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 박용성 이사장이 지난 6월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중앙대의 19개 단과대학, 77개 학과를 싹 잊어버리고 백지 위에 완전히 새로 그릴 생각이다."라는 충격적인 선언을 했다. 비효율적인 학과 제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는 것인데, 이런 흐름은 비단 중앙대만의 일이 아니다.

몇 년 전부터 시작된 몇몇 대학의 ‘CEO 출신 총장’ 선출은 대학의 경영혁신과 경쟁력강화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CEO형 총장의 대표주자격인 서강대 손병두 총장과 동국대 오영교 총장, 건국대 오명 총장의 행적을 보면 대학의 경영효율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알 수 있다.

일단, 이들 총장은 발전기금 모금에 열성을 기울인다. 몇 백억 모금을 달성해내고, 노후화된 건물들을 교체하며, 신축건물 공사에도 한창이다. 새로운 제도를 들여오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으며, 학과 제도를 개편하고 효율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 동국대의 경우에는 ‘상시 입학 정원 관리 시스템’이라는 제도로, 매년 학과 평가를 실시해 하위 15% 학과의 정원을 감축하고 그 정원을 정책적 육성이 필요한 학과에 배분하고 있다.

이렇게 활발하게 혁신이 이루어지는 학교를 다니는 한 사람의 대학생으로서, 나는 대체적으로 대학의 경영 효율화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흐름이라고 믿는다. 분명, 대학 간의 경쟁은 심화되어 있고, 서열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라면, 자신이 다니는 학교가 대세에 뒤처지지 않고, 상시적으로 레벨 업 해준다면 감사할 따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본적인 발전방향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그 발전과정에 있어서 불합리함은 어쩐지 씁쓸하게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대학의 주인은 등록금을 내는 학생들이므로 고객을 대하는 마음으로 서비스를 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인데, 어쩐지 고객과 상품이 주객전도된 느낌이다. 

학과 폐지를 겪은 독어독문과 학생 A씨는 “새롭게 발전해가는 건 좋은데, 이런 발전에 피보는 사람이 내 입장이 돼보니까 억울함을 알겠는 거죠. '구성원90%가 반대를 해도 10%만 바라보고 가겠다'라는 학교 당국입장에 어이가 없을 뿐이에요."라며 학생들의 최소한의 편의를 봐주지도 않고 학과폐지를 강행하는 학교에 서운함을 드러냈다. 특히 "전과 다 시켜주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시위하는 학생들을 反학교 학생으로 치부하더라구요"라며 학교의 당당한 태도에 화가 났었다고 전했다. 학과폐지의 필요성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더라도, 이미 학과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에게 최소한의 배려가 필요한데 경제적인 관점으로만 학생을 해석하고 처우한다는 것이다. 당장 학과폐지로 수업을 들을 수 없는 학생들에게 전과를 하라고 강요하고, 전과를 하지 않는 학생에 대한 보상은 미비하며, 운동을 한 학생들에게 징계를 내리는 것이 과연 고객을 왕으로 모시는 태도인가.

학기가 시작하기 전에 미리 수요를 가늠해보고 강좌를 개설하는 과정에서도 문제점은 드러난다. 대학이 순수학문의 장이 아닌 경제적인 관점으로 수요가 없는 강좌, 즉 대다수의 인문학강좌는 폐강되는 사태에 다다르고 있다.
 



학생들의 선택의 흐름이 학점과 실용 위주로 변화하더라도, 대학이라는 학문의 장은 어느 정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학생들이 인문학 강좌를 들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인기가 없는 강좌를 무조건 폐지하기보다는 학생들이 듣고 싶어지도록 강의의 질을 개선해야 맞는 것이다.

학과의 폐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국의 각 대학이 모두 같은 학과를 동시에 가질 필요는 없다. 균형 있게 나눠 가진다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어느 학교에서 어느 비인기학과를 운영할 것인가. 사회적인 합의 없이 무차별적으로 비인기 학과를 폐지하기 시작한다면, 실용학과의 기반이 되는 순수학문 학과들이 개설되는 학교는 거의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순수학문의 지식이 탄탄한 기반을 이루지 않는다면, 실용학문 또한 크게 발전할 수 없는데도 근시안적 시야로 효율성을 운운하며 학과를 폐지해 나가는 것이다.

필자는 아무 생각 없이 선택한 ‘서양문학의 이해’라는 교양강좌 덕분에 ‘햄릿’에 열광하게 된 적이 있다. 햄릿의 성격을 여러 갈래로 분석하고 발표하는 과정에서 고전의 해석에 대한 작은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필자의 친한 친구도 ‘미학론’이라는 수업을 듣고 관련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어 관련서적을 통독하곤 했다. 변화하는 학생이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으로도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분명 시대에 맞는 발걸음은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에 "학생을 위한 서비스와 질 개선"이라는 근원적인 목적을 확실히 하고, 서비스 개선이라는 상품을 획득하기 위해 학생이라는 직접적 목표를 희생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제개편과 강의조정으로 피해를 볼 수 있는 학생들과 교수진들을 가다듬는 것. 그리고 인문학의 위기를 방지할 수 있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마련. 학과와 강의들을 수요와 공급으로 퇴출시키기 전에 사회적인 합의를 통해 적절한 비율의 강의와 학과 수 유지 등이 급선무인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학교의 경쟁력 강화, 효율성 강화"는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이다.