네러티브로 쓰였을 때 개념은 감각되기 쉬운 것이 된다. '대학'의 구성단위가 자연스레 책을 읽으며 '기업'의 구성단위로 치환됨을 느끼는 것은 이 책이 주는 놀라움 중 하나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병치 되는 학생과 회사원, 어용노조와 총학생회, 대학과 기업의 구도는 '대학의 기업화'를 일상 속에서 느끼게 한다.
일단 대학의 구성단위가 기업의 구성단위로 전치가 된다면 '자본주체 기업'의 전략은 명확하게 보인다. 재단 우호적인 학내 커뮤니티는 단일한 소통의 창구로서 만들어진 도구, '국토대장정'과 같은 행사는 학내 재단 우호적인 권력기관을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인맥형성의 장('국토대장정 일정에는 창원 두산중공업 견학이 있었다'라고 작가는 말한다), 학내 논란이 일 때마다 여론 호도를 위해 이루어졌던 '학생'대 '교수' 구도의 갈등 프레이밍 등등...
[기업가의 방문]은 이러한 측면에서 읽혀야 한다. ‘자본은 강하다.’ ‘구조 앞에 개인은 무력하다.’ ‘어차피 그래 봤자’라는 말은 너무도 익숙하다. 하지만 ‘기업화’, '신자유주의의 포섭'을 감각하여 경험하는 과정은 부재하다. 이 지점에서 ‘직감’으로 행동했던 ‘노영수’의 이야기는 당신을 좀 더 민감하게 할 촉매가 될 것이다.
잠깐. 책을 읽기 전에, 노영수의 네러티브를 감상하기 전에 자막 하나를 깔아두자.
위 이야기는 사실에 기반을 두었으며, 극적 효과를 위한 각색은. 역시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글. 압생트(9fift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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