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부터 8월 18일까지 [고함20]은 아마추어 저널리즘에 관한 프로그램 <마이 리틀 저널리즘(마리저)>을 진행합니다. <마리저>는 강의와 세미나를 통해 아마추어 저널리즘의 경계선을 긋는 것부터, 아마추어 저널리즘이 할 수 있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에 대해서 알아보려 합니다. 



1주차 프로그램(7월 14일)에서는 대중문화 웹진 [ize]의 위근우 기자님에게 저널리즘 글쓰기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아마추어 저널리즘에 대해 본격적으로 논의해보기 전에 ‘글쓰기란 무엇인가’라는, 다소 막연하고 넓은 범위의 이야기를 그가 실제 글쓰기 과정에서 했던 고민들을 통해 차근차근 밝혀나갔습니다. 여전히 매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위근우 기자, 그의 강연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육하원칙

육하원칙을 정하는 단계가 선행되지 않고 글을 쓰면 헛발질하거나 자기만족적인 글을 쓰기 쉽습니다. 

누가? ‘내’가 쓰겠죠.
언제? ‘지금’이겠고요.
어디서? 자신이 속한 매체 혹은 개인 블로그가 되겠죠.
무엇을? 요즘 이슈나 비평을 한다면 대중문화 콘텐츠 등의 텍스트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잘 써야겠죠.
왜? 이 부분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인용하겠습니다. 글 쓰는 이유로 '이기심, 미학적 열정, 역사적 충동, 정치적 목적’을 들 수 있다고 합니다.


#왜쓰는가

결코 사람은 하나의 욕구를 가지고 쓰지 않아요. 앞의 조지 오웰의 분류에 동의하는 사람들도 이 욕구 중 하나만 가지고 글을 쓰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오늘이 <마이 리틀 저널리즘>. '저널리즘' 강의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공적인 목적에 방점을 찍을 거예요. 물론 다른 이유가 여전히 공존할 수 있을 수 있겠지만 글에 드러나선 안 되겠죠. 합리적인 의제를 제안하는 글이 아니라, 합리적인 의제를 제안하는 똑똑한 나를 과시하는 글이 안 되도록 조절을 해야 하는 거죠. 물론 후자의 글이 나쁜 글은 아니에요. 우린 이기심 때문에 글을 쓰니까. 하지만 ‘저널리즘’ 글쓰기를 한다면 정치적 목적, 즉 공익적인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무엇을쓸까

이슈에 대해 쓰고 싶다면,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는 건가 판단을 해야 해요. 그리고 '지금' 이 주제에 대해 쓰는 게 맞느냐는 생각도 해야죠. 


#어떻게쓸까_첫문장과끝문장

첫 문장은 중요합니다. 다만 쓸데없는 말을 넣어선 안 되겠죠. 현상의 본질에 들어가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단순히 있어 보이려는 인용구는 군더더기입니다. 


#어떻게쓸까_문단

문단 단위로 생각하세요. 하고 싶은 말을 문단단위로 생각하면 가독성도 좋아지고 논리 전개도 깔끔해집니다. 글을 쓸 때, 특히 기사를 쓸 때 현상을 말하는 부분은 되도록이면 한 문단으로 끝내세요. 다들 아는 이야기이지만, 글의 완성도를 위해 필요한 설명이기 때문이죠. 

그렇게 첫 번째 문단을 쓰고 두 번째 문단으로 넘어가 봅시다. 그때 쓸 것이 없다면 거기서 끝이에요. 망한 글이죠. 이 문단부터는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쭉 써내려가다가 마지막 문단에 다다릅니다. 저는 마지막 문단을 쓸 때 이 글에서 쓰고 싶은 생각이 가장 구체화됩니다.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에서 글쓰기를 시작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생각을 구체화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글을 쓰는 것이기 때문이죠. 


#어떻게쓸까_미문

저널리즘에서 ‘간지나는’ 문장은 중요해요. 독자를 끌어 들어야 하기 때문이죠. 영화로 비유하자면,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연출이 별로면 선뜻 좋은 영화라고 말할 기분이 들지 않겠죠. 미문에 대해서는 아도르노의 글을 인용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떤 텍스트나 담론이 너무 아름답다는 종종 제기되는 이의는 의심해볼 만하다. [...] 문필가는 아름다운 표현과 객관적인 표현을 구분하려 드는 것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문필가는 성실한 비평가에는 그러한 구별이 가능하다고 믿어서는 안 되며 자기 스스로에게도 그런 구별을 용인해서는 안 된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완전하게 말하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이 아름다운 것이다.”
- <미니마 모랄리아> 중에서 

비유도 쓸 수 있겠죠. 다만 비유가 여러분이 표현하고 싶은 대상을 적확하게, 한 번에 드러내는 비유가 아니라면 안 쓰는 게 나아요. ‘저널리즘’ 글쓰기이기 때문에요. 단순히 수식 많은 표현이 아니라, 대상을 한 번에 관통하는 문장, 거기서 문장이 빛나는 것이에요. 그런 문장은 글을 멋있게 써야지 하는 마음보다 대상에 대해 얼마나 사유했는가에서 나와요. 

“민호 안의 소년은 성장했을 뿐 죽지 않는다('민호의 근육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판타지' 중에서)." 샤이니 팬들에게 반응이 좋았던 문장이에요. 팬이 좋아했다면 이것은 민호에 대해 간결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민호에 대한 성찰이 독자에게 잘 먹혀든 거죠.

약간 팁을 드리자면, 미문을 고민하지 말라고 했는데, 힘을 주는 문장은 고민해도 좋아요. 그리고 그런 문장은 짧게 쓰는 것이 좋아요. 스타카토를 찍는 느낌으로. 개인적으로는 짧은 문장을 세개 정도 연달아 써요. 저는 주로 마지막 문단에 그렇게 연출하는 걸 선호해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쓸데없는 문장은 있으면 안 돼요. 이 문장을 지우면 글이 무너질 것 같을 때까지 쓰는 것, 그게 제 노하우입니다. 


#정보가아닌지식을전달하자

리스티클(list+article) 형식을 빌려 기사를 쓴 적이 있어요. <별에서 온 그대>의 신성록의 소시오패스가 주목을 받았는데, 언론이 소시오패스와 사이코패스에 대한 오해를 재생산하고 있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이코패스, 소시오패스에 대한 편견을 설명충이 되어 하나씩 설명해봤어요(<별에서 온 그대>, 너희가 사이코패스를 아느냐). 저는 이것이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언론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정보를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ize]의 모토가 ‘지식항해자를 위한 나침반’이에요. 정보보다는 지식을 전달하고 싶은 매체를 하고 싶어요. 정보는 무지막지하게 많으니까, 단순한 정보를 주기보다는 의미있는 지식을 주고 싶었어요. 지식과 정보는 어떻게 다를까요? <월간잉여> 최서윤 편집장(<마리저> 6주차 강의자)이 미디어오늘 기고글에서 '맥락도 없고 단편적인 리스티클 대신 설명충이 되어 기사를 써야한다’고 말했는데 반은 동의하고, 반은 동의 안해요. 굉장히 적은 정보를 가지고 정보량을 늘려 설명충이 되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요? 정보량을 늘리는 게 아니라 그걸 가지고 스토리텔링을 하는 것, 하나의 담론을 만들어야 해요. 


#경계하자_공감

글 쓰는 사람이 경계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공감이에요. 만약 정부가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 “현 정권이 이래도 됩니까”라고 쓰면 대중은 고개를 끄덕이겠죠. 그런데 그게 유의미한 피드백인가요? 이기심을 충족할 수는 있겠지만, 기사로서 가치가 있지는 않겠죠. 


#질문1_ 
민호 기사 이야기 하시면서, 정말 좋아하는 대상은 기사로 쓸 수 없다고 하셨어요. 덕질이 되어버리기 때문인가요?

네. 덕질이 될 가능성이 커요. 온전한 판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것처럼, 기사에서는 코끼리 얘기를 해야겠는데 나는 코 얘기를 하겠다라면 안 되는 거죠. 또 통찰력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논리적 답변을 만드는 과정에서 온다고 생각하는데요. 만약 내가 민호의 덕후라면 민호가 반짝반짝하는 게 너무 당연해서 ‘왜’ 그런지 궁금하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요?


#질문2_
20대 언론에서 기사를 쓸 때, 20대 언론이니까 기성언론의 문체를 답습하지 말고 너희만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기존의 기본적인 기사 형식을 빼고 20대의 목소리를 전달하면 ‘이게 기사냐?’라고 해요. 기자님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일단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국 저는 '왜 쓰는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20대 얘기를 왜 하느냐 등의 고민이 있겠죠. 만약에 글쓰는 걸로 이기심을 충족하겠다면 팩트가 틀렸거나, 윤리적으로 올바른걸 전파하는 게 아닌 이상 그런 욕망을 뭐라하겠어요. 다만 저널리즘이란 것은 독자의 선택을 받잖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공감으로 얻는 피드백은 효과는 뚜렷하나 한계가 분명해요. 가려운 데를 긁어주는 것은 수명이 오래가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말하자면, 드립과 탐사보도가 있을 때, 드립은 기사가 게시판을 따라잡지 못할 것 같아요. 앞서 말했듯이 '언제'라는 동시대 맥락은 중요해요. 다들 드립을, 리뷰를 쓰고 있는데 그에 대한 유의미한 글을 쓰려면 차별화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잘 쓴 기사가 블루오션이라고 생각하고요. 여전히 수많은 매체가 있지만 잘 쓴 기사는 여전히 적으니까요.


#질문3_ 
피키캐스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피키캐스트가 성장하고 있고 논란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존의 저널리즘을 대체할 위력 있다고도 하고요. 

제가 거기 연재중이어서...(웃음) 우선 저작권 문제는 해결되어야 마땅해요. 

플랫폼으로써 피키캐스트는 흥미롭지만 지금까진 매체의 위력은 딱히 없다고 생각해요. 조회수만으로 영향력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영향력을 위해선 의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예를 들어 KBS <안녕하세요>를 잘게 잘라서 보여주는 걸로 뭘 할 수 있을까요. 

언젠가 [뉴스타파]의 보도를 카드뉴스로 만들었을 때, 뉴스타파의 실제 콘텐츠보다 조회수가 높았어요. 그런 식으로 재밌는 콘텐츠를 얻으려는 사람들에게 굉장히 연성화된 방식으로 접하는 것에 대한 고민은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녹취. 사미음(blue9346@naver.com)
정리. 릴리슈슈(kanjiwon@gmail.com), 농구선수(lovedarktem@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