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사에 이들이 없다면 '엘르'도 '보그'도 '쎄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바로 ‘어시스턴트’(이하 어시)다. 정규 에디터들의 기사 작성을 돕기 위해 자료 조사, 패션 소품 픽업, 홍보 대행사 방문 등 무수히 많은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을 어시라고 부른다.


한 달에 30에서 80만원 정도 급여로 필요한 만큼 일을 시킬 수 있다. 근로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잡지사에서 필요할 때만 부르므로 개인 책상도 없다, 그래도 마감 기간이 오면 (너그럽게도) 밤샘할 자리는 내어준다. 알바도, 인턴도, 그렇다고 그냥 계약직도 아닌 ‘경계인’ 어시. 열악한 근무환경에도 수많은 에디터 지망생들은 어시 공고 하나만 올라오기를 목 빠지게 기다린다. 박소영씨(가명)는 잡지 에디터를 꿈꾸는 이들 중 하나다. “잡지사의 높은 진입 장벽을 넘어갈 수 있는 디딤돌은 어시밖에 없으니까요.”

 

잡지 어시스턴트 공고가 있는 트위터 갈무리


내 꿈은 정규직 에디터


처음 소영씨는 지방대 학보사 활동을 하면서 잡지사 에디터의 꿈을 키워나갔다. 잡지 에디터가 되기 위해 그나마 가능성있는 루트는 어시스턴트가 되는 것. 어시로 일하지 않으면 발조차 담가 볼 수 없는 곳이 잡지계였다. 서울과 지방을 오가면서 10번이 넘는 어시 면접을 봤다. 면접 질문은 대체로 비슷했다. 첫 번째로는 잡지 성향과 맞는지 알기 위해 관심사나 성격에 관한 질문이었다. 두 번째로는 적은 급여에도 정말로 버텨낼 수 있는지 여부다. 

 

“우리는 이 정도밖에 못 주는데 괜찮아요?" 

"부모님이 이런 일을 하라고 하시겠어요?” 

“어시는 필요할 때마다 부르기 때문에 본인 책상도 없어요. 소속감이 없을 수도 있는데... 괜찮아요?” 

 

괜찮으냐고 물을 때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는 “네, 그래도 하고 싶습니다”였다. 면접을 회상하는 그녀의 모습은 담담했다. “단순히 착취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것 같았어요, 저와 성격이 맞는 잡지사 한 곳에 합격했고 거기서 1년 정도 피처 어시스턴트 생활을 했죠.” 

 

2년. 에디터가 되기까지 기다려달라는 그녀와 부모님이 약속한 마지노선이었다. 지방에서 올라온 소영씨의 서울살이엔 만만치 않은 돈을 들여야 했다. 월세에 식비까지 빼고 나면 대학시절 용돈 정도 되는 돈이 그녀에 손에 쥐어졌다. “한 달에 출근 일수 따라서 조금 다른데 대체로 80만원 언저리였어요. 부모님에게 손 안 벌릴 정도지만, 목돈 모을 수도 없는 수준? 사실 이것도 주위 어시들에 비해서는 많은 편이라 불만족하진 않아요.” 그래도 소영씨는 "전 다른 어시들에 비하면 나은 형편"이라고 말했다. 후배 어시들 중에는 더 많은 일과 잦은 야근을 하면서 소영씨보다도 더 적게 받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어시스턴트, 그녀의 하루


매일의 업무 일과는 비슷하다. 잡지사 사무실 안에서 선배들이 쓰는 글이나 인터뷰 기사에 들어갈 자료를 조사하는 일이었다. 뷰티, 패션을 제외한 전방위적인 잡지 기사를 다루는 피처 어시스턴트는 전화업무, 인터넷 서칭, 자료 정리, 사진 찾기 등을 한다.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그녀가 찾은 자료를 기반으로 잡지에 실린다는 걸 생각하면 정말 중요한 일들인 것이다. 

 


패션잡지


“뷰티나 패션 어시스턴트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체력적으로 정말 힘들다고 해요. 화보 한 번 찍으면 모든 소품을 일일이 챙기고 날라야 하니까. 저는 피처 에디터라 대체로 사무실에서 일하고, 선배분들도 정말 잘해주셨어요. 운이 좋은 경우죠.”

 

그녀의 첫 잡지사는 꽤 괜찮은 곳이었다. 대부분의 어시들이 본인들의 이름이 들어간 기명 기사를 쓰기 힘든데 소영씨는 운 좋게 기명 기사를 종종 쓰곤 했다. 선배들도 그녀를 잘 챙겨줬다. 그녀가 1년을 버틸 수 있던 이유기도 했다. 


돌고 도는 잡지 업계, 어시들에겐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다

 

TV와 언론에서 연일 ‘열정페이’ 보도를 쏟아낼 쯤 잡지사에도 움직임이 있었다. 한 잡지사에서는 모든 어시들에게 열정페이와 관련한 언론 인터뷰를 일절 하지 말라는 공고를 내렸고, 어떤 곳은 아예 트집잡히지 않기 위해 어시 공고 자체를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소영씨는 "어떤 잡지사에서 어시스턴트가 노동청에 고발했다는 얘기가 들렸어요. 아마도 잡지계를 완전히 뜨리라 마음먹은 사람이었을 거에요..." 시간이 지나고 관심이 사그라들자 모든 건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소영씨도 사실 기자의 인터뷰 요청에 기꺼이 응해줬지만, "유추 가능한 모든 신상을 익명 처리"해달라는 말을 먼저 건넸다.


“잡지계가 워낙 좁아서 일하는 매체를 밝히기 힘들어요. 그 순간에 내부고발자로 몰리고 업계에서 취직하기 힘들어지죠. "

 

그녀는 잡지사 근무환경에 만족하고 있을지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열정페이라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어요. 잡지사가 어떤 곳인지 알고 싶으면 어시밖에 답이 없어요. 선배들은 최소 2년은 해야 한다고들 해요. 기약 없기는 하지만 어시 경력이 꽤 도움되긴 하니까요. 이렇게 SNS가 발달했는데도 사실 제대로 된 잡지사 취업 정보 얻는 건 어렵거든요. 저도 정보가 없어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지금도 많은 에디터 지망생들이 저처럼 정보에 목말라하는 걸 보면, 난 그래도 조금 앞서나가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또 에디터 지원서에 어시 경력 쓰면 다들 전화로 사전조사하거든요. 그때 선배 한 분이 ‘걔, 꽤 괜찮은 어시였다’고 하면 큰 도움이 되죠.”  

 

어떤 사람들은 왜 잡지 같은 사양산업에서 일하기 위해 애를 쓰느냐고 묻는다. 그녀는 솔직하게 답했다. “슬프지만 잡지 업계가 사양산업이라는 말, 틀린 건 아니에요. 전성기는 지났고 이제 내리막길이죠. 남아있는 잡지 중에 그렇게 사정 좋다고 말할 수 있는 곳 없을 거 에요. 돈 되는 잡지는 대기업 사보 정도? 그러다 보니 새로운 직원도 안 뽑게 되고 어시를 쓸 수밖에 없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는 거죠. 아마 어시가 생긴 게 잡지업계가 어려워진 최근 10년이랑 엇비슷한 것 같아요.”


잡지사 기자를 소재로 한 SBS'스타일'에서 편집장 역을 맡은 김혜수 ⓒSBS


잡지계라는 구조 자체가 새로운 사람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생기기 어렵다. 공석이 생겨도 경력 에디터끼리 돌고 도는 구조다. 누가 그만두면 공고를 새로 올리는 게 아니라 전화기부터 든다. 검증된 사람을 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에디터가 되는 데 있어선 그만큼 인맥이 중요하다, 그녀는 왜 이 바닥은 새로운 사람을 뽑지 않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정답은 간단해요. 나가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왜 안 나갈까요?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잖아요. 일하는 선배들, 다 힘든 일이라고 툴툴대면서도 그만두진 않아요.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에디터라는 직업.”

 

그녀에게 정규직 에디터가 되면 어떤 매체에서 일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최근 고민 중 하나에요. 예전에는 어디서 일하고 싶은지가 확고했는데, 지금은 그냥 일자리 찾는 데 혈안이 돼서 어디서 뭘 하고 싶었는지 문득 잊어버릴 때가 있어요.” 그래도 소영씨는 계속 에디터의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한번 사는 인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게 그녀의 꿈이었다.

 

에디터는 수명이 짧은 직업이다. 아직 먼일일 수도 있지만 에디터 이후의 모습에 대해서 물었다. “잘 되면 편집장까지 할 수도 있겠죠. 안 돼서 잡지를 나와도 여전히 비슷한 일을 할 것 같아요.” 그녀는 얼마 전 어시를 그만뒀지만 여전히 에디터를 준비 중이다. “1년을 근무했지만, 정규직이 될 가망이 없어서 ...그래서 그만뒀어요.”


올해는 소영씨가 부모님과 약속한 2년째가 되는 해다. 

 


글/인터뷰 라켈(glory0812@nat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