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뮤지컬하면 떠오르는 곳은? 서울 예술의전당, 대학로. 버스킹하면 떠오르는 곳은? 홍대. 한국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곳은? 인사동, 북촌, 서촌. 갤러리가 많은 곳은? 청담동, 인사동 등등.

 

수도권에 사는 사람들이 ‘문화예술 공간’하면 떠올리는 장소는 대개 서울이다. 소개팅하려고 해도, 간만에 독립영화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먹어도 서울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교통비도 올랐는데 서울을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서울을 벗어나서 ‘동네에서 즐기자!’라는 마음가짐으로 청년 공간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수원시 행궁동에서 청년 문화예술 네트워크 ‘평상’을 기획하는 기획자들을 만났다.


말 그대로 평상 위에서 먹고, 놀고, 본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ING앤지 : ‘골목잡지 사이다’에서 기획을 하는 앤지라고 합니다. 여기 ‘평상’은 ‘사이다’에서 기획한 프로젝트구요. 평상에서는 여러 기획을 서포트하고, 카톡 공지도 하고, 문도 열고 닫고 등등 잡일을 도맡고 있습니다.(웃음) 


웃기시내 : 저는 그냥 여기 지역에 살다가 평상에 먼저 왔던 친구 소개로 놀러 왔다가 같이 놀게 됐어요. 수원 지역 여행이나 역사에도 관심이 많아서 이번에 동네 어른들과 함께하는 팟캐스트 계획하고, 그렇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미랑군 : 미랑군입니다. 저는 ‘백수남 실수녀’라는 프로젝트그룹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평상에서는 프로젝트 때마다 MC를 맡고 있습니다.


기획자분들이 어떻게 모이시게 된 건가요?


ING앤지 : 이 공간이 원래 이런 모습이 아니었어요. 삼성게임프라자라고 해서 굉장히 오래 방치되어 있던 낡은 상가 건물이었는데, 그 건물을 임대해서 행궁동에서 의미 있는 청년들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같이 공간을 만들어볼 분들을 모집한다고 공고를 냈죠. 그렇게 처음 청년 여덟 명이 모였어요.


청년과 공간이라는 두 단어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한 건가요?


ING앤지 : 이 행궁동이라는 곳이 수원의 대표적인 원도심이에요. 그래서 전체 인구도 점점 줄고 있고 노인 비중은 늘어나고, 젊은 사람들은 다 빠져나가는 도시의 특성이 있어요. 그리고 수원의 지리적 특성상 청년들은 여기서는 놀고 먹고 유흥을 하는 곳이지 딱히 문화예술을 누릴 공간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문화생활은 보통 가까운 서울로 가거나 그러니까요. 그래서 이곳 행궁동에도 청년의 문화적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죠.


수원에는 이런 공간이 많이 없나 봐요?


미랑군 : 제가 알기엔 이곳 행궁동에 문화 공간이 세 군데가 있어요. 문화공간으로 카테고리를 정하면 숫자는 꽤 많아졌죠. 그런데 성격도 서로 다르고 대상도 많이 달라요. 그래서 옛날부터 서울에 있는 이런 문화 공간이 부러웠어요. 서울에 있는 청춘 플랫폼이라고 아세요? 거기는 건축하는 사람들이 이런 공간을 만들어 놓고 커뮤니티 활동을 하는 곳인데, 그런 곳에서 매니저 공고 같은 거 내면 항상 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수원에서 찾아보면 하나도 없는 거예요. 문화 공간이 부재했던 거죠. 항상 서울까지 가서 면접도 보고 일하려고 했는데 이제는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없게 된 거. 그게 너무 신기하고 좋아요.


ING앤지 : 다른 지역의 문화 기획자들과 이야기해봐도 서울에 모든 게 집중된 현상이 안타깝다는 감정은 마찬가지더라고요.


골목잡지 사이다 전경


‘골목잡지 사이다'도 그렇고 ‘평상’도 그렇고 오순도순 모여있는 지역공동체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혹시 지역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는 이유가 있나요?


ING앤지 : 골목잡지 사이다가 하는 일이 골목의 이야기를 담는 거에요. 평상은 골목의 이야기를 듣고 나누는 곳이죠. 대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면서’ ‘함께’ 잘살아 보자는 마음이 컸어요. 혼자 떨어져 있는 청년들을 한 점으로 모아서 함께 재밌게, 잘 살아보자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는 거죠.


평상에서 기획자들이 1인 1기획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나요? 


웃기시내 : 저희는 1인 1기획이라고 해서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서 하는 게 아니라 ‘나 이거 할 줄 아는데 한 번 해볼까?’ 라고 시작해요. 사람들은 ‘그래그래 한번 해봐!’ 이러고.(웃음) 그래서 지난주에는 제가 구글 활용법에 대해서 알려줬고요. 오늘 행사를 했던 두 분도 ‘나 홍차 만들 줄 아는데? 내 홍차가 더 맛있어! 한 번 겨뤄보자!’ 이렇게 해서 갑자기 프로젝트가 된 거에요. 그리고 팟캐스트도 제가 옛날에 팟캐스트를 하고 싶다고 얘기를 했다가 이렇게 판이 커진 거고요. 프로젝트 같이 거창한 것보다는 각자 하고 싶은 것이라는 형식으로 진행 중이에요.


ING앤지 : 이 평상 위에서 자유롭게 상상해보자. 같이 모여서 상상하면 그런 게 곧 기획이 되는 거죠.


미랑군 : ‘뭐든 할 수 있고 뭐든 실패할 수 있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타이밍. 취재 중 맛있는 홍차와 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저도 오늘 왔다가 얼떨결에 배부르게 가는 것 같네요. 계획 중인 '하고 싶은 것’이 또 있나요?


ING앤지 : 상상평상이라고 인쇄물을 발행하고 있어요. 저희가 처음 오픈할 때 만든 거예요. 동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그 사람들을 소개하는 페이지가 있고, ‘평상’을 만드는 모습들도 담았어요. 이런 식으로 계속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를 계속 늘려가면서 매거진을 발행할 거에요.


웃기시내 : 아까 말씀드린 팟캐스트인데요. 60~70년대 패션의 중심지였던 수원 남문의 양장점 사장님도 만나고 또 옛날부터 목욕탕을 운영한 목욕탕 사장님, 50년대에 남문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선생님, 당시만 있었던 음악감상실 대표님도 만나서 그 당시 ‘우리 동네’ 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ING앤지 : 아 참, 그리고 저희가 MT를 갈 예정이에요. 동네에서 굉장히 오래된 여인숙으로 갈 거예요. 청년들이 잘 찾지 않는 공간을 새로 발굴하는 그런 기획이죠. 그리고 수원에 폐허 같은 공간이 있어요. 그런 곳에서 페스티벌을 하려고 기획 중입니다. 폐허 페스티벌.(웃음)


평상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ING앤지 : '평상을 어떻게 운영해야겠다', '이 공간에서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강박이 없어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어요. 누구나 와서 옛날 마을 어귀에 있던 정자나무 아래 평상처럼 편하게 쉬었다 가는 공간, 서로 얘기하다가 재밌는 일도 같이 해보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이곳에 오면 덩달아 즐거워지고 힘을 얻는 것 같아요.


평상에 행사가 열리는 날이면 청년뿐만 아니라 동네 주민이 모두 모인다.


돈 얘기가 나와서 그런데, 운영 자금은 어떻게 충당하나요?


ING앤지 : 평상은 지원을 받고 있어요. 별별예술프로젝트라고 경기문화재단에서 예술 실험의 목적으로 지원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올해 끝나요. 저희는 지원이 끝난 이후에도 ‘평상’을 실험으로 남겨둘 생각이에요. 지원이 끝나면 이 공간이 정말 끝나는 건지. 아니면 청년들이 자발적으로 지속해서 이 공간을 꾸릴 수 있는지 실험하고 싶어요. 문을 닫을지 말지를 저희가 미리 정해 놓지 않았어요. 그때 되어 봐야 알 것 같아요. 이 공간 자체가 공간과 사람에 대한 실험이죠. 수원에서 청년들이 자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그럼 현재 평상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웃기시내 : 멤버입니다. 비율이 여자가 훨씬 많아서 기왕이면 남자 멤버가 좋겠네요.(웃음) 페이스북에 ‘수원 사람들’이라는 그룹이 있어요. 그런 곳에 저희 평상이 하는 일을 홍보도 하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없어요. 청년들이 새로운 것을 탐험하기에는 너무 바쁜 것 같아요. 그들의 문제라기보다는 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은 거죠.


앞으로 평상이 지켜나가고 싶은 가치가 있나요?


미랑군 : 그냥 제일 하고 싶은 것은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는 거? 그냥 여기와서는 돈 걱정, '어떻게 놀아야 잘 놀지' 같은 걱정 없이 마음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ING앤지 : 언제나 열려있었으면 좋겠어요. 올 수 있을 때 항상 열려 있어서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 편하게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그런.

 


인터뷰.글/ 참새(gooook@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