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름의 한 가운데, 나는 끝도 없는 사막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아무도 없는 사막에서 내리쬐는 태양빛을 온전히 맞으며 영원히 정해지지 않을 것 같은 목적지를 향해 느릿느릿 걷는 기분. 뚜렷한 목적 없는 행위는 나를 잉여롭게 만들었고 즐겁지 않은 고행은 나를 지치게 했다.

엄청난 사건이나 시련이 닥쳤던 것도 아니다.
그저 나는 휴학을 꽤 한 덕분에 이제야 졸업을 한 학기 앞둔 고학번일 뿐이었다. 고작 그게 문제였지만 오직 그것만이 문제이기도 했다. 열다섯부터 찾아 헤맨 그놈의 자아와 장래희망은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처음에는 꽤나 조숙하게 본연의 나를 탐구하고 미래를 꿈꾼다는 게 ‘데카르트 얼리어답터’ 쯤 되는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신제품 자아탐구에서 스펙 쌓기의 브랜드 뉴 제품으로 갈아타지 못한 탓에, 나는 애늙은이에서 철들지 않은 어른이 되어있을 뿐 이었다. 

그렇게 맞은 여름이었다. 찜통에 넣고 널 질식시켜주마, 햇볕아래서 말라 비틀어 죽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게다 하며 나를 고문하는 것만 같은 이 계절에서 내가 하고 싶은 건 별로 없었다. 문 앞에서 쪼그려 앉아 반가운 편지를 기다리는 아이처럼 덥지 않은 시간대를 기다렸다가 해야 하는 일들을 느릿느릿하고, 남은 시간에는 달력에서 가을이 오기까지의 날들을 세는 게 전부였다.

내겐 뭔가 필요한 것이 분명했다. 새빨간 비빔국수처럼 눈물 나게 맵거나 한 입만 베어 물어도 시큼 쌉싸름한 맛에 몸서리가 처지는 자몽 같은 무언가가 필요했다.

오후 두시,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더위를 피해보겠다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오직 그 이유 하나만으로 찾은 도서관이었다. 예상대로 에어컨 바람으로 쾌적한 도서관 안에서는 부스럭부스럭 사각사각하는 책장 넘어가는 소리와 또각또각 발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자주 찾는 서가로 갔다. 전에 한번 쯤 읽었던 것 같은 작가의 소설책을 빼어들고 다른 층으로 가서는 에세이집 몇 권, 여행기 한 권, 철학서적 한권을 들고 구석의 소파에 누웠다. 

늘 읽던, 익숙한 문체의 책을 먼저 읽어내려 간 후 소파에 기대어 잠깐 잠이 들었다. 눈이 조금 피곤하면 졸기도 하면서 몇 시간 쯤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몇 권의 이름 모를 작가의 책들. 이들을 두 팔 가득 안고서 집으로 왔다. 이 중 몇 권은 펴 보지도 않고 반납하겠지 생각하고 나니 욕심껏 가지고 온 여러 권의 책들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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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겼다.

“언제였을까요? 아마도 막 고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인가 봐요.” (루스, 발렌타인 그리고 홀리. 고솜이. 돌풍)

첫 문장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건 뭐란 말인가. 쉽게 읽히기는 할 것 같지만 세장도 못 넘겨서 다분히 소녀적이고 사연 많은 여자의 말투에 지쳐버릴게 분명했다. 다른 책을 펼쳤다.

“내게는 제대로 된 직업이 없었기 때문에, 어느 날 자전거를 한 대 사서 장사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자전거 와플가게. 고솜이. 돌풍)

직업이 없다. 그러므로 자전거로 장사를 한다. 이런 논리적 흐름이라면 가시 돋은 지금의 나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까칠하게 트집을 잡다가 지쳐버릴게 뻔했다. 그러나 다른 선택이 없지 않은가. 남은 책은 네 권. 그 중 선뜻 손이 가지 않는 철학서적을 빼면 모두 같은 작가의 책이거늘. 마지못해 읽기 시작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었다. 마지못해, 직업이 없어서 자전거로 장사를 시작한 이야기를 읽고, 조금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 혼자 식사하는 이야기를 읽고, 그러다가 책에 완전히 빠져 들어 스트로베리파이를 만드는 이야기를 읽었다.

예상치 못한 감동에 혼자서 어색해져 버린 나는 다음 책을 읽어내려 갔고 그 다음 책도 쉬지 않고 보았다. 그리고 우연히 접한 책이 지금의 내게 유일한 위로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하나 완벽한 것 없고, 자로 잰 듯 규격화되어야 인정받는 사회에서 울퉁불퉁 삐죽빼죽한 모습의 주인공들은 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 주인공들이 외로워하고 좌절하고 지쳐 있다가 결국에는 사람에게 관심을 갖고 세상에 애정을 품게 되는 모습은 지금의 너도 괜찮다, 곧 너의 마음은 건강해 질 것이다 라며 나를 토닥여 주는 것이었다. 친구를 만나 한참을 이야기해도, 오랜만에 엄마와 긴 통화를 해도 풀리지 않던 마음의 응어리가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었다. 몇 권의 책만이 나를 보듬어 주고 긴긴 여름밤을 오롯이 함께 해 주었다.
 
내게 필요한 그 무언가는 새빨간 비빔국수도, 쌉싸름한 자몽도 아닌 괜찮다는 위로 그 뿐이었다. 자꾸만 조급해지고 지쳐가는 마음에 새콤달콤한 자극보다도 감자 속살 같은 부드럽고 담백한 위안이 필요했던 것이다.



Joesph Alleman, The Companion


책의 첫 장만을 잠깐 보고 그 책을 모두 읽은 사람처럼 오만하게 평가하고 가차 없이 덮어버린 책들이 얼마쯤 될까. 그렇게 덮어버린 책들이 나를 향해 고소하다는 듯 눈 꼬리를 치켜뜨는 것 같았지만 나는 오늘 중요한 지혜를 얻었으니 그쯤은 괜찮다. 글자로 전할 수 있는 것은 진실과 지식뿐이 아니라 사랑과 위로일 수 있다는 것을. 책 밖의 세상으로부터 얻은 고단함은 책 안에서 그 안식을 구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책들 속에 길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길을 걸어 나갈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었음은 분명하다. 지친 당신도 이 글에서, 저 책속에서 위안을 가져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