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다음은 TV에서 방영한 장면을 설명한 것이다. 방송에서 법정제재를 받은 것은?

1. 선암여고 탐정단에서 여고생인 수연과 은빈은 진심을 담아 입을 맞췄다. (여성 간 키스)

2. 코미디 빅리그 코너 <희극지왕>에서 남성이깆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강제로 입을 맞췄다. 여자가 부끄러워하며 무대 뒤로 도망가니 남자는 의기양양하게 “여자는 이렇게 다루는 거야”라고 말했다. (성폭력 및 성추행)


A. 정답은 1번 
 
1. 방송통신심의 위원회는 여고생 간의 키스신을 방송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에 대해 법정 제재인 ‘경고’ 조치를 결정했다.

2. 여성 대상화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예능 역사이다. 왜 예민하게 받아들이는가? 여성은 폭력으로 다룬다고 말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아무 잘못이 없다. 




1번이 정답이 되는 현실에 이의 제기 하고 싶다. 방송 심의 규정 제7조에 따르면 방송은 공적 책임에 따라 “상대적으로 소수이거나 이익 추구의 실현에 불리한 집단이나 계층의 이익을 충실하게 반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합당한 심의가 이뤄지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선암여고 탐정단>에 경고를 줌으로써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편견과 폭력을 증명했다. 심지어 제27조 (품위유지) 규정 위반을 운운하며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혐오를 드러냈다. 여고생 간의 키스는 대체 어느 지점에서 품위 유지를 하지 못한 것일까?


진정으로 방송의 품위를 저해하는 것은 폭력과 추행을 웃음 코드로 소비하는 ‘2번’이다. 하지만 관습적으로 노출된 여성 대상화는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못한다. 여기에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유난 떠는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시선을 감수해야만 가능하다. ‘웃자고 하는 말’에 ‘가치적 올바름’을 요구하는 쉽지 않은 싸움이다. 관성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선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법이다.


지난 6월 30일, 미디어에 만연한 차별의 논리에서 해방하고 싶은 자들이 한 곳에 모였다. 여/성소수자 혐오가 심해도 너무 심한 이 시대에, 미디어에서 여/성소수자를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아래는 아이즈 최지은 기자와 함께한 <레주파 오픈토크>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취재기다.

 

" " 안의 내용은 오픈토크에서 최지은 기자가 제시한 사례다.

 

남성 중심적 미디어에는 오직 ‘남녀’ 커플만 존재한다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방송의 코드는 교묘하게 가부장적이고, 남성적이며, 이성애 중심적인 결을 이루고 있다. 대놓고 단순하게 뚱뚱하고 못생긴 사람을 모욕하는 예능이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최지은 기자가 제시한 사례를 읽어보자.

 

“<비정상회담>은 미인과 미인이 아닌 여자를 게스트로 데려와 비교한다. 미인이 아닌 여자는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인이 아닌 여자는 예능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을 즐겁게 받아칠 수밖에 없는 존재로 남겨진다. 특히 박지윤이 출연했을 때 워킹맘의 삶에 대해 남성들이 찬반을 나누는 아이러니한 모습을 보인다. 타일러가 말한 것처럼 ‘왜 여자는 이런 질문에 도전을 받는가’하는 근본적인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장동민은 <마녀사냥>에서 옆에 앉은 한혜진에게 “설치고, 떠들고, 말하고, 생각하고, 모든 걸 갖춰”서 싫다고 말한다. 미디어는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냉장고를 부탁해>는 게스트의 냉장고를 뒤질 때 포인트가 이성애 중심에 맞춰진다.”

“<삼시세끼>에서 차승원과 유해진은 동성의 두 파트너가 생활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동등한 관계’다. 하지만 프로그램은 그들을 주부와 바깥양반으로 나눠서 보여준다.”

“<무한도전>은 세련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프로임에도 불구하고, 올드하고 익숙한 코드를 가지고 있다. 짝이 없는 사람은 짝을 지어줘야 하고, 그 짝은 당연히 이성이어야 하는 식이다. ‘40대’라는 나이를 넘어서도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끌려다니며 짝을 지어야 하는가?”

 

이쯤 되면 우리는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한다. 왜 시청자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가부장-남성-이성애 프레임은 합의된 것처럼 재생산되는 것일까. 여기에는 방송가에 오랫동안 고착된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최 기자는 “방송사에서 최종 결정권이 있는 피디는 남자가 대부분이고, 이로 인해 이미 남성 중심적 세계가 짜여있는 판”이라며 “제작진이 정치적으로 올바른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노력과 시도가 필요하고, 또 고민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 성찰해야 한다”고 생각을 밝혔다. 덧붙여 “시청자들도 예민함을 놓치지 않고, (문제를 지적하는 데)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는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는 발언을 여과 없이 내보낸다.” / ⓒjtbc


여성을 담아내는 미디어 그릇의 모양은 찌그러졌다

 

최 기자는 “미디어에서 태연히 드러나는 여성 비하, 외모에 대한 조롱, 코미디의 탈을 쓴 ‘멸시’를 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며 토크를 이어갔다. 여기서 ‘멸시’는 ‘업신여기거나 하찮게 여겨 깔봄’이라는 뜻으로, 여성 혐오가 남성들에게 작용하는 방식 중 하나다. 개그콘서트가 못생기고 뚱뚱한 여성을 단순하게 멸시했다면, 다른 프로그램은 더 복잡한 양상으로 드러낸다.

 

“<초인시대>는 인기 없는 남자를 묘사할 때 어린 여자들을 일종의 가해자처럼 그린다. 밥 사주세요. 컴퓨터 고쳐주세요. 등의 말을 하는 어린 여자 후배 이미지가 필요해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어리고 생각 없는 여자가 남자들을 등쳐먹는 에피소드는 쉽게 볼 수 있다. <코미디 빅리그>의 ‘절대 남자’ 코너는 여성에게 명품백을 사주느라 허리가 휘는 남자들에 대한 이야기다.”

 

아마 코미디 프로그램을 매주 챙겨보지 않아도 익숙할 내용이다. 네 생일에는 명품 가방, 내 생일에는 십자수냐 등의 프레임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하다. 문제는 이것이 여성을 적대화 현상을 일조하는 데서 발생한다. 명품 가방을 남자친구에게 뜯어내는 여자가 많은가라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다. 이미 여성의 존재는 방송이 노출한 이미지 그대로 형상화된다. 이러한 방식은 평소 여성 혐오적 성향을 가지지 않는 사람도 여성에 대한 피해 의식을 키울 수 있다. 방송에서 벗어나면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법은 한층 더 과격해진다. 웹툰이 대표적이다.

 

“(네이버 웹툰)<뷰리풀 군바리>는 여성들도 의무 군 복무를 하게 되면서 발생하는 상황이다. 군대에 대한 개념이 없는 여자들이 훈련소 안에서 호된 일을 당한다는 내용이다. 즉 여자 전반에 대한 욕이 아닌, 저런 개념 없는 여자를 욕한다는 흔한 논리다. 또한 초반에 왜 여군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보여주는 에피소드에서, 한 여성이 성폭행을 당하는 위험한 장면이 나온다. 근데 여기서 여성의 몸을 아름답게 표현해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관음하는 맛이 있도록 묘사된다. 다음 장면이 궁금해지는 판타지로서 강간이 사용되는 것이다. 여성이 얼마나 성적으로 착취당하며, 원하지 않는 일과 마주치게 되는가, 끔찍해서 답을 찾을 수 없다.”

 

위의 사례를 보면 여성 대상화가 전략적 선택으로 이용된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실제로 여성을 폭행하는 연애 방식을 자랑하는 웹툰 <상남자>의 작가는 “초반에 사람들의 반응을 얻고 싶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의도는 맞아떨어져 여자가 코피를 터뜨리는 만화는 몇만 단위의 ‘좋아요’를 받고 있다. 최 기자는 “이건 유희를 위한 방송이니까, 만화니까, 상품이니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고 말한다. 맞다, 이제는 미디어가 여성을 담아내는 그릇의 모양이 왜 찌그러져 있는지 이야기할 때다.

 

'유희'니까 진지하게 굴지 말고 넘어가라? 그런데 정말 사람을 때리는 연애방식이 재미있는가? / ⓒ상남자

 

 

묻혀있는 성소수자, 미디어에서 찾을 수 없다


미디어에서 ‘여성’은 대상화되어 빈번하게 등장하지만, 성 소수자는 쉽게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주변에 성 소수자가 있을 거라는 인식이 디폴트 된 사회를 그대로 반영한다.

 

“40대까지 결혼을 안 해도 이성에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지, 동성애자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한국에서는 어떤 면에서 성 소수자로 살기 쉽다고 할 수 있다. 커밍아웃만 안 하면 온몸으로 자기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어도, ‘게이인 것 같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그런 말이 나와도 ‘왜 멀쩡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듣는다.”

 

미디어가 성 소수자를 다루는 것은 ‘한국의 정서’와 대치되는 일이다. 결국 미디어가 성 소수자를 등장시키는 것만으로도 수많은 정서‘들’과 싸워야만 한다. 그들은 ‘논란’, ‘비판’, ‘반발’이라는 명사를 수반하는 인물이 된다. 동성애 커플을 전면에 내세운 단막극 <형영당 일기>는 거센 반발에 부딪혀 결국 기획의도를 수정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http://www.goham20.com/4014]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개념들은 수면 위로 나와서 사람들에게 보이고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는구나 알려야 하는데, 그게 당사자들(콘텐츠 제작자)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고.”

 

그래서일까. 매체 속에서 동성애는 계획적으로 노출된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친구로서 감초 역할을 해주거나, 아니면 주인공의 유머 코드로 사용되거나, 알고 보니 동성이 아닌 이성인 식이다.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추는 ‘트렌디함’과 ‘쿨함’을 보여주긴 하지만 사람들의 신경을 거스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동성애는 문제가 불거지지 않을 수준에서 배경에 녹아 있다.

 

동성애 코드를 가져다 쓰는데 이게 ‘진짜’가 되면 안 되는 거죠. 끝까지 못 가는 거예요. ‘내가 남자를 좋아하나’를 주요 갈등으로 가져가지만, 결국 이성인 걸 안도하잖아요. 이런 걸 20년 정도 했으면 그다음 단계로 갈 때도 되지 않았나.”

끝까지 가면 징계인 거죠. <프로듀사>에서 김수현과 차태현 키스는 그냥 넘어갔지만 선암여고 탐정단은 법적 제재를 받았잖아요. 장난이나 제정신이 아니면 해프닝으로 넘어가고, 진심이 담긴 순간 징계감이에요. 성 소수자가 진짜라는 것을 방송이 아직 인정을 못 하는 거죠.”


같은 동성 간의 키스지만 진심이 담기면 '징계'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니면 '괜찮다'? / ⓒjtbc ⓒkbs2

 

그럼에도 낙담하기에는 이르다. 우리는 지금 비로소 여성인권과 동성애 인권이 사회에 ‘거론될 수준’이 되었다. 페미니즘 운동은 점차 힘을 키워가고 있고, 성 소수자의 이야기는 수면 위로 올라왔다. 사회적으로 ‘시끄럽다’는 말도 들리지만, ‘시끄럽다’는 곧 ‘근본이 흔들리고 있다’는 말로 등치 된다. 근본이란 역사의 축을 이뤄온 억압과 차별이다. 역사에서 해방과 변화는 시끄러운 자들에 의해 이뤄졌다. 이제 남은 건 무디게 흘러가는 시간을 견디는 것이다. 당장 뭐라도 바뀔 것처럼 떠다니는 말들 속에서, 천천히 변해가는 시스템을 지켜봐야 한다.


“요즘은 팟캐스트에서도 성소수자 관련 프로그램이 나오고 있잖아요. 어떤 플랫폼이든 나온 것만으로도 반가워요. 거기에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거예요.”

 

<레주파 오픈토크>는 답을 얻기 위한 자리는 아니었다. 고민의 지점이 같은 이들을 위한 대화의 장이자, 일상생활에서 쉽게 발화되지 못한 생각들을 교류하는 시간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는 고민이라는 점은 연대의식을 고취시킨다. 이는 오픈토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간 이들이 고민을 계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하지만 문제의식을 가진다는 것은 치열함을 요구한다. 외면하고 싶은 순간이 더 많다. 예능 프로그램을 편히 볼 수도 없으며, 가까운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을 감수해야 한다. 피곤한 일이다. 또 이런 사회가 쉽게 바뀔 것이란 기대도 갖기 힘들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기에서 계속 살아가야 한다. 국어가 아닌 모어를 쓰며, 한국이 아닌 나의 삶의 터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말이다. 사회가 지금보다 나아지길 희망하는 독보적인 이유다. 그렇다면 현실을 바꾸기 위한 개인적 실천에는 무엇이 있을까. 최지은 기자는 다양한 대응 방식을 이야기한다. 좀 더 적극적인 후원을 하고, 서명운동에 빠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정치인 중에 어떤 사람이 이런 이슈에 귀를 기울일까 고민하는 등이다.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할 수는 없지만,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 그만큼 하는 과정도 힘든 일이잖아요. 화가 나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들과 같이 나눌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또 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걸 공론장에 남기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출연하는 사람들, 제작하는 사람들, 플랫폼에 제공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콘텐츠가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신경 쓸 수밖에 없어요. 커뮤니티나 SNS 안에서, 그리고 이런 자리에서, 속으로 쌓아두지 말고 한마디라도 더 하는 게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움직임이 될 거예요.”

 

글/ 아호(9208kj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